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 구상나무, 유전자에서 해법 찾는다
멸종 위기 구상나무, 유전자에서 해법 찾는다
  • 박성래
  • 승인 2018.03.02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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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빠른 발달은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석연료를 태우며 발생하는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는 지구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숙제로 남겨졌다. 점점 따뜻해지는 지구는 해수면 상승부터 산악빙하의 축소, 그린란드와 남북극 얼음융해 가속화, 식물의 개화시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립생태원 박형철 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 반응 기작 연구를 통해 취약생태계 보전을 위한 원천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국립생태원 박형철 연구원
국립생태원 박형철 연구원

 

멸종위기 처한 우리나라 고유종 구상나무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사람들을 반기는 나무가 있다.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이지만 정작 이 나무가 한국에만 자생하는 고유종 구상나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식물로, 바늘 모양의 잎이 1년 내내 푸른색을 띈다. 전나무와 비교할 때 잎이 부드럽고, 어린나무일 때 생장 속도가 느려 작게 키울 수 있어 실내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구상나무는 미국으로 표본이 건너간 뒤 여러 신품종으로 개발되며 세계인에게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랑받고 있다. 지난 1920년 영국의 식물 분류학자에 의해 한반도 남부지방과 제주도 한라산에만 자라는 한국의 특산 식물임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학명도 아비에즈 코리아나(Abies koreana)'라 붙여졌다. 상록수로 100년을 살고, 죽어서도 100년을 간다고 해 살아 100, 죽어 100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구상나무는 지난 2012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로 지정되며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산림청 희귀식물 지정, 환경부 국가기후변화 생물지표종으로 지정되는 등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구상나무는 한국 고유의 특산종입니다. 아고산지대에만 서식하죠. 이러한 구상나무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때문이죠.”

과거 빙하기에 한반도로 내려온 구상나무는 빙하가 녹으며 더 추운 곳을 찾아 고지대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다. 기온상승을 피해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아고산지역을 피난처로 삼는 유존종(relict species)에 속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라산을 비롯한 지리산, 덕유산, 금원산, 속리산 등 해발 1,000 m 이상의 아고산지대에서 구상나무를 찾아볼 수 있다. 박형철 연구원은 구상나무의 생물반응 현상 연구를 위해 지난 20141년 간 한라산부터 지리산, 무등산, 덕유산 등을 찾았다. 한라산의 경우 800 ha 면적의 구상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지만 점차 그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라산의 개체 분포는 지난 1988년과 비교해볼 때 34%가 감소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봄철 건조부터 겨울철 기온상승, 강수패턴 등이 변화하며 점차 아열대 기후로 바뀌어가는 까닭이다. 이러한 구상나무를 연구하기 위해 해마다 세계의 식물학자들이 제주도를 찾고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는 다양한 환경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생물 반응 현상을 연구하며 기후 변화에 취약한 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 방안을 찾는 것이 연구의 목표입니다.”

박 연구원의 이번 연구는 점차 가속되는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한 기후변화 적응법의 마련을 위한 기본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그는 식물의 식생 변화는 인류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며,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식물과의 공생을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자생태학적유전적 연구로 취약 생태계 보전 방안 제시

한국에 구상나무가 있다면 독일에는 가문비(Spruce)가 있다. 특징은 구상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의 끝이 뾰족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기후변화로 멸종위기에 처했던 가문비 나무의 보전을 위해 독일 정부는 가로수 및 조경수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가문비 나무 알리기에 나섰다. 박형철 연구원은 구상나무 역시 가문비 나무처럼 국민적 관심이 필요함을 호소했다.

조사위주의 생태연구와 더불어 근본적인 원인 규명이 가능한 분자생태학적 연구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저는 오랜기간의 분자생태학분야의 연구 경험을 토대로 국민들에게 현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독일의 가문비 나무처럼 구상나무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현재까지 생태 연구는 대부분 경관이나 개체군 수준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박 연구원은 분자생태학적유전적 연구라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연구 방식이다.

생태계의 유전적생리적 반응을 분석함으로써 그 근본을 파헤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연구에 대한 그의 자부심 역시 컸다.

생태 연구와 관련해 이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기초 생태분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 및 적응, 생태계 서비스 등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향후 국내에서도 기초 연구와 응용연구를 융합한 다양한 주제의 생태학적 연구가 이루어져야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활성산소 방어기작으로 인한 항산화 효소 발현, 광합성 관련 유전자 발현이 일부 보고되고 있는 만큼 보다 다양한 주제의 생태학 연구가 이루어질 때 생태계 변화의 근본적 원인이 규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위하여 박 연구원은 아고산 침엽수림의 식생구조와 동태, 환경연관성, 연륜분석, 발아 및 치수 등 다양한 연구내용에 관한 문헌분석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분석 끝에 이상 고온과 동절기 가뭄으로 인해 토양이 건조되고, 이는 식물의 광합성 저하와 에너지원 감소, 병충해 저항성 감소로 이어져 침엽수 고사라는 결과를 낳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다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박 연구원은 경관 수준, 생태계개체군 수준, 개체군유전자 수준의 세 가지 연구 방향을 설정했다. 경관 수준에서 식생대 변화와 군집 구조 변화의 정량화, 취약한 군락 유형과 환경 요인을 추출하고, 생태계개체군 수준에서는 물질 순환계와 종다양성 유지 기작, 군집구조 분석, 환경 변화에 따른 개체군 동태를 파악한다. 이와같은 연구는 많은 연구그룹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개체군유전자 수준에서는 기후변화에 의한 취약생태계의 발현 유전자 비교 분석과, 유전적 차원의 환경 스트레스를 연구하고, 이러한 세 가지 수준에서의 연구결과를 통합함으로써 아고산 취약생태계(구상나무 군락) 보전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적이다.

 

구상나무 보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필요

지금의 연구는 시작 단계에 불과합니다. 연구에 대한 확신을 갖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겠죠. 구상나무에 대한 연구는 물론 논문을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구상나무의 중요성과 현 상황을 꾸준히 알리고자 합니다.”

현재 박형철 연구원은 고온에 의한 구상나무 유전자 발현 분석에 관한 결과를 국제적 유명학술지에 논문 발표를 앞두고 있는 한편 구상나무 연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며 구상나무 알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독일의 가문비 나무처럼 우리나라 구상나무의 존재를 알리고, 국민들의 집 마당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그는 어려운 조건 속에 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연구를 수행하며 구상나무 살리기에 보탬이 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저 한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연구를 통해 다양한 부분을 조명한다면 그 중요성에 대해 국민적 공감을 얻으며 구상나무 살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연구의 첫 발을 내딛고 있는 만큼 보다 의미 있는 결과를 찾는데 집중하고자 합니다.”

박 연구원은 기후변화와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첫 단계는 식물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라 말한다. 분자 및 유전자 수준의 연구가 선행될 때야말로 그 원인과 반응기작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한 까닭이다. 그는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유용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한 분자생태학적유전적 생태계 관리 기술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 덧붙였다. 구상나무가 죽어가는 원인을 규명한다면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재나 치료제 개발 역시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였다.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생물 다양성을 재조명하다

식물이 있어야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다.’ 박형철 연구원이 구상나무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다. 한 예로 이번 연구의 모델 식물로 활용되고 있는 애기장대는 인간의 유전자보다 많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환경 변화에 앞서 이동할 수 있는 동물들과 달리 식물들은 한 자리에서 적응해야하기에 긴 시간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식물 유전자를 토대로 인간에의 적용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연구 1단계에서 식물이 환경에 적응함에 있어 관련 기능을 하는 유전자를 찾고 2단계에서 유전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3단계에는 이러한 유전자 발현율의 증가 방안을 찾는 연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나무의 생사를 예측하고, 적응 조건을 찾아 구상나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규명해야죠.”

현재 박 연구원은 구상나무 전사체 40만 개를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BCI)에 등록한 상태다. 구상나무 유전자에 대한 주권을 찾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국내외 특허를 출원하며 관련 정보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아가 이산화탄소 농도부터 온도까지 다양한 환경 속 구상나무의 변화를 살피고 있는 박 연구원은 자신이 설정한 가설에 대한 해답을 하나 둘씩 얻고 있다고 전했다.

박 연구원이 남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구상나무를 바라보고, 그 해답을 쫓을 수 있었던 비결은 연구에 대한 즐거움에 있다. 특히 과정 없는 결과는 사상누각일 뿐 결코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단단한 신념은 생태연구로는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연구를 보다 촘촘히 채웠다. 그는 기초가 탄탄할 때에야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연구 결과를 욕심내기보다 각 단계에 충실하며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심어주고, 구상나무 보전에 힘을 보탠다면 연구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 말하는 그다. 또한 박 연구원은 즐거움 끝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프로 연구자로 꾸준히 성장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에게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의견을 교류하며 연구를 발전시키는 시간들은 또 다른 기쁨이 되고 있었다.

생물의 다양성은 인간의 생존에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생물들이 하나둘 사라진다면 결국 인류도 멸종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국민들에게 이러한 문제를 알리고, 경각심을 갖고 이 문제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국립생태원과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향후 연구를 토대로 한 교육과 전시를 통해 구상나무를 지키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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