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Now] 만화 그리고 웹툰
[Monthly Now] 만화 그리고 웹툰
  • 박성래 기자
  • 승인 2020.09.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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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출퇴근 시간 지하철 속 풍경. 좌석에 앉은 사람들 거의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음원을 청취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개가 디지털 콘텐츠를 시청한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 집중할 수 있는 웹툰(webtoon)을 보고 있다. 웹소설도 있지만 눈의 피로도가 가중되기 때문에 짧은 동안 집중 가능한 웹툰이 선호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날 웹툰이 나오기까지 만화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온 것일까?

 

근대 만화의 태동(胎動)

근대 만화의 선구자는 영국 풍자 화가이자 판화가인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이다. 그는 18세기 영국 런던의 생생한 거리 묘사와 귀족들의 허위의식을 연작판화로 그려내었다. 대표작인 <결혼식 풍속>스토리 라인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한 부유한 상인이 자신의 딸을 귀족집안 자제와 결혼시킨다. 상인의 목적은 신분 상승. 귀족의 의도는 경제적 도움을 얻기 위한 야심. 정략결혼 당사자들은 애정이 없으니 각자 바람을 피운다. 남자는 아내의 불륜 상대인 변호사의 칼에 찔려 죽고, 변호사는 사형당하며 여자는 음독자살, 자녀는 부모들의 방종으로 인해 불구로 태어나 비극을 겪는다. 한국 아침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막장 플롯의 18세기 유럽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외 <탕아의 편력>,<매춘부의 편력>,<4단계의 잔학행위>등 상류층의 부도덕성, 영국 사회의 타락한 이면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함으로써 근대 만화의 선구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만화가 발전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의 만화는 막부(bakufu,幕府: 12세기~19세기까지 쇼군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무사 정권) 말기 일본에 진출한 서양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1862년 당시 일본 요코하마에 기자로 체류 중이던 영국인 찰스 워그먼(Charles Wirgman)1832-1891: 영국인 화가, 만화가, 기자로서 방일하였다)이 잡지인 <재팬 펀치>를 창간했다. 창간 취지는 요코하마 거류 외국인들을 위해 오락과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 잡지는 일본의 많은 사건이나 색다른 풍물들을 널리 알리며 인기를 끌었다. 워그먼은 일본 내 화가들에게는 서양화 기법과 만화 기법도 전파한 공로자로 평가받는다.

한국 만화의 시작은 190962일 발행된 <대한 민보> 창간호에 실린 시사만화가 그 출발점이다. 이 시사만화는 연미복차림 신사의 입으로부터 대한 민보로 시작되는 4행시를 구성하여 암울한 일제 국권피탈기 언론이 나아갈 길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만화(漫畵)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공통으로 사용된다. 한자 漫畵를 살펴보면, (흩어질 만)자는 생각나는 대로, 함부로, 멋대로라는 뜻이 있고, (그림 화)그리다라는 뜻이다.

만화는 일반적으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연속적인 그림과 글의 조합이라고 정의 된다. 우리나라에서 만화라는 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1920년대 일본에서 들어와 동아일보에 독자만화(讀者漫畵)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식민지 시대의 만화

신문 지면의 구성이 기사, 사진, 그림(삽화)의 형식을 취하게 되면서 만화도 대중문화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1913년 미국의 코미디 만화가 10년 만에 일본에 소개되고, 바로 1년 뒤 한국에 들어 왔다. 192410월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된 노수현의 코미디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대단한 인기를 누리며 한국 근대 만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경성의 모던보이들이 보여주는 허세, 말썽 등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였다. 주인공들의 이름은 최멍텅과 윤바람, 그리고 여자 주인공 미모의 기생 신옥매. 식민지 근대를 살아가는 모던보이와 기생을 등장시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한 사회 모습을 그렸다. 이 기세에 뒤질세라 <동아일보>도 안석주의 <허풍선이 모험 기담>1925년부터 연재하였다. 그 시기의 근대성은 억눌렸던 개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내세워 풍자했으나 당시의 근대 만화는 식민지 상황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뛰어넘지는 못하고 정체기를 겪었다.

 

도시화 시대 70·80 세대가 읽던 그 시절의 만화들

해방 이후 잡지류도 대거 창간되면서 만화 발표의 장이 넓어졌다. 잡지는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기 위해 연재물이 필요했으며 만화가 그 핵심이 되었다. 우리 만화사에 새로운 변화가 불어왔다.

대표적인 만화 장르로 명랑만화가 있다. ‘명랑이라는 단어는 유쾌하고 활발하다는 뜻이다. 기록은 없으나 해방 이후 여러 잡지에 연재된 코미디 만화들을 부를 때 친숙한 명랑만화(明朗漫畫)’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이후 현실은 가난하고 고달팠기에 만화를 볼 때만이라도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 싶은 세태의 반영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명랑만화70-80년대 어린이 잡지와 만화잡지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 70년대 명랑만화를 대표하는 작가는 길창덕이다. 길창덕은 자신의 작품 <꺼벙이>, <재동이>, <이웃집 돌네>, <쭉쟁이>, <멀건이>에서 도시 아이들의 일상 에피소드를 유쾌하고 코믹하게 그렸다. 그는 작품에서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추구했다. 그 외에 시대를 풍미한 명랑만화 작가들에 윤승운, 신문수, 박수동, 김삼이 있다. 윤승운의 대표작은 <꼴찌와 한심이>, <두심이 표류기>, <요철발명왕>,<맹꽁이 서당>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 대표 캐릭터는 두심이인데 두심이는 원래 한심이가 한술 더 떠 두심이가 된 것이다. 두심이가 꼴찌, 꼴방이라는 이름의 형제와 함께 가출하여 아프리카 밀림으로 떠나는 황당무계한 전개에도 70년대 중반의 어린이들은 그들의 모험에 몰입하고 그들과 함께 상상하며 즐겼다. 윤승운은 후일 성균관 한림원에서 7년간 한학을 공부하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역사 만화 시리즈를 그렸다. 신문수의 대표 작품에는 <도깨비 감투>, <원시소년 똘비>, <심술 천단 심똘이>,<로봇 찌빠>가 있다. 박수동은 <고인돌 시리즈><번데기 야구단>, <오성과 한음>이 유명하다. 김삼의 작품은 <007 우주에서 온 소년시리즈>, <검둥이 강가딘>이 유명한데 <강가딘 시리즈>는 개답지 않은(?) 외양의 강아지들이 걸어 다니며 말썽을 피우는 독특한 내용이었다. 강아지인데 하는 짓은 여우 같은 얄미운 강아지 보니와 매번 당하는 어리숙한 강가딘 사이의 티격태격 스토리가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고전 만화의 최고봉에는 고우영이 있다. <수호지>, <삼국지>, <열국지>,<초한지> 무술인 최배달을 모델로 한 <대 야망>, 에로틱한 코드로 유명한 <가루지기 전>까지 무수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고전 만화가 일간 스포츠 신문에 연재될 당시 그의 만화를 보기 위해 신문을 사는 사람들이 다수였을 정도로 지가(紙價)를 올렸다. 그는 고전을 유머와 해학을 섞어 재해석하는 데 뛰어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인기를 누렸다.

또한 교양만화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과 허영만, 아기 공룡 둘리의 김수정 등도 세대를 이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야구 만화<태양을 향해 달려라>와 역사 의식을 담은 <각시탈>,<쇠퉁소>,<!한강>, 서유기를 재해석한 <날아라 슈퍼보드>까지. 허영만은 스포츠, 역사, 음식, 직장인 이야기, 관상, 심지어 도박꾼의 세계를 다루는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아이에서 어른까지 전 세대에 감동을 선사했다. 72세인 현재도 작품 활동을 하는 그는 시대를 들여다보는 탁월한 통찰력이 있는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가히 한국 만화 예술의 거장이라는 수식이 부족하지 않다는 것에 동감할 것이다.

그 시절 아이들은 대개 학교 운동장이나 골목길에서 함께 뛰어놀았다.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괴롭힘, 왕따 문화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다수 아이들은 순수했고 공부 스트레스도 덜했으며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며 성장했다. 그 시대 사람들과 함께한 만화는 그러나 점차 도서대여점의 난립과 불법 스캔으로 인한 문제, 출판 시장의 침체 속에서 점차 위축 되어 갔다. 시대를 풍미하던 문화는 이렇게 변화해 갔다. 한 시대의 퇴조는 또 다른 문을 여는 서막이다. 1990년대 후반 또 다른 시대가 열렸다.

 

초연결 시대가 낳은 대중 문화 웹툰

인류는 역사상 사회 경제의 발달을 위해 연결(connectivity)을 확장해 왔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 19762~)는 현생 인류는 인지능력 혁명에 의해 다른 종들을 극복해 왔다고 말한다. 언어를 통해 인류는 다른 인류와 소통하고 발전해 왔다. 언어는 추상적인 정보 전달 능력으로 인류의 지적 능력을 넓히고 연결을 확장해 왔다. 1760년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에 의한 기계생산은 인쇄술을 발전시켜 연결의 차원을 높였다. 1860년대에 미국 석유 산업이 확립되었다. 석유의 대량 공급으로 내연기관이 발전했고 전기가 발명되었다. 인류는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시간과 공간의 구애 없는 미디어의 출현을 가져왔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은 하이퍼텍스트(hypertext)라는 기능에 의해 인터넷상에 산재되어 존재하는 많은 종류의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광역 정보 서비스다. 웹이라는 환경은 누구나, 손쉽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끔 해주었다. 오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직접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 온라인으로 인간의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온라인상의 소통은 이제 우리가 향유하는 대중문화의 방식조차 획기적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과 개인 컴퓨터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인터넷 시장 활성화와 함께 개인 홈페이지 제작이 인기를 끌었다. 개인 홈페이지에 짧은 에세이 형태의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들이 등장하고 이 만화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새로운 만화 형태인 웹툰이 인기를 얻었다. (web)과 카툰(cartoon)의 합성어인 웹툰은 텍스트, 이미지, 사운드 등의 멀티미디어 효과를 동원해 제작된 인터넷 미디어 만화를 의미한다. '웹툰'이라는 용어가 국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0816일 자 <한겨레신문>이다. 당시 '천리안'이 운영하던 포털 사이트에 인터넷 만화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그 서비스 명칭이 '웹툰'이었다.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를 시작으로 웹툰에 긴 서사를 가진 작품이 창작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계기로 웹툰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미디어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멀티 플랫폼 생태계를 형성하였다. 스마트 미디어 환경은 콘텐츠 소비 부문에서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수동적 소비에서 능동적 소비의 패턴으로 진화가 개인화되었다.

스마트 기술 시대의 현재 웹툰이 기존 인터넷 초기 만화와 다른 지점은 독자들과의 소통에 있다. 웹툰이 플랫폼에 업로드되면 2분 이내의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반응이 올라온다. 쌍방향 소통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작가가 주관과 책임의식이 없으면 작품 시작 전 구상한 연재 의도가 흔들리게 된다. 작가가 독자 반응에 지나치게 흔들려 세상의 유행만 따른다면 작품의 격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부작용으로 웹툰 일부의 내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잔인한 묘사가 문제 되고 있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만화와 영화, 만화와 TV드라마, 만화와 게임의 접목으로 콘텐츠 간 협업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만화가 타 장르로 이동한 대표적인 사례로 게임 리니지, 드라마 , 풀하우스, 순정만화등을 들 수 있다. 최근, 웹툰에 전문 직업인들도 유입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현재 높은 인기를 끌며 연재되고 있는 내과 박 원장만 하더라도 18년 차 현직 내과 의사의 실질적 경험과 지식을 담아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대중예술도 그 시대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기술 진보의 역사가 예술의 영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2020년 문화 예술 영역에서 한류의 물결이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한국 웹툰이 망가로 널리 알려진 일본 만화를 뛰어넘어 세계 한류를 주도할 콘텐츠 역사를 쓸 수 있을까? 콘텐츠의 핵심 생명력은 신선함과 보편성. 그 열쇠로 새로운 문화 융성의 시대를 열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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