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피어나 더 화려한 꽃, 라베리따의 뿌리 깊은 아름다움
늦게 피어나 더 화려한 꽃, 라베리따의 뿌리 깊은 아름다움
  • 박금현 기자
  • 승인 2021.04.02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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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베리따 범영순 대표

라베리따(Laverita)’는 독자적인 디테일 기법을 구축하며 무려 9개의 특허를 얻은 의류 브랜드다. 이태리어로 진실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이 브랜드를 곧장 국내 브랜드로 상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더욱이 가정을 꾸린 뒤 느즈막히 대학에 진학해 이태리 유학부터 귀국 후 박사과정을 거친 여성CEO가 런칭한 브랜드라고 하면 놀라움은 브랜드 그 자체보다 이제 이 범영순이라는 사람으로 옮겨질 것이다. 교단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후학 양성에 애쓰는 선생님이자 활발한 현역 디자이너, 그리고 차세대 여성CEO들의 멘토가 되고 있는 라베리따의 범영순 대표를 만나보았다. 옷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철학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시대에 필요한 여성의 목소리를 확인하게 되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라베리따 범영순 대표 ⓒ박금현 기자

 

내 열정의 타이밍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무려 백화점 명품관에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쾌거를 이뤘지만 범영순 대표는 자신의 디자이너 인생의 출발을 간소하게 소회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에요. 다행히 적성에 맞았죠. 말하자면 있는 줄도 몰랐던 손재주가 있어서 계속하게 됐죠.” 범 대표는 가난과 시련이 자신의 축복이라고 덧붙였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뒤 훗날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보통의 삶을 살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겐 헝그리 정신이 새겨져 있었다고.

자아실현이라든가 적성을 따라 직업을 구한 케이스는 아니에요.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말을 듣고 아무래도 제가 여자다보니 옷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았죠. 당시만 해도 사회가 디자이너를 미적인 감각을 발산하는 우아한 직업이기보다는 그저 기술자로 여겼던 것 같아요. 사실 라베리따 이전에 1988년도에 심플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오픈한 제 첫 브랜드가 있었어요. 의류업계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들인 셈이죠. 샵으로 얻는 수익은 나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 안에 묘한 열등감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됐어요. 전공자가 아니라는 자격지심, 학벌에 대한 갈망. 뒤늦게 찾아온 학구열이 뒤틀린 욕망으로 몰아치기 전에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그 길로 범 대표는 광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서른여섯 살에 스물, 스물한 살들이랑 지내려니 참 힘들었다고. 무엇보다 생전 그림을 그려본 적 없었기 때문에 일러스트 작업이 가장 힘들었는데, 그만큼 배우는 재미가 큰 과정이었다고 미소 지었다. 대학교 밖 필드에서는 이미 전문가나 다름없었지만 기초부터 성실히 배우자는 마음으로 대학의 커리큘럼을 따라가고자 별도로 시간을 내 화방을 다니며 부족한 스케치에 투자 할 정도였다.

이후 범 대표가 걸어온 흔적은 오직 열정으로밖에 설명되지 않을 만큼 눈부시고 강렬하다. 광주대학교 졸업시즌에 열린 콘테스트 수상이 계기가 되어 장학생으로 이태리 밀라노로 유학을 떠나게 됐고, 유학을 다녀온 뒤에는 홍익대학교에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며 바야흐로 서울 입성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뿐만일까, 마침내 백화점 명품관에 라베리따를 입점시킨 시나리오는 한 개인의 빛나는 성장 서사를 넘어서 여성 직업인으로 성공하기가 척박하던 시절의 대한민국에서 이뤄낸 쾌거나 다름없었다.

저는 학교에서 축제 때마다 열리는 패션쇼에도 남들이 1-2개의 작품을 낼 때 11개의 작품을 내면서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노력과 성실을 쏟았어요. 덕분에 대상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 싶어요. 그때 교수님들이 제게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학생들한테 큰 귀감이 될 것 같다.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라고, 말하자면 저는 학과의 큰언니였던 셈이죠(웃음). 실제로 저로 인해 용기와 자신감을 얻고 유학길에 올라 공부를 꾸준히 한 동기, 후배들이 있고요. 대학시절은 제게도 현역 디자이너로서 더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귀한 동력이 되었죠.”

 

혁신과 성실, 라베리따의 시그니처

결혼 이후 자신의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끌고 간 범영순 대표이기에, 그녀는 경력단절 여성들 사회진출을 앞둔 후배 여성들의 목표와 욕구에 관심이 많다. 아이를 둔 엄마이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막내며느리였던 그는 어떻게 지금까지의 시간을 모두 견딜 수 있었을까.

말하자면 당시로서는 여자가 일을 하기에 나쁜 조건은 다 갖추고 있던 셈이잖아요(웃음).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어요. 신랑과 시어머니 모두가 저를 응원해주였거든요. 특히 시어머니의 경우 같은 여자가 봐도 멋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꼭 해낼 수 있을 거다라고 격려해주시는데, 정말 큰 힘이 되었죠.”

가족들의 지지, 특히 같은 성별이 전하는 깊은 응원만큼 힘이 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범 영순 대표가 후배 여성들에게 전하고픈 마음과 역할도 꼭 이런 것이리라. 당신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도움이 되겠다는 연대의 손길 말이다.

저 혼자만 고민하고 분투했다면 절대 오늘 같은 날이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제 지나간 시간에 더해진 응원들 덕분에 삶에 대한 충만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요. 2년 동안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밀라노에서 홀로 어학연수를 할 때에도 한국에서 적립해온 따뜻한 마음들이 힘이 되었죠.”

겸손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범 대표는 실전에 강한 사림이 아닌가 짐작하게 됐다. 10개에 가까운 특허를 보유하는 디자이너는 절대적으로 드문 케이스다. 그녀 자신의 남다른 끈기와 도전정신 없다면 불가능한 현실일 테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AI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 촬영만으로 신체 사이즈를 즉각적으로 측정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를 냈다. 기업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브랜드의 경쟁력일 터, 업계에서 이미 단단히 자리를 잡은 라베리따지만 범 대표의 시선은 언제나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디자이너는 평생 영감을 찾아 떠나는 직업

범 대표가 지닌 최대 미션은 제2의 범영순이 나올 수 있도록 후학양성에 힘쓰는 일 아닐까. 일찍이 체감하고 있는 바, 그는 유학에서 돌아온 이래 조선대, 광주대, 호남대와 MOU를 맺어 3학 점짜리 인턴 십을 진행한 지 이미 꽤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콜라보레이션 패션쇼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패턴 하나하나 범 대표가 손수 컨펌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직접 디자인한 옷을 시장에 선보이는 경험까지 책임지고 있었다. 이러니 학생들도 지도 교수님도 모두 범 대표에 호감을 느낄 수 밖 에 없다.

저는 출강 나갈 때마다 환영 받아요(웃음). 4학년들이 한창 취업 준비를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쓸 때 나와 함께 한 시간 추억을 이력으로 쓸 때, 기분이 남다르죠. 그래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뿌듯하고요.”

범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생산부터 판매까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꼭 자신처럼 폭넓은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품고 있다.

사실 디자이너 수명이 굉장히 짧잖아요. 월급이 적은데 신선한 인재를 원하는 시장이니까요. 그래서 다들 현역으로 지내다 미래가 막막해지면 삼십대 중반부터 공부를 하면서 교수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해요. 물론 연구자의 길도 훌륭하지만 저는 현역 디자이너만이 느낄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디자인은 평생 모티브를 찾는 일이예요. 거창하지 않아도 평소에 일상을 여행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라베리따 범영순 대표 ⓒ박금현 기자
라베리따 범영순 대표 ⓒ박금현 기자

 

긍정의 에너지로 이어지는 봉사는 내적성장의 밑거름 돼

후배 여성들을 위해 직업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일 말고도, 범영순 대표는 각종단체의 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더 넓고 멀리 가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다. 광주CEO여성MJF라이온스클럽 16대 회장으로 지내며 최근에는 코로나 극복 응원세일을 개최, 수익금 일부를 광주대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또한 무등교회와 남부대 무도경호학과에도 지역 청년들의 학업 장려를 위해 장학금을 전달했다.

저는 평소에도 봉사금, 물품봉사, 연탄봉사 등을 찾아다니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틈틈이 돌봐왔어요. 꾸준한 봉사를 하면서 생긴 개인적인 바람은 학생들에게 더 직접적인 지원을 했으면 하는 거예요. 저는 이들이야말로 스스로의 삶을 긍정할 에너지가 필요한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그런지, 이번처럼 더 많은 장학봉사를 하고 싶어요. 공부할 때에는 정말 천 원짜리 한 장이 아쉬운 시절이 있기 마련이고 그 절박함이 뭔지 저도 알기 때문이죠.”

섬김의 리더십 함께하는 봉사슬로건을 대표 가치로 내걸고 있는 CEO여성 MJF 라이온스클럽은 매년 사랑의 연탄봉사, 사랑의 장학봉사 등을 전개하고 있다. 범 대표는 기부 세일 당일에도 코로나 19로 인한 어려운 상황에서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도전하라라고 말했다.

라이온스클럽은 세계를 대표하는 멋진 봉사단체인 만큼 리더십과 인적 네트워킹을 두루 갖추고 있어요. 우리 단체가 지닌 또 하나의 목표이자 효과죠. 저라는 사람의 내적성장도 이곳에서 많이 이뤄졌어요. 지속적인 공부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하고 있는 것을 셀프로 칭찬하고 싶습니다(웃음). 특히 제가 여성벤처 이사이기도 하는데 매번 여성 회원들과 만나고 나면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는 환경 속에 있는 것이 무척 고무적으로 느껴지곤 해요. 여성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면서 단체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집단에 소속돼 있는 걸 체감하고 두드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범 대표는 스스로 디자이너를 넘어서 일자리와 고용 창출을 추진력 있게 해나가는 여성CEO로 굳건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세 그룹에서 패션디자이너로서 활동했던 딸(한경덕)도 얼마전 회사를 그만둔 뒤, 그의 패션사업에 대해 함께 소통하고 있다. 딸과 함께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자신이 디자이너로서 끊임없이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디자이너이자 여성CEO로 할 수 있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찾아나가고 싶다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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