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찬식 (사)김해시바둑협회장 - “효(孝)는 모든 행실의 근본입니다”
손찬식 (사)김해시바둑협회장 - “효(孝)는 모든 행실의 근본입니다”
  • 안수정
  • 승인 2016.12.1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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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어 왔던 것처럼 선조들은 효를 포함한 예절을 중시해왔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치가(治家)편에는 ‘자효쌍친락(子孝雙親樂)이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이는 ‘자식이 효도하면 두 분 어버이가 기뻐하시고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인데, 우리 모두가 재음미해 볼 대목이다. 더욱이 최근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팽배로 인한 참담한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고사성어의 절실함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본지는 연말특집호를 맞아 자칫 잊고 살았던 ‘효’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김해로 향했다.

 

손찬식 (사)김해시바둑협회장·황토갤러리 회장

효는 가정의 화목과 만사형통의 길잡이

황토개발을 운영하면서 김해시 부동산업계의 거물로 손꼽혔던 손찬식 회장은 이외에도 황토갤러리 운영, 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 총동창회장, (사)한국문화예술진흥회 상임고문을 역임, 현재는 (사)김해시바둑협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다양한 활동에서 드러나듯, ‘맨주먹으로 부를 일군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은 바로 손 회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의 활동을 두고 혹자는 “부모에게 부(富)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효 운동을 앞장서 펼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과거를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을 붉힐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연약한 목숨을 부지해왔다.

손 회장은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집집마다 쇠죽 끓이는 냄새를 시작으로 저녁연기가 마을을 감싸고 난 후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이가 바로 그의 옛 모습이다. 식구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모은 개밥 주변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파리가 날아다녔지만, 이 밥을 ‘지키려는 개’와 ‘빼앗으려는 아이’의 총력전은 늘 되풀이 됐다. 개밥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었던 작은 아이는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개를 온몸으로 막고선 쌓아놓은 찬밥 덩어리를 닥치는 대로 입에 쑤셔 넣었다. 누구하나 돌봐주는 이가 없었기에 마을에서 아이는 ‘갑옷장군’으로 불렸다. 계절이 바뀌고, 몇 해가 지나도록 한 벌의 옷으로 보낸 터라 옷은 갑옷처럼 단단했고, 악취가 진동했다.

“어느 날 길을 걷다보니 어떤 사람들은 오른쪽 볼이 툭 튀어나와있고, 다른 이들은 왼쪽 볼이 볼록 하게 나와 있었어요. 굶주렸던 저는 저 사람들의 입에 과연 어떤 음식이 있을까 쳐다보면서 상상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중, 한 아이의 입에서 사탕이 툭 하고 떨어졌어요. 또르르 사탕이 굴러가면서 모래알이 더덕더덕 묻었죠. 다행히 그 아이는 사탕을 도로 줍지 않더라고요. 인파들이 사라진 후, 곧장 사탕이 떨어진 곳으로 향했어요. 온 힘을 다해 불고 털어내도 흙이 털어지지 않았지만 입속에 넣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당시의 달콤함이 생생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땅만 쳐다보고 다닌 것 같아요. 혹시나 사탕이 떨어질까 싶어서였죠. (웃음)”

누군가가 흘린 사탕 한 알의 달콤함을 현재까지도 생생히 기억할 만큼 어려웠던 옛 시절을 보낸 손 회장. 그는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이기에 지독한 가난은 참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만 서자(庶子) 출신으로 어머니, 고모나 형제 등 가족에게서 갖은 멸시와 경멸을 받으면서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기억은 장성한 뒤에도 쉬이 떠나지 않았다. 어린 그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저놈 잡아라. 저놈 잡아서 두들겨 패라!”이고, 영문도 모르고 흠씬 두들겨 맞은 아이는 강원도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대화 상대가 없어 입 한번 떼지 못하고, 글조차 배울 수 없었지만 버려졌던 순간에도 집 주소만큼은 용케 기억해 마을로 돌아왔다. 먼 길을 내려왔지만 따뜻한 가족의 품에 안기지는 못했다. 멸시하는 가족들이 무서워 집 앞을 지나가지 못했던 그는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성장기에 영양공급은커녕, 한 톨의 쌀도 쉽게 구할 수 없었기에 눈에 띄게 왜소한 체구의 아이는 볏단 속에 몸을 구겨 넣고 찬 겨울을 보냈다. 이마저도 발각이 되어 새어머니의 손에 질질 끌려가던 중, 오른쪽 팔이 부러졌다. 제때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축 늘어졌던 오른쪽 팔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지금까지도 덜덜 떨리기 일쑤다.

당시가 생각난 듯, 벅차오르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하는 손 회장. 하지만 그는 세상이라는 거센 파도에서 깨지며 경험했던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데 거리낌이 없다. 한 때 원망했던 부모와 가족, 이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경하면서 그의 삶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저라고 왜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부모님의 상황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그분들을 존경하면서 제 삶이 달라졌습니다. 저를 멸시했던 새어머니, 고모, 형제들을 일일이 찾아가 용서하고 ‘이제 다 괜찮다’고 말해줬어요. 제아무리 지식에 능통한 사람이라도 부모님을 섬기지 않고, 조상을 향한 존경과 감사가 없으면 그 인생이 순탄할리 없습니다. 제가 미약하나마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온정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저의 뿌리를 바로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효를 행하는 자식은 부모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일을 알아서 잘하고, 부모나 조상에게 욕되는 언행을 하지 않으며,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가문의 명예를 빛내고자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사람다운 수양과 실천을 한다고 말한다. 즉 부모에게 효를 행함으로써 그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가화만사성이 되는 것임을 절감하는 이야기다.

 

돈 버는 것은 ‘기술’ 돈 쓰는 것은 ‘예술’

손찬식 회장은 인생에서 역경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이 ‘가난’의 유산이야말로 가장 값진 유산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땀과 돈의 소중함을 알았고, 배고프지 않기 위해 억척스럽게도 부지런을 떨었으며, 수수하고 검소한 삶을 이어왔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장성한 뒤 어렵게 돈을 모았지만, 모두 잃게 된 것이다. 자포자기하고 싶던 시절, 충청도 출장길에 오른 그는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날을 잊지 못한다. 일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음식점을 찾은 그의 눈에 한 노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겨울 발을 동동거리며 가게 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노인을 가게에 불러들여 물수건으로 얼굴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음식을 대접했다. 자신은 집에 돌아갈 차비만 남겨둔 채 노인의 손에 수중의 돈을 쥐어줬다. 이후 그는 자신이 어려웠던 순간마다 이 노인에게 전했던 따뜻한 불빛이 자신의 삶을 비춰줬노라 확신한다.

또 어느 날은 월세를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전세금을 마련했던 날이다. 음식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의 귀에 한 청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처가식구와 살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청년에게 그는 자신의 전세금을 선뜻 내어줬다.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입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가게를 나왔다. 그 역시도 신혼 초기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은 터라 다른 이들의 아픔을 쉽게 넘기는 법이 없었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는 나눔의 현장 속의 손 회장은 ‘돈 버는 것은 기술, 돈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썩 어울린다. 훌륭한 예술 작품이 영원히 남는 것처럼 돈도 좋은 일에 쓰면 영원히 가치가 남게 됨을 알게 된 후로 그의 나눔의 기간은 길어졌고, 그 공간도 넓어졌다.

평생 동안 손 회장은 재단이나 기관을 통해 상당히 많은 금액을 기부해왔다. 하지만 현재는 자신이 조금 더 가진 것을 나눠쓴다는 개념으로 좀 더 실천적인 나눔을 진행한다.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사)김해시바둑협회장을 역임하며 제10회 김해시장배 전국바둑대회를 개최, 건전한 스포츠문화 형성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이 어느덧 수준급 실력이 되었고, 흑백의 싸움에서 바둑돌들의 삶과 죽음이 우리 삶과 흡사하다고 느껴왔습니다. 바둑판은 치열한 싸움터지만 오랜 세월 다듬어진 공정한 규칙과 예의가 축적돼 있어요. 이것을 우리 삶에도 적용시킨다면 다툼 없는 사회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회장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눔’이라는 습관을 몸에 익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다음에 성공해서 재력을 모으게 되면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위해 물질을 쓰는 일보다 이웃에게 베풀기를 힘쓴다. 현재는 제작 중단상태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효를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액 자비로 ‘가화만사성’ 액자 수만 점을 제작·보급해왔으며, 참회하고 감사하고 기원하기를 반복하며 ‘인간성 회복’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108 참회록 CD도 제작해왔다. 또 “자식이 효도하면 양부모가 즐겁고, 양부모가 즐거우면 가정의 부귀와 영화가 따르고, 자손 대대손손 출세와 뜻을 이룬다”라는 스티커를 제작해 공중화장실에 직접 붙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백 마디의 말보나 한 번의 실천이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놀랍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눔의 수혜자나 규모를 정해놓고 움직이는 법도 없다. 허리가 굽은 노인들을 보고 허리보호대를 대량 주문했고, 홀로 차디찬 골방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이들이 안타까워 전기 난방 기구를 사들여 놓아줬다. 지갑에 돈이 모이면 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통에 우체국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게 된 그의 지갑 속에는 흔한 카드 한 장 없이 오늘 하루 한 끼나 두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현금 몇 푼이 고작이다. 이마저 길거리를 배회하는 노인이나 허리 굽혀 힘들게 일하는 이들을 보면 다 내어주기 일쑤이지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돈이나 권력, 출세가 아니라 ‘사람’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사람에게서 찾는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후회하거나 허무하다는 감정을 느낄 새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단지 ‘나중에 더 성공해서 하면 되지’라고 일축하며 뒷전에 밀쳐두는 것이죠. 하지만 누구에게나 ‘영원’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이라도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나눔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지금 당장 베풀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시간이 없습니다. 또한 세상에 더 가치가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물이나 신체질병의 유무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이들 모두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이고 함께 살아갈 우리의 이웃입니다.”

 

“가장 즐거운 일은 효도하고 나누는 것”

몇 주 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렸다고 밝힌 손찬식 회장. 그 까닭은 이러하다. 그는 굽은 허리로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에게 허리보호대를 선물했다. 노인이 굽어진 허리를 필 수 있음에 수없이 감사하며 기뻐하자 이를 지켜보던 한 부부가 노인에게 용돈을 건넸고, 이 소식을 들은 손 회장은 이들을 수소문해 점심을 대접했다. 작은 나눔의 실천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세상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자 벅찬 감동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또 한 번 다짐한다. “앞으로도 능력이 되는 범위에서 한 가정이라도 더 화목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를 따뜻하게 비추는데 기여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올라가는 길, 휴대폰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한 번 연을 맺은 지인들에게 꼭 문자를 보낸다는 손찬식 회장. 문자를 받은 이들은 또 다른 지인들에게 문자를 전송함으로써 그 가치를 공유한다. 단 한명의 사람이라도 변화됐으면 하는 진심을 담아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 회장의 오래된 습관이 이 글을 읽는 이들의 가슴 속에도 전해져 개인에서부터 가정과 지역, 나아가 따뜻한 대한민국을 완성하는 기초가 되길 희망하며 적어본다.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에서 맹자는 부모구존(父母俱存)하고 형제무고(兄弟無故)한 것을 제1락으로 여겼지만,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효자, 효녀님도 평소보다 부모님께 조금만 더 잘하시면 부모님 잔잔한 가슴에 흐뭇한 눈시울 적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효도하시고, 이웃과 나누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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