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헬스케어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우리 산업 전반이 고도화되고, 제조기술을 기반으로 특정 산업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성장하고 있으며, ‘소부장’이라 불리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들의 활약도 괄목할 만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2000년대 이후의 주력 산업군인 IT, 전기전자, 자동차, 조선, 철강, 화학, 원자력, 방산, 인프라 등은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방위적인 산업의 고도화가 미래 산업인 로봇과 AI, 우주항공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는 기반이 되고 있다.
유사 이래 대한민국이 이렇게 부강했던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게 되면서, 향후 펼쳐질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그에 더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크게 하는 산업이 있는데, 바로 헬스케어 산업이다. 여기에는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건강식품 등을 포함한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의 헬스케어 산업 경쟁력은 특허 만료 의약품을 재빠르게 복제(제네릭)하거나, 중국이나 인도산 원자재를 수입해 임가공한 후 원료의약품 혹은 완제품을 생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제조기술과 가격경쟁력에 국한된 전략이었다. 의료기기 시장 또한 해외 제품을 수입·유통하거나, 유사 제품을 제작하는 데 그쳤다.
한때는 헬스케어 산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말도 있었다. 이는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는 핵심기술이 부재했기 때문이며, 신약이나 신기술 개발에 R&D 역량과 투자를 집중하는 일부 기업은 존재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다국적 기업 제품을 인라이센싱해 국내에서 허가를 거쳐 출시하거나, 동일·유사 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소 규모의 영세 사업장이 대부분이어서, 규모의 경제를 누리기 어렵고, 막대한 R&D 예산을 감당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할 방법 중 하나인 M&A 역시 당시 업계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물론, 이 산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선진기술을 따라잡기가 가장 난해한 분야 중 하나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으면서도 경제적 가치를 지닌 원천기술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물질과 기술은 이미 기술 선진국들에 의해 과점되어 있다.
둘째, 최고 수준의 전문가와 함께 막대한 R&D 역량 및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이 요구된다.
셋째, 앞선 두 요건을 충족한다 하더라도 전임상 및 임상 단계에서 많은 후보군이 탈락하며, 개발 도중 유사하거나 더 뛰어난 경쟁 제품이 등장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넷째, 시장 지배적 지위를 가진 글로벌 제약사들이 후발주자의 진입을 견제하기 위해 특허 소송이나 상업화 지연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국내 기술이 계약 체결 이후 상용화까지 과도한 시간이 소요되는 사례가 있으며, 이는 자사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 헬스케어 산업은 마침내 주요 산업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화학과 생물학이라는 기초지식에서 출발이 늦었던 우리가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 가장 어렵다고 여겨졌던 분야에서 이뤄낸 성과이기에, 마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춘 것처럼 벅찬 일이다.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그동안 일부 전통 제약사들이 성과를 내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바이오시밀러 산업에 대해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2010년대 이후에는 바이오 벤처들의 신약 및 신기술 개발 도전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원료물질과 제제 개발, 개량신약, 제형·제제 개선, ADC 항체약물접합물, 플랫폼 기술, CDMO 등으로 기술 분야도 다양화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각종 의료기기, 특히 미용기기 분야는 화장품 산업과 더불어 급성장하고 있다. 보툴리눔톡신 제조업체들이 관련 의료기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고, 기존에 존재하던 제품을 개선·특화한 후 선진 마케팅 및 브랜딩 기법을 적용해 세계 시장에서 판매 중인 제품도 상당수다. 이러한 기술력과 상업성 덕분에 다국적 기업이나 사모펀드의 투자 및 인수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국내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는 긍정적인 신호이자, 한편으로는 유망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상태에서 해외 자본에 매각되는 아쉬움도 공존한다.
향후 지속적인 성장과 미래 산업으로의 안착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R&D 프로젝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이 중요하다. 고령화와 소비력 증가로 인해 헬스케어 산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할 수밖에 없다. 높은 진입장벽, 전문가 양성, 고용 창출 효과 등도 기대되며, 민관, 허가기관, 컨설팅기관 등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물론, 옥석을 가려내는 안목도 중요하다.
둘째, 인센티브를 통한 M&A 유도다. 글로벌 R&D는 소수 기업이 주도할 만큼 대규모 투자와 리스크를 필요로 한다. 효율적인 R&D를 위해 규모의 경제는 불가피하며, 최근에는 주요 제약사들이 바이오벤처에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피인수 기업이 적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M&A는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셋째, 상대적으로 자본 규모가 작아도 창업이 가능한 의료기기 산업은 동일·유사 제품의 난립으로 인해 레드오션화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필러 시장이 그러하다. 의료기기 분야는 영세한 중소기업 비중이 높기에, 민관 전문가들이 제조기술 고도화, 마케팅 전략, 해외 진출 방안 등을 자문하고 육성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코로나 시기, 모 그룹이 중소 주사기 제조업체에 제공한 현장 맞춤형 자문 사례는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향후 10년 이내에는 헬스케어 산업도 다른 주력 산업군처럼 세계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전문가, 기업가, 그리고 지원 인력들이 더 높은 수준의 아이디어와 전략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