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송해-“365일 언제나 즐겁게 인생을 살아간다”
방송인 송해-“365일 언제나 즐겁게 인생을 살아간다”
  • 박성래
  • 승인 2016.03.1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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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송해

“전국~ 노래자랑…!” 

데뷔 61년, 올해 나이 91세. <전국노래자랑>의 히어로, 방송인 송해 선생에 대한 수치를 얘기하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놀랍게도 나이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30~40년 전의 이야기, 혹은 더 먼 시절 이야기를 할 때는 정확한 수치와 지명, 당시 책임자 이름까지 정확히 읊었다. 그뿐인가. ‘낙원동 칸트’라고 불린다는 송해 선생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사무실 옆에 조그마한 목욕탕을 가고 주위 사람들과 장터 국밥에 소주 한잔을 기울일 줄 아는 사람냄새가 나는 사람이다. 

 

‘전국노래자랑’의 MC로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요?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이 우리 일이죠.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사하는 일. 유랑극단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살아왔죠. 극단에서 ‘18호 간판의 혈투’ ‘눈 내리는 밤’ ‘봄밤에 온 나그네’ 등 오락물들을 많이 했어요. 이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긴 시간 전국노래자랑을 못 끌어나갔겠죠. 전국노래자랑은 제 무대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며 제 인생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 혼자 무대를 꾸민 것이 아니라 출연한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함께 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이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송해 선생님께 ‘사람들’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사람은 상호버팀목입니다. 사람은 서로가 버티고, 밀고 당겨주고 하는 교감이에요. 사람이 그런 것 없이 산다면 그게 뭐겠어요? 삶이라 할 수 없죠. 직업이야 어쨌든 서로는 어디 가서 만나도 버팀목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MC이신데, 금연에 있어서도 굉장히 모범이시죠?

“모범이라기보다도 하는 직업이 그거니까요. 그리고 또 제가 가끔 하는 얘기입니다마는 제 재산이라는 게 뭐 있습니까? 저 알고 인사하시는 분들, 그분들하고 어울리는 게 재산이거든요.”

  

송해 선생은 매주 일요일 정오 ‘딩동댕~전국노래자랑’이라는 귀에 익은 시그널과 함께 출연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노래를 이끌어내며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특유의 입담과 친근함으로 ‘국민MC’로 자리 잡으며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전국노래자랑을 하시면서 전국을 돌아다니시면서 좋은 것도 많이 드시고 선물도 많이 받으시겠어요.

“다른 분들은 다 그렇게 오해를 많이 하세요. 받는 것마다 전부 다 먹고 가지고 가는 줄 아는데, 솔직히 말씀드려서 무대에서 그분들이 저한테 주는 것! 그거 입으로 들어가는 거! 그것만 제 겁니다. 뒤에 보면 악사들이 다 있잖아요. 한 60년 같이 다니니까 귀한 것 선물 받으니까 60명 가운데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슬그머니 들어와서 제가 인심을 쓰고 그러죠(웃음).”

  

녹화하러 댁에서 언제쯤 출발을 하세요?

“녹화 지역에 하루 전날 갑니다. 요새는 교통이 복잡해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지역을 가더라도 전날 가야 돼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저는 전날 가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래요. 장터에서 장터국밥도 먹고요. 그건 제 보약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래야 거기가 친숙해 지고 출연자들과도 교감이 되겠죠.“

  

교통하시는 분들과 인연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 분들과 정말로 인연을 많이 맺었어요. 운전하시는 분들은 많이 외롭기도 하고, 또 인사 사고가 나면 무조건 구속이거든요. 그렇다보니 인사사고가 한 번 났다고 그러면 집안에 있는 부인들이 다 도망가고 그랬어요. 그걸 제가 회사마다 다니면서 조사를 해 봤어요. 한 해에 2, 30명 그래요. 그래서 그분들을 마음도 달래고 가정의 안전을 위해서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하자는 취지에서 합동결혼식을 열게 되었습니다. ‘88올림픽 전이니까 88올림픽을 위해서 88쌍을 순차적으로 접수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2번, 이틀을 접수 받았는데 300쌍이 넘었어요. 그렇게 미혼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요. 그래서 88쌍씩 사흘을 했어요(웃음).”

  

선생님도 녹화하기 싫으신 날이 있으세요? 

“회사원들이 회사 가지 싫은 날이 있듯이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녹화가 시작되면 재채기 한번 시원하게 하지 못하잖아요. 또 한 모금 마시고 싶은데 얘기하다 그러지 못하고요. 하지만 그걸 그렇게 귀찮게 생각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되죠. 내가 하는 게 이것이기 때문에요. 그런데 그때그때 참는 것도 저한테 약이 돼요. 사람이 뭘 하든 간에 끝장을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도 하나의 약이라고 봅니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았다’고 말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셨어요.

"이 시간이 올 때까지 저는 한번도 3년치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습니다. 방송인들은 프로그램개편 때마다 피가 마릅니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았어요. 그래도 저는 행복한 것이 '전국노래자랑'을 30년, '가로수를 누비며'를 17년 진행했다는 겁니다. 이만하면 정규직으로 몇 년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 별명 ‘낙원동 칸트’가 무슨 뜻인가요? 

“우리가 성격을 얘기할 때 ‘깐깐하다’라는 등 얘기가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처럼 생활하시는 분들이 일반인들한테 결례할 때가 있어요. 일반인들이 한가할 때 우리가 바쁘고 우리가 바쁠 때 일반인들이 한가하고 그래서 경우를 어길 때가 많고 결례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약속했는데 ‘왜 안 나오셨어요’라고 묻는데 ‘까먹었어요’라고 답하면 그건 큰 결례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걸 담아 두다 보니까 습관이 돼서 자꾸 깐깐하게 묻는 거죠. 사실은 제가 그렇게 깐깐한 성격이 아닌데...그래서 깐깐하다, 깐깐하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어요.”

  

송해 선생의 평전 『나는 딴따라다』는 지난 4월 27일 발간된 책으로 한국 근대사와 대중 문화사를 통해 일생을 그려냈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이룬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사를 보여주며, 그 속에 송해 선생의 인생을 담아냈다. 한국 대중문화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송해 선생의 책은 기성세대에게 추억과 그리움을, 젊은 층에는 많은 영감과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준다.

  

오민석 교수께서 선생님의 평전 『나는 딴따라다』를 썼는데요. 

“처음에는 한 것도 없이 무슨 책을 쓰냐고 했었는데, 오 교수님과 아주 인연이 우습게 돼가지고(웃음).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들 어려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겠지만 이제는 한 번 남겨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 경우는 세월이 조금 흘렀고, 요즘 광복 70년이라고 하지만 저는 살면서 전쟁과 분단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는 동안에는 이런 일을 겪은 사람도 있다’고 전해줄 수 있다면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을 왜 이렇게 붙이셨어요?

“‘딴따라’라는 의미를 당신들이 아시고 그러는 거요? 사전에 팡파레라는 얘기를 우리가 하잖아요. 스타가 나올 때 하는 음악 아니에요. 그런 존경스러운 음악 단어인데 그걸 하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직업에 얹어서 딴따라라고 하고 있어요. 그러지도 말아야 되겠고, 딴따라라는 사람들도 사명감을 가졌으면 해요.”

  

‘딴따라’라는 말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많은 일들을 겪었을 거 같아요.

“숱한 일이 많았죠. 잡을 것 없는 낭떠러지를 떨어지는 기분이 늘 들었어요. 우리 계통에 오랫동안 있던 사람들은 그만 두어야겠다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하는 모든 걸 다 해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유랑극단도 많이 했으니까요. 어떤 연기를 하면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경험으로 사회를 볼 때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고요. 그런 이득도 있어요.”

  

선생님의 이야기는 영화소재로도 좋을 거 같아요.

“한국전쟁 당시 군대에서 휴전 전보를 내가 쳐놓고 고향을 못가는 사람이 아니오. 그런 걸 지금 생각하면 ‘이게 무슨 운명이었느냐’하는 생각이 들어요. 1953년 7월 27일 밤 22시를 기해 모든 전투를 중단한다, 이게 원본이거든요. 암호였으니 몰랐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거예요. 그걸 왜 내가 쳤을까, 또는 그게 아니면 지금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요.”

  

책을 통해 새롭게 얻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올해 광복 70년이라고 하죠. 요즘 사람들은 그 얘기를 저처럼 느끼지 않을 거예요. 나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할 길을 많이 걸어왔어요. 이런 얘기라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요. 인생이란 게 간단하게 와서 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이북이 고향이신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굉장히 많으그 

“그럼요. 한 없이 많죠. 우리 고향은 해주 바로 뒤이기 때문에 이때쯤 되면 물론 농사 일도 많겠지만 자라나는 친구들의 행방 같은 것도 알고 내가 공부한다고 한참 공연할 때 생각이 납니다마는. 수백 번을 얘기해 봐도 못 가고 모란봉에 가서 노래자랑을 한 번 했죠.”

  

부산에 '송해 거리'가 생긴다면서요?

“송해 거리에는 송해전시관, 전국노래자랑 참가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시관, 전국노래자랑을 모티브로 한 송해 이동 노래방 등이 건립될 예정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이 소식을 듣고 기념품, 사진 등을 기증했어요. 한국전쟁 때 피난 오면서 맺은 부산과 맺은 인연으로, 전쟁이 끝난 뒤에도 10여 년간 부산에 머무르면서 남포동을 거점으로 극단에서 활동한 바 있어요.” 

  

이런 말 꺼내지 조심스럽지만...아들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이 있으신데요.

“‘가로수 누비며’라는 교통 프로그램을 17년 간 진행했는데 아침마다 ‘어젯저녁 안녕하셨습니까, 오늘도 안전운전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는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미안한 마음도 있고 아이들 단속을 못했다는 죄스러운 마음도 있고요... 또 우리가 흔히 말하다시피 부모보다 먼저 가면 가슴에 묻고 간다고 하는데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어요. 지금도 한남대교를 안 다닙니다.“

  

선생님 지금 행복하세요?

"젊은 친구들이 사진 찍자고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제 인생의 봄날은 지금부터입니다. 밖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인사하는데 그렇게 훈기가, 사람 냄새가 날 수가 없어요. 저의 마음은 여전한 청년이자 희극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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