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 “창조적 연구정신으로 단백질 지도 완성한다”
김호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 “창조적 연구정신으로 단백질 지도 완성한다”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7.02.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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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

신대륙 발견에 2등은 없다. 오직 첫 번째 발견만이 의미를 더할 뿐이다. “단백질의 구조를안다는 것은 단백질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같다”고 말하는 김호민 교수는 끈질긴 추적과 연구로 하나의 지도를 완성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답을 집요하게 찾아내온 그는 최근 ‘패혈증 원인 물질인 박테리아 내독소의 체내 전달 메커니즘’이라는 신대륙을 지도 위에 새겨 넣었다.

높은 발병률과 위험도 띈 패혈병 치료의 실마리 찾다

최근 세상의 깊은 탄식을 자아냈던 故신해철의 사망원인은 위 축소 수술 이후 감염에 따른 패혈증이다. 우리 몸은 외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감염에 대응하기 위한 선천성 면역시스템을 갖고 있지만 유아나 노인, 환자들의 경우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 전신성 염증반응 증후군인 패혈증에 이르게 된다. 패혈증은 매년 1,800만 명 이상에게서 발생하며 암, 에이즈, 뇌졸중보다 더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증상완화제 정도만 개발되었을 뿐 궁극적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호민 교수는 위험도나 발병률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병이라며, 패혈증과 관련한 면역세포 중 가장 중요한 수용체인 TLR4를 발견한 두 연구자는 201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면역학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연구 분야라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일찍이 단백질 구조 연구를 통해 패혈증 원인물질인 박테리아 내독소가 면역세포 수용체인 TLR4/MD2에 결합하는지 규명했다. 지난 2007년 밝혀낸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Cell지에 게재되며 현재까지 500회가 넘게 인용되며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당시 풀지 못했던 난제들이 많았습니다. 2012년 KAIST 부임 이후 미국 연수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인 Single Particle EM을 활용하면 내독소 전달 메커니즘을 보다 명확히 규명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 이번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내독소는 박테리아 외벽의 구성성분으로, 항생제를 통해 박테리아가 죽거나 열을 가해 끓이더라도 내독소 성분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독성을 띈다. 여름철 흔한 질병인 비브리오 패혈증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생체 내에서 내독소를 인식하는 LBP, CD14, TLR4/MD2 등의 단백질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서로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해 기존의 연구방법으로는 단백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는 단백질 분자 하나하나의 모양을 관찰하는 Single Particle EM 기술과 단백질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단분자 형광기술이라는 두 가지 최신 기술을 적용해 생체 내 내독소 인식 및 전달 메커니즘을 명확히 관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체내 내독소 메커니즘 규명, 치료제 개발의 기반 될 것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금번 연구 성과는 박테리아 감염에 의한 선천성 면역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호민 교수는 본 연구를 통해 규명한 분자적, 구조적 지식들은 향후 패혈증 발병 메커니즘 연구 및 치료제 개발에도 적극 활용될 것이라 내다봤다.

“내독소는 체내에 들어왔을 때 일련의 단계를 거쳐 면역세포를 활성화 시키며, 해당 과정을 모두 밝혔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내독소가 전달되는 길목을 차단하면 효과적인 패혈증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LBP 단백질의 경우 우리 몸속에 있는 어떤 단백질보다 내독소에 빠르게 달라붙는다며, 이에 대한 공학적 엔지니어링 단계를 거친다면 몸속 내독소 진단 키트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 설명했다. 또한 단백질의약품 제약 산업계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내독소의 효과적인 제거방법을 찾는데도 이번 연구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약을 투여할 때, 내독소가 조금이라도 들어있으면 그 약은 오히려 독이 되고 말기에 단백질의약품 생산에 있어 내독소 제거는 큰 숙제로 여겨져 왔다. 김 교수는 체내 내독소 인식 메커니즘은 내독소를 제거하는 공정시스템 개발에도 충분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간 김 교수는 ‘단백질’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등 단백질 구조 연구를 기반으로 생명 현상과 질병을 규명하는 기초연구와 나아가 구조응용연구인 단백질을 활용한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사람의 몸속에는 2만 개 이상의 단백질이 있습니다. 각각 모양도, 기능도 모두 다른 단백질이죠. 비슷한 기능의 단백질들은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이러한 단백질의 모양을 관찰하며 역할과 특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몸담고 있는 KAIST 질병분자생화학연구실에서는 현재 패혈증과 관련한 면역 단백질 외에도 신경 전달에 중요한 시냅스 단백질, 혈관생성 조절 단백질, 메르스 바이러스 단백질, 나아가 단백질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한 항암 치료용 신약후보 단백질, 황반변성 치료용 신약후보 단백질 등 다양한 질병 관련 단백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김 교수는 다양한 단백질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몸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에 서로 간 밀접한 연관이 있고 치료 전략 역시 다양하기에 단백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KAIST 질병분자생화학연구실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일, 도전하는 즐거운 연구자

이제 우리나라는 모방과 추격에 의한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을 넘어 파격적 혁신(Breakthrough innovation)을 이루어야 할 시점이다. 과학 선진국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발명과 발견의 진원지가 되어야하기에 차세대 과학 리더들의 도전적 생각과 연구가 절실하다. 더불어 과학을 움직이는 것은 ‘의견’이 아닌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집요하게 실현하는 김호민 교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백질의 구조를 아는 것은 지도를 그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구조를 통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어떻게 잘못되면 질병이 되고 어떻게 회복시키면 치료제가 되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죠.”

첫 번째가 아니라면 새로운 지도의 의미를 잃고 말기에 지도를 그리는 일은 때로 치열한 속도전이 된다. 김 교수는 누군가 나와 같은 연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새로이 찾아낸 연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그가 이번 연구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국내 최초 크라이오(Cryo-EM) 도입이라는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라이오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기술로 과학전문지 네이처 Method 지가 ‘2015 대표기술’로 선정한 기술이기도 하다. 그는 교육자로서 제자들에게 연구의 즐거움을 찾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도전정신을 갖고 주체적으로 연구에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크라이오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10년 전 불구덩이에 뛰어들 듯 빠져들었습니다. 이 기술이 발전되어 현재는 첨단기술로 각광받고 있죠. 새로운 기술을 본인의 연구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연구영역을 확고히 구축해야 합니다.”

그는 현대 과학에 있어 융합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더 이상 현대과학은 혼자서는 연구할 수 없는 환경에 다다랐으며, 밝혀지지 않은 생명 현상 및 자연 현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 연구는 필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김 교수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융합 연구만 해도 10가지가 넘고, 이번 내독소 관련 연구 성과 역시 연세대 윤태영 교수팀과의 유기적인 융합연구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전혀 다른 전공분야 연구자들이 만나는 것이기에 의사소통부터 의견조정 등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열린 마음으로 공동연구에 임할 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학계에서 개발한 기술들이 산업계에서 잘 응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였다.

현대 과학은 새로운 기술들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며 적용되고 있고, 이러한 기술은 기초연구분야를 또 한 번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응용연구는 기초연구의 토대 위에 꽃 피운다’는 표현은 김 교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기꺼이 도전하며 실패를 성공에의 과정이라 말하는 그가 발견할 새로운 신대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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