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Now] 마음으로 함께 하는 기쁜 우리 설날이기를
[MonthlyNow] 마음으로 함께 하는 기쁜 우리 설날이기를
  • 박금현 기자
  • 승인 2021.02.04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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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sbank

오늘은 절기로 입춘이다. 입춘은 새해의 첫 절기로 봄을 맞는 날이다. 농경 사회를 사셨던 우리의 선조들은 입춘이 되면 가정마다 입춘축( 立春祝 : 봄이 온 것을 기리어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내용을 적은 글.)을 써서 복을 기원하는 글귀를 벽이나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었다.

올해 2021년의 입춘은 눈과 추위로 봄이 조금 더디게 오는 듯하다. 다음 주 212일 금요일은 우리 고유의 명절 설이다. 2020년 경자년을 어렵게 보내야 했던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신축년 새해에는 감염병도 사라지고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 모두 더욱 발전되고 나아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설날의 의미

설날은 누구나 알고 있듯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설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도 했는데 이는 모두 일 년의 첫날이라는 의미이다. 설은 그전 연도의 묵은해가 지나가고 새로이 시작되는 날이므로 우리 선조들은 1년의 첫 시작이 좋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근신(謹愼 :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함)과 자중(自重 :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신중하게 함.)하는 마음으로 새해의 풍요로움을 기원하였다.

조선시대에 설날은 의정부 대신이 관원들을 인솔하여 대궐의 임금님을 알현하며 새해 문안을 드렸다. 궁궐 정전 앞뜰에서 조하(朝賀) 의례를 행하였고 전국 팔도의 관찰사, 병사, 수사, 부사, 목사도 전문과 토산물을 진상하였다. , , , 현의 호장과 아전도 참석했다고 전한다. (조선대세시기국립민속박물관 , 2007, p177)

설날, 집안 사당에 배알하고 제사 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한다. 설날 이른 아침, 의관을 정제하고 대개는 종갓집(宗家 : 족보상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 온 큰집.)에 모여 제수(祭需)와 제주(祭酒)를 진설(陳設: 제사나 잔치 때, 음식을 법식에 따라 상 위에 차려 놓음.)하고 차례를 지낸다. 종갓집에서 차례를 함께 지내는 상황이 되지 않는 가정은 각자 집에서 조상에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4대조,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고조부모까지 지냈다. 5대조 이상은 차례나 기제사(忌祭祀: 해마다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차례는 4대 조의 윗대부터 순서대로 지내며, 한 해 동안 보살펴 주신 조상의 음덕(蔭德: 조상의 덕)에 감사하며 새해에도 변함없는 보살핌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사당(祠堂: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이 있는 집은 사당에서,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청이나 큰 방의 북향에서 신위( 神位 : 조상의 영혼을 모시는 자리)를 모시고 차례를 지낸다. (민속연구가 박호순 ,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우리 민속의 유래도서출판 Book, p20)

 

차례에 대하여

설의 제수(祭需 : 제사에 쓰는 음식물.)는 술 · 떡국 · 과일 · (: 생선이나 고기 따위를 양념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불에 굽거나 지진 음식.)이 있다. 설의 차례는 떡국이 주가 되기에 떡국차례라고도 한다. 차례상의 진설은 지방과 집안의 전통에 따라 각기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 격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祭主: 제사의 주장이 되는 상제)는 장자 장손이다. 차례를 지내는 시간은 보통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이며 차례를 지내는 집안의 장소는 대청이나 큰 방이다. 신위는 북쪽을 향해 놓고 진설은 대개 다섯 줄로 놓는다.

첫째 줄의 왼편에는 술잔을 올리고 오른편에는 떡국을 올린다. 추석에는 메[]를 올리나, 설 명절에는 떡국을 올린다.

둘째 줄에는 적()과 전()을 어동육서(魚東肉西)에 따라, 생선류는 동쪽에 고기류는 서쪽에 놓는다.

셋째 줄에는 탕()을 놓는데, 둘째 줄처럼 어탕(魚湯)은 동쪽에, 서쪽에는 육탕(肉湯)을 놓는다.

넷째 줄에는 좌포우혜(左脯右醯)라는 원칙으로 육포와 포류는 왼편에 자리하고 오른편에 식혜를 놓았다. 가운데에는 나물, 간장, 김치를 놓았는데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리는 김치는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나박김치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

다섯째 줄에는 과일과 과자를 놓았다. 홍동백서(紅東白西)와 조과동천실서(造果東天實西: 유밀과 과자류는 동쪽, 천연 과일은 서쪽에 차리는 제사의 격식)의 규칙에 따라 과자류는 동편 끝 쪽에 놓고, 동편의 나머지 자리에 붉은색 과일을 놓으며, 흰색 류의 과일은 서편에 놓으면 된다.

비늘이 없는 생선은 차례에 쓰이지 않았다. 갈치 · 멸치 · 참치처럼 자가 붙은 생선도 쓰지 않았다. 숭어 · 양태 · 잉어도 쓰지 않는다. 가오리는 비늘이 없어도 사용하고 내륙 지방에서는 꼬막을 제물로 쓰기도 했다.

제사나 차례 때 조상의 신위를 북쪽으로 모시는 이유는 북망산과 관계가 있다고 전한다. 사람이 죽으면 북망산(北邙山 :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이르는 말. 북망산천이라고도 한다.)으로 간다고 하여 조상이 가신 방향인 북쪽으로 신위를 모시는 것이다. (민속연구가 박호순 알고 보면 재미있는 우리 민속의 유래, 도서출판 Book , p21~22)

 

어린 시절 설날의 추억

나의 고향 큰댁 동네에서는 1970년대 후반까지도 설날 아침, 마당에 나가 보면 복조리가 놓여 있는 때가 많았다.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복조리를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

그 시절의 초등학교 이하 어린이들에게 있어 명절은 보통 신나는 날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큰댁에 일가친척들이 다 함께 모여 북적대는 것이 잔치 분위기도 나고 기분을 들뜨게 하는 면이 있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 뒤 세뱃돈을 받아 장난감이나 과자를 사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어린이들은 설에 부모님으로부터 보통 설빔 (설빔: 설을 맞이하여 새로 장만하여 입거나 신는 옷, 신발 따위를 일컬음)을 선물 받았다.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절에 새 옷을 선물 받는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열 살 때, 설날 풍경이 떠오른다. 당시 어린이들에게 입히는 알록달록한 한복을 때때옷이라고도 불렀는데 어머니는 내게 색동 치마 · 저고리를 장만하여 입히셨고 한겨울, 날씨가 몹시 추워서 토끼털로 된 어린이용 조끼를 한복 위에 덧입었던 기억이 난다.

명절 하루 전날, 큰댁에 도착해서는 큰 어른이신 할머니와 큰아버지, 큰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는 동리의 내 또래 꼬마들과 놀기 바빴다. 벼를 베고 난 논둑에 물을 대어 얼린 얼음판에서 썰매를 타거나 동네 아이들과 함께 연을 날렸던 기억이 난다.

, 동네 처녀들이 한복을 입고 모여 하늘 높이 널뛰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즈음에 시골에서는 농한기인 겨울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윷놀이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놀다가 해 질 녘이 되어 큰댁 마당에 들어서면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시던 어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가래떡에 조청을 묻힌 간식을 주시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큰댁에 가면 언제나 사랑방에 묵었다. 겨울에는 할머니께서 장작불을 어찌나 뜨겁게 때 주셨던지 그 열기로 절절 끓던 아랫목에 화상을 입을 지경이었다. 당시 큰집은 지어진 지 백 년도 훨씬 넘었던 구옥이었다. 6·25전쟁 때 북한군의 폭격으로 그 동네 집들 모두 불에 탔지만, 우리 큰댁과 바로 옆집만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집은 후일 학교가 들어서게 되어 마을 전체가 이주했던 1990년 무렵까지 존속된 매우 오랜 고택(古宅)이었다.

집 마당 한편에 있던 디딜방아와 코뚜레를 했던 누런 황소 두 마리가 정지된 화면처럼 기억 속에 떠오른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함께 먹는 떡국과 식혜. 올챙이배가 되도록 떡국을 한 그릇 가득 먹고 난 뒤 후식으로 차례상에 올랐던 약과와 진분홍색 과자를 먹다 보면 입술에 색소 물이 빨갛게 물들곤 했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코로나시대 설을 맞으며

23일 어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설 연휴 기간에도 만남 자제를 당부하는 정부 행정 당국의 공지가 있었다.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생활하다 1년에 몇 번 명절에 만나 뵙던 친지 간, 가족 간의 만남도 이제 어렵고 가슴 아픈 일이 된 것이다.

나와 가까운 친척 어르신 중 한 분은 우리 나이 89세로 요양원에 계신다. 가벼운 치매 증세가 있으셨는데 이제는 직계 자녀들조차 전혀 알아보지 못하시고 대화를 할 수 없게 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했던 작년 1월 무렵 요양원에 입소하셨고 그 이후 뵐 수 없었다.

멀리 살고 계시는 큰 고모님도 이제 85. 청력이 많이 약해지셔서 전화벨 소리도 듣지 못하시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져 간다. 지병을 앓고 계셔서 쉽게 찾아뵐 수 없는 마음이 안타깝다. 그래서 전화를 자주 드린다. 문안 인사를 드리는 작은 것 하나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신다.

어른들이 연로해지시니, 수십 년 전의 일들은 잘 말씀하시는데 최근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신다. 찾아뵈어야 할 어르신들 모두 연세가 80이 넘으셨다.

강원도 농촌 지역에 사시는 지인으로 부부이신 어르신이 계신다. 인사드리러 가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최근 모 선교회발() 감염 여파로 그 인근에 수십 명의 확진자가 나온 지역이었다.

뵙기 어려워서 작은 마음의 선물을 보내드렸는데 답례로 (나의 어머니께 드리는) 온열 찜질기를 선물로 보내오셨다.

지인이신 그 어른이 음력 섣달에 팔순을 맞으셨다. 그분의 자녀 네 사람이, 아버님의 팔순 잔치를 여는 대신 그 동리 어르신 백 분께 온열 찜질기를 선물했다고 하신다.

평생 농사일로 고생하신 시골 어르신들이 관절염이나 근육통 등으로 고생하시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찜질기를 선물로 마련했다는 전언이다. 그분들의 모범적인 삶과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하였다.

팔순을 맞은 어르신의 욕심 없이 내려놓는 삶의 모습은 진실로 존경스러웠다. 그분의 자녀들도 부모님의 뜻을 이어받아 훌륭한 일을 도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인생이 한고비 고비를 넘길 때마다 뭔가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 교훈은 세상의 일을 통해서도 오고 스스로 내면의 사색을 통해서 오기도 하는 것 같다.

2021년 신축년 새해의 출발점에 서 있는데 온 국민의 마음이 무겁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연결하는 마음의 유대(紐帶)까지 차단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의 해, 과거 농경 사회에서 평생 인간과 함께 고된 노동을 해 왔던 소의 정신을 돌아보며 가족과 어르신들께 우리 마음속의 정()과 감사를 표현하는 설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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