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조미료의 원조 '미원'을 개발한 임대홍 대상 (28,900원 상승350 1.2%)그룹 창업주(사진)가 향년 97세를 일기로 6일 별세했다.
대상그룹 관계자는 "임대홍 창업주가 5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했다"면서 "고인과 유가족 뜻에 따라 별도의 부고도 내지 않고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 창업주는 '국민 조미료' 미원을 만든 인물로, 언론 인터뷰 등 대외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졌다. 그는 전북 정읍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 임종구씨와 모친 김순례씨 사이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정읍군청에서 직장생활 시작한 후 정읍, 부산에서 피혁 공장을 운영하며 무역업에도 손을 댔다.
무역업을 하면서 일본을 오가던 그는 일제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국내 시장을 점령하는 것을 보고 이를 대체할 국산 조미료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1955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1년간 감칠맛을 내는 성분 '글루탐산' 제조공법을 배웠다.
이듬해 귀국한 임 창업주는 부산에 대상그룹 모태인 동아화성공업을 설립했고 최초 국산 조미료 '미원'을 출시했다. 미원은 도매상들이 공장 앞에 줄을 서서 물건을 타 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임 창업주는 1960년대 중반, 국내 최초로 발효법에 의한 글루타민산 생산기술을 개발했다. 이어 △L-글루타민산나트륨 △L-페닐알라닌 △L-글루타민 등 20여 종의 아미노산과 핵산 등의 제조기술을 국산화했다.
그는 1963년에 출시한 CJ제일제당 (359,500원 상승14000 4.0%) 미풍과 세기의 조미료 경쟁을 펼쳤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미원을 꺾기 위해 사은품 증정 등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양측의 경쟁이 너무 치열한 나머지 당시 정부가 제재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다. 미원의 인기가 꾸준히 이어지자 임 회장은 회사명을 한때 미원으로 변경하기도 했을 만큼 애정이 각별했다.
임 창업주는 1987년 그룹 회장직을 장남인 임창욱 명예회장에게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이후에도 제품 개발과 연구를 놓지 않고 실험실을 찾았다.
그는 화려한 외부활동을 멀리하는 대신 평생을 남다른 근면과 검소를 실천했다. 출장을 가도 숙박료가 비싼 호텔을 찾지 않고 모텔이나 여관에만 묵는가 하면 '평생 통틀어 한 번에 양복 세 벌, 구두 두 켤레 이상을 소유했던 적이 없었다'는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1997년 사명을 미원에서 대상으로 바꿨다. 대상그룹은 미원, 청정원, 순창, 햇살담은, 복음자리, 홍초, 맛선생, 종가집김치, 마니커 등 식품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임 명예회장과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 딸 임경화씨와 사위 김종의 백광산업 회장, 손녀인 임세령 대상 전무, 임상민 상무 등이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이다. 대상그룹은 고인과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별도의 조화, 조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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