‘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현실의 소재로 이끌다
‘꿈의 신소재’ 그래핀을 현실의 소재로 이끌다
  • 문채영 기자
  • 승인 2024.05.0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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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 ⓒ문채영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
ⓒ문채영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세상을 바꿀 기술혁명의 진원지라는 평가를 받는 그래핀은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그래핀은 전자 이동 속도는 실리콘의 150배, 전자 밀도는 구리의 1,000배, 대비 강도는 강철보다 100배 높다. 2004년 두 연구자에 의해 그래핀이 발견된 이후, 그 놀라운 스펙에 제조업을 비롯한 인프라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주인공으로 주목받았지만, 높은 생산 비용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닿지 못하는 ‘꿈’의 신소재가 된 그래핀을 현실의 소재로 이끈 인물이 그래핀스퀘어㈜ 홍병희 대표다. 홍 대표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그래핀 제조 기술을 발견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이다. 그의 연구를 담은 논문은 전 세계에서 인용되며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학문적 연구로 멈출 수 없었던 그는 그래핀의 상용화를 위해 그래핀스퀘어를 창업했고, 그래핀을 통한 가치를 세상에 제공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최초의 그래핀 제조 기술 개발

그래핀(Graphene)은 탄소 원자를 벌집 모양의 격자 구조로 펼친 2차원 물질로, 흑연(Graphite)과 탄소의 이중결합을 뜻하는 접미사(-ene)의 합성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흑연의 한 층에 해당하는 물질로, 흑연이 한 층씩 벗겨지며 써지기 때문에 연필로 부드럽게 글씨를 쓸 수 있다. 사실 그래핀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과학자들은 그래핀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를 수십 년간 지속해왔다. 1962년에 연필심과 흑연을 이용해 극소량의 그래핀을 만들었고 전자현미경을 통해 처음으로 관측하기도 했으나 그 이상의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핀이 세상에 전격 등장한 건 2004년,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과 노보셀로프 교수에 의해서다. 물질 덩어리에서 원자 한 층만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해 온 두 사람은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해 두꺼운 흑연을 원자 한 층으로 분리해 냈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단순한 방식인데, 납작한 흑연 덩어리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면 흑연이 묻어나온다. 묻어나온 흑연 조각에 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면 조금 더 얇은 흑연 조각이 묻어 나온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점점 더 얇은 흑연 층을 만들었고, 결국 흑연에서 탄소 원자 한 층이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물질, 그래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은 그래핀을 발견한 획기적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홍병희 대표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당시에는 교수로서 그래핀 연구의 선구자인 김필립 교수와 흑연을 나노 크기로 잘라 그래핀을 만드는 과정을 연구 중이었다. 연구에 한창이던 때 가임, 노보셀로프 교수의 그래핀 발견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연구를 멈추지는 않았다. 그들의 방법으로는 대량생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 2007년 한국으로 귀국한 홍 대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그래핀 제조 연구를 이어 나갔다. 탄소와 수소로 구성된 메탄가스에서 수소를 분리해 내는 방법을 고안한 그는, 메탄가스에서 구리를 촉매로 사용해 화학반응을 일으켜 수소를 분리하고 남은 탄소를 그래핀으로 만드는 ‘화학기상증착법(CVD, Chemical Vapor Deposition)’으로 손톱 크기만 한 그래핀을 만드는 일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를 체계적으로 확대한 것이 ‘롤투롤(R2R, Roll-to-roll)’ 방식으로, 덕분에 윤전기에서 신문을 찍어 내듯 고품질의 그래핀을 연속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대량생산과 실용화에 길이 열린 것. 발표 논문도, 특허도 홍 대표의 연구소에서 하는 모든 것이 세계 최초였다고.

“흑연을 쪼개서 만드는 톱다운 방식은 얇은 원자 한 층을 얻을 수는 있지만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화학기상증착법은 원자 한 층의 두께를 유지하면서도 촉매를 이용해 넓게 키우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어요. 메탄가스를 원료로 하고 구리 기판을 촉매로 해서 1,000℃ 정도에서 합성하는데, 이렇게 하면 수십cm 크기로 키울 수 있어 실용화가 가능한 그래핀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찰스 슈와브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제조업과 인프라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 물질로 그래핀을 언급했다. 꿈의 신소재인 그래핀 연구에 전 세계가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홍 대표가 개발한 기술은 한국을 그래핀 양산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치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기술을 개발한 후에 80여 개 대학과 연구기관으로부터 그래핀 샘플 요청이 쇄도했으며, 제조와 관련한 국제특허만 해도 80여 건에 이른다. 2011년, 홍 대표는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겼고 이듬해 교내 벤처로 그래핀스퀘어㈜를 창립했다.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문채영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문채영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푸드테크를 시작으로 의료기기, 반도체, 에너지, 항공·우주 분야로

그래핀의 키워드는 초경량 고강도, 투명성, 유연성, 기체 차단성, 전자파 차폐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초경량 고강도다. 그래핀의 무게는 0.77mg/㎡, 두께는 종이보다 백만 배 얇은 0.3nm(100억분의 3m)에 불과한데, 그에 반해 인장강도는 1,020Gpa인 강철보다 100~300배 강하다. 열 전도성도 뛰어나다. 실온에서 그래핀의 열 전도성은 구리의 13배이며 다이아몬드보다도 2배 이상 우수한 전도성이다. 전기전도성 또한 뛰어나며, 유연하고 투명한 성질도 장점이다. 그래핀이 가진 이러한 놀라운 성질 때문에 과학자들은 물론 산업계가 열광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향후 우리 생활에도 다양한 이로움을 가져올 소재로 기대를 받고 있다. 다만,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회사는 그래핀을 소비자가 일상에서 즉각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푸드테크에 적용하는 데 집중했고, 이것이 좋은 평가를 얻어 회사의 동력이 되고 있다.

그래핀을 적용한 푸드테크는 2022년에 개발한 ‘그래핀 키친 스타일러’가 대표적이다. 그래핀 키친 스타일러는 투명 유리판에 그래핀 반막을 키워 만든 그래핀 히터다. 기존 코일 히터 대비 소비 전력이 낮아 에너지 효율을 30% 높인 것이 특징이며, 전자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또한, 프라이팬, 에어프라이어기와 달리 수분 가열에 유리한 중적외선 복사열을 방출하기 때문에 이전에는 구현하지 못하던 새로운 음식 맛을 내기도 했다.

그래핀 히터는 인체를 따뜻하게 하는 데 유리하다는 특장점도 있었다. 그래핀스퀘어㈜는 다음 해인 2023년, ‘그래핀 라디에이터’를 개발했다. 70~80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투명한 면상(면 형태) 히터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결합한 것으로 라디에이터 역시 소비 전력이 적고 중적외선을 방출해 동일 전력대비 난방 효율이 뛰어나다. 그래핀은 낮은 저항에서 원자층 두께에 많은 전류가 흐르면서 더 효율적인 발열이 일어나 환경친화적이다. 발열 시 공기가 건조해지지 않아 인체 자극도 최소화했다. 그래핀 자체 발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팬을 돌릴 필요가 없어 소음도 크지 않다. 디자인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제품을 Z 모양으로 접을 수 있는 폴더블 구조로 설계해 휴대성을 높였으며,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 주방과 거실 난방 인테리어 제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2022년에 개발한 그래핀 키친 스타일러와 그 다음 해에 개발한 그래핀 라디에이터는 각각 타임지 올해 최고의 발명에 선정되었다. 국내 중소기업으로는 최초로 2년 연속 타임지 올해 최고의 발명에 선정된 것이다. 2024년에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충전식 투명 멀티 쿠커’로 혁신상을 수상했다. 그래핀 히터기술은 전열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100년 만에 이뤄진 혁신이다. 히터기술을 넘어 웨어러블, 미용, 의료기기 등 우리의 일상 전반은 물론 반도체, IT, 배터리, 에너지, 자동차, 항공·우주까지 확장되어 쓰일 수 있어 더욱 기대감을 높인다.

회사의 연구도 확장되고 있다. 그래핀스퀘어는 그래핀을 극히 미세하게 만드는 작업을 병행한다. 그래핀을 나노 크기로 만들어 동물 실험을 진행한 결과 난치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는 유의미한 결과도 얻었다. 탄소 원자는 용해성이 좋고, 독성도 적어 의료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 대표는 제약 및 바이오 전공자들과 함께 치매와 파킨슨병 치료 연구를 본격화하며, 이를 위한 회사 바이오 그래핀을 설립했다. 미국 국립의료원(NIH)과 공동연구개발 계약을 맺고, 향후 임상시험도 함께할 예정이다.

“그래핀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소재이지만, 신소재 기술이 성숙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연구개발에서 제조 생산 기술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이제 그래핀은 실질적인 기술을 보여주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어요. 저희도 본격적인 제조 및 생산 단계에 돌입했고요. 그동안 논문이나 특허를 통해 알린 그래핀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데에 그래핀스퀘어가 앞장서고자 합니다. 그래핀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술지주회사로 자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문채영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문채영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꿈의 신소재로 만들어 갈 새로운 세상

더 큰 도약을 위해 그래핀스퀘어㈜는 창업 10년째가 되던 2021년, 본사를 경북 포항으로 이전했다. 포스코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포항시와 경북도가 미국의 실리콘 밸리처럼 그래핀 관련 기업들을 모으고 육성하는 ‘그래핀 밸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 2021년 3월, 그래핀스퀘어는 포항시, 포스텍,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포스코와 함께 그래핀 밸리 조성을 위한 산학연관 업무협약을 맺었다.

포항시는 미래 첨단 신산업 육성을 통한 지속 가능한 지역 경제 발전 견인을 위해 그래핀 관련 전·후방 기업 유치 및 집 적화를 위한 그래핀 밸리 조성 전략 수립 용역을 시행하는 등 그래핀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인 산업 육성은 결과물로 증명하고 있다. 그래핀스퀘어가 'CES 2023'에서 최고혁신상을, 또 이듬해 그래핀스퀘어를 비롯한 포항 기업들이 ‘CES 2024’에서 혁신상을 휩쓸면서 제품의 세계적인 역량과 경쟁력을 인정받은 일이 대표적이다. 경북 공동관 참여 기업 중 7개 기업이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특히, 주최사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전 세계 혁신 제품을 대상으로 기술, 디자인, 혁신성을 평가해 전 분야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제품과 서비스에 수여하는 CES 최고혁신상은 3천500여 참가 기업 중 한국 10곳을 포함, 전 세계 35개 기업만 수상한 영예로운 상이다. 공동관 기준으로 CES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것은 경북이 유일하다고. 포항시의 단단한 기반 위에서 그래핀스퀘어의 행보도 거침이 없다. 포항으로 본사를 옮긴 후, 그래핀 응용 기술 개발 R&D 및 양산 체제 구축을 위한 포스텍 나노융합기술원 첨단기술사업화센터 내 그래핀 웨이퍼 생산 라인을 준공했다. 삼성벤처투자, DS자산운용, IBK투자증권, IBK캐피탈, 에코프로파트너스, 신한캐피탈, 블루밍그레이스로부터 약 19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본격적인 그래핀 상용화에도 돌입했다.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내 1만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가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양산공장 구축에 나섰으며, 올해 말 그래핀 멀티 쿠커와 그래핀 라디에이터를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현실 세계에 없던 신소재의 등장. 그래핀의 쓰임새가 어디까지일지 지금으로선 그 누구도 쉽게 짐작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미지의 상태가 그래핀스퀘어에는 가능성으로 읽힌다. 그래핀스퀘어는 그래핀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둘러싼 새로운 생태계 창조를 목표로 한다.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그래핀을 기반으로 상상할 수 없었던 꿈 같은 일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핀이 현실의 소재로서 개인, 대학, 기업, 정부 나아가 전 세계 모두를 위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발견하고,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연구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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