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Now] 2020 코로나 시대에 돌아보는 문화 트렌드
[MonthlyNow] 2020 코로나 시대에 돌아보는 문화 트렌드
  • 김예진 기자
  • 승인 2020.11.12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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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은 갈수록 짧은 음영을 남기고 이른 저녁의 어스름 속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나른한 저녁, 휴식 시간을 맞으며 잠자던 감성을 불러오는 시간. 바삐 살아가는 생활 속에 가을 밤 하늘을 쳐다보는 일도 쉽지 않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떠올려 보자. 전편을 기억하지 못해도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는 첫 연의 구절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시()를 읽는다고 하면 대부분 시집을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2020년 첨단 시대에는 시를 향유하는 방식도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우리의 정서를 달래줄 시를 한 편 읽고 싶다면 스마트 폰에 접속하면 된다. ‘시요일이라는 시() 전문 배달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면 일정의 이용료를 지불하고 정서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현대인의 필수품인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개인의 시심(詩心)도 함께 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지난 시대의 대중문화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날이 갈수록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311‘2019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 성인들의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한 연간 평균 독서량은 7.5권으로 집계되었다. 이 수치는 2017년 통계조사의 9.4권과 비교하면 1.9권이 줄어든 것이다. 전체 성인의 평일 평균 독서 시간은 31.8분이었다. 성인의 휴일 독서 시간은 27.5분이었고 학생들의 평균 독서 시간은 89.5분으로 집계되었다.

대한민국의 근대 매스미디어 문화는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초기에는 일본의 영향 아래 성립되었다. 대중이 향유하던 음악과 영화, 방송 매체는 일제 강점기부터 출발되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대중가요는 일본의 유행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고 이는 해방 당시까지 지속되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미 군정이 시작되면서 당시의 문화 트렌드는 미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미군정청 지배하 대중문화는 일본의 영향에서 자연스럽게 미국 문화의 영향으로 그 구도가 재편되어 갔고 당시 영향력 있는 미디어는 라디오 방송이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권에 들게 되었다.

이 시기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을 보면 과거에는 일본식 5음계의 곡들이 많았던 데 비해 서양 근대 음악의 7음계로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가요에도 서구적인 가사나 이국적 취향을 지향하는 곡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예를 들면 1955년에 발표된 <아리조나 카우보이>, 1956년에 발표된 <럭키 모닝>등을 들 수 있다. <닐리리 맘보>라든지 <비의 탱고>, <기타 부기>등 서구 문화를 동경하는 풍조를 반영하는 노래들이 많이 작곡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이른바 춤바람으로 일컬어지는 서구의 향락 문화가 들어와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은 1954<서울 신문>에 연재한 소설 자유 부인에서 당시 전후(戰後)의 변화해가는 성 윤리 의식과 퇴폐적 사회 풍조를 보여주었다. 자유 부인1956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당시 사교춤이 성행하고 전후 재건의 와중에 서구 문화의 급속한 유입과 전통적 가치관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60년대 70년대 반공(反共) 이데올로기 시대

1960년대의 대중문화의 주된 흐름은 미국 문화로 대변되는 서구 물질문명의 동경이었으며 세계적 강국인 미국을 향한 대중의 욕망이 미국 문화의 모방적인 형태로 표출되었다. 오디션을 통해 미8군 무대에 데뷔한 가수들은 미국 팝가수를 동일시하거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했다. 가수 최희준은 냇 킹 콜을, 유주용은 프랭크 시내트라를, 박형준은 페리 코모를, 패티김은 페티 페이지의 노래를 부르며 모방했다. (대중문화의 이해김창남 저, 한울, P140)

1961 5·16 군사정변 이후 정부는 반공주의를 더욱 강화했으며 문화 분야에도 통제와 검열이 엄격해졌다. 문학작품이나 대중가요도 월북하거나 납북된 인사의 작품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검열의 잣대에 근거한 판매금지, 방송 금지, 상영 금지의 시대였다. 우리 한국 영화 사에 기념비적인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5·16 군사정변 직후 상영이 금지되었다. 영화제작자나 작가들은 화를 피하기 위해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해야 했다. 또한 스스로 자기 검열을 감내해야 했고 이는 창작에 큰 제약적 요소가 되었다. 정권은 대중가요의 가사도 문제 삼는 경우가 빈번했고 박정희 정권하에서 많은 금지곡들이 생겨났으며 이런 검열의 폭압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 매스 미디어 시대는 1961년 문화 라디오, 1963년 동아 라디오, 1964년 동양 라디오가 개국으로 시작되었다. 텔레비전 방송도 1961년 실시되었다. 1961KBS, 1964TBC, 1970MBC TV가 개국했다. 성인용 주간 오락 잡지의 대표주자 선데이 서울19689월 창간되었다.

1970년대는 라디오, TV 등 매스 미디어의 보급이 급속도로 신장되었고 이는 대중문화에 상업자본의 영향력이 동반 상승되는 결과를 낳았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 정권은 언론, 문화계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행사했고 자신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해 갔다. 영화계는 우수한 한국 영화의 제작에 몰두하기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쉽게 취할 수 있는 해외 외화 수입권을 따내기 위해 경쟁했다. 관의 통제 하에 창작의 제약이 지나치게 많다 보니 진지한 사회의식을 다룬 영화보다는 상업성에 영합하는 하이틴 영화나 이른바 호스티스 물이라 불리는 저급 영화가 양산되기도 했다. 사회 전반에 정부의 통제가 극도로 강화되었고 개인의 개성 표출이 억압되는 야만의 시대였다.

 

80년대 경제 성장 시대의 트렌드와 청소년 문화의 대두

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1980년대는 대중문화계에 새로운 변곡점이 된 시기다. 1980년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었고 비디오 게임, 전자오락 게임이 등장했다. 컬러 방송의 시작은 영상 시대의 발전을 가져왔다. 스포츠 분야도 1970년대와 달리 정부의 전폭적지지 아래 프로 스포츠 산업이 비약적 발전을 이뤄 나갔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씨름, 농구, 축구 분야도 프로 창단이 이어졌고 스포츠의 활성화는 스포츠 용품 산업의 호황을 불러오고 레저 산업이 발전했다.

당시 5공화국은 정권 창출 과정의 정당성에 취약점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대국민 유화 정책을 펼쳐 나갔다. 이른바 쓰리 에스(Three S) 정책으로 알려진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s), 섹스(Sex)로 집약되는 우민화 정책이었다. 또한 19459월 해방 당시부터 82년 초인 그해 1월까지 37년을 이어 온 야간 통행금지 조치가 해제되었다. 3S ScreenSex는 유사한 맥락으로 대중문화 분야에서 전 시대에 비해 성표현의 제약이 느슨해져 향락적인 에로 영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애마 부인>, <무릎과 무릎 사이>, <>, <어우동> 등 군부 독재의 시대가 사회 전반을 옥죄는 분위기 속에 젊은이들의 반항과 분출을 막기 위한 일종의 현실 도피 같은 맥락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의 중요 이벤트 중에 중고교생들의 교복 자율화와 두발 자율화 조치가 있다. 1980년대의 십대는 그 이전 세대의 틴에이저와 달리 일정한 소비계층을 형성한 세대였다.

80년대 경제 성장으로 한국 사회에 중산층이 형성되었다. 물질적 풍요 속에 성장한 당시의 청소년들에게는 교복 자율화 시행으로 외모와 복장에 일정 정도의 자율이 주어졌다. 그러한 기류 하에 고가(高價)의 유명 메이커 브랜드의 의류나 운동화가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청소년들은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80년대 중후반 청소년 잡지를 장식하던 십대의 모습은 유명 브랜드의 데님 청바지, 로고가 선명한 운동화에 헤드폰을 끼고 최신 모델의 휴대용 미니 카셋트를 손에 든 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는 이미지 한 컷으로 그 상징성을 요약할 수 있다.

 

() 이데올로기 시대의 경향

876·29 민주화 선언 이후 한국 사회는 또 다른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정치 · 사회적으로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고 1991년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동구권 국가와의 수교,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과 수교가 이루어졌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규제적 통치 일환으로 제정되었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어 언론의 자유가 확대되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영화만 해도 90년대 중후반 극장 개봉 영화는 80년대와 비교하여 몇 배 늘어났고 TV 채널 수는 네 다섯에서 오십여 개 가까이로 늘었다. 도서 대여점 · 비디오 대여점이 급증하였고 성인 비디오 시장이 대중문화의 이면에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80년대 90년대 초까지 (베를린 장벽 붕괴 시점) 지식인의 담론을 차지하던 이념 논쟁이 사라지면서 문화의 다양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국제사회의 냉전 대립구도가 약화되면서 대중의 관심은 여가 생활과 개인의 개성 표현 영역으로 옮겨 갔다. 케이블 티비, 위성방송의 등장, 통신 산업의 발달과 함께 대자본의 문화산업 진출 등으로 그 이전 시기와 다른 변모 양상이 나타났다. WTO 체제의 출범과 함께 문화 시장도 개방되었다.

1990년대의 신세대 문화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서태지 신드롬이다.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개성자유를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아이콘이다. 이때부터 청소년들이 대중가요부문의 큰 영향력을 차지하는 주요 세력이 되었다.

 

2000년대 대중(大衆) 결집의 힘

199712월 외환보유액 급감으로 금융위기에 봉착한 대한민국이 국제 통화기금 (I.M.F : 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지원 요청을 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경제 위기는 정권 교체를 가져왔고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시장 개혁이 시작 되었다. 경제 전반의 위기는 문화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시장 개방 하의 대중문화산업은 우려와 달리 장기적인 관점에서 위기가 기회가 되어 한국의 문화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 대한민국은 국민의 염원이 하나로 결집되는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월드컵 기간 동안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악마의 물결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그널이었다.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시초(始初)로서의 인상적 이벤트였다. 이를 계기로 대중의 자발적 참여는 자신들의 의견과 욕망을 사회적 결집을 통해 표출하는 적절한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문화 소통에 대하여

2020년 지금 현시점은 인류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수인 코로나19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언택트, 온택트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화 산업도 일시적이나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는 첨단 산업 기술의 발달로 해방 이후 70여 년의 문화 발전사를 빛의 속도로 바꿔 버리는 환경에 놓여 있다.

2020년 하반기인 지금, 문화 분야 전반에 코로나19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9코로나 일상 속 비대면 예술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대면 진행이 어려운 공연이나 문화 전시를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비대면 환경에 적합한 온라인·미디어 예술 활동 지원사업에 2020년 추경 149억 원을 지원한다. 4차 산업 핵심기술[(빅데이터) · 5세대 통신(5G )· 인공지능(AI) ]과 예술적 상상력의 융합을 통한 예술과 기술 융합 지원도 확대(202021억 원에서 202132억 원으로) 한다. 예술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기술 개발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공연뿐 아니라 문학 · 미술 등 여타 분야도 온라인 · 비대면 방식을 활용하고 해외 진출도 적극 활성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비대면으로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국립문화시설의 온라인 · 비대면 서비스 제공이 확대될 것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간 삶의 모습을 미학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 예술이 없는 삶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첨단 과학의 발달은 인간 소외를 불러왔다. 소외에서 느끼는 고독과 상실감을 우리는 이겨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문화를 특정 사회가 오랜 시간 집적(集積) 해온 물질적 · 정신적 산물이라고 정의할 때 문화는 인간 삶의 변화에 맞춰 진화하는 산물이라 하겠다. 곧 이어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역동적인 노력으로 열어가야 한다. 코로나 시기의 치열한 시대정신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먼 훗날의 차세대(次世代)로 이어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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