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빈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교수·㈜일목바이오 대표 - 원료부터 실험 결과의 신뢰성에 기반한 한의학 기술사업화 이끌며 전통지식과 현대과학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 수행
과학화와 표준화, 첨단기술과의 융합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대한민국 한방산업
본초학적 지식과 현대 과학기술이 결합된 천연물 표준화는 한의약의 과학화와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천연물을 재료로 하는 제품의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일은 소비자의 신뢰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탄탄한 경쟁력을 갖추는 기반이 될 것이다. 송정빈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교수는 본초학(本草學)을 토대로 식품과 의약품의 소재 발굴하고 해당 소재의 제품화, 산업화를 위한 연구 개발을 수행하며 한의학 기술사업화를 이끌고 있다.
본초학 바탕으로 한 원료 표준화 연구로 한의약 기술사업화 이끌어
본초(本草)란 한의학에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식물, 동물 및 광물을 칭한다. 한의학에서 다루는 모든 약이 본초인 셈이다. 송정빈 교수는 본초학은 한약재의 기원, 표준화, 약리, 유효성, 안전성 등을 연구하는 매우 광범위한 학문이라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 20여 명의 본초학 전공 교수가 활동하고 있으며, 송 교수는 한의학, 특히 본초학(本草學)을 기반으로 식품과 의약품의 소재 발굴하고 해당 소재의 제품화, 산업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개발을 위한 적응증이나 기능성이 정해지면 수백여 한약재에 관련된 한의학 문헌과 보고된 논문, 특허, 산업화 가능성 등을 검토하여 선별하고, 동물모델에서 효능을 스크리닝하여 소재를 발굴, 확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확정된 소재가 사업화되기까지 원료 표준화, 완제 개발, 임상시험 디자인 등의 연구가 이어진다. 송 교수는 효능평가 및 작용기전 규명에 초점을 맞춘 약리 연구를 통해 기술사업화를 위한 소재를 발굴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기술사업화에 필요한 각 단계 연구를 수행하는 등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한의약 기술사업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약물의 기원(基原)을 확실히 하는 작업이다. 본초학에서 기원은 어느 종(種)의 어느 부위를 사용할 것인지 규정하는 것을 칭하며, 일부 한약재의 경우 언제 채취할 것인지까지 규정하게 된다. 같은 한약재라 하더라도 기원 종이 여러 종인 경우가 있고, 국가별로 다를 수가 있다. 일례로 ‘강활’이라는 한약재는 기원 종이 여러 종이라 시중에서 동일한 약재명으로 불리더라도 사실은 다른 식물일 수 있다. 송 교수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연구 개발을 진행하면 자칫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허무하게 날릴 수 있음을 강조했다. 천연물이라는 특성상 재배지에 따른 함량 편차가 존재하는 만큼 연구를 수행할 때는 가급적 표준화된 추출물로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약재는 천연물이라는 특성상 온도, 강수량, 일조량 등 재배지의 기후를 비롯해 위도, 고도, 토양 등에 따라 유효성분의 함량 편차가 있습니다. 한약재를 제품화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표준화가 필요하죠. 현재 창업 기업인 ㈜일목바이오의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원료 표준화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기초연구에서 창업까지, 연구실에서 발굴한 소재의 사업화에 도전하다
송정빈 교수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허혈성 뇌졸중 치료 한약제제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한의약 기술사업화에 발을 들였다. 석사로 입학한 2011년 뇌졸중 치료 한약제제 개발을 위한 복지부 비임상 과제의 실무책임을 맡은 것이다. 2011년부터 1년여간 소재 발굴(discovery)을 위한 스크리닝을 진행하였으며, 소재 확정 후에는 IND 승인을 위한 비임상 연구가 이어졌다. 2014년 식약처로부터 Phase 2a IND 승인을 받은 후 임상연구를 수행하여 2019년 Phase 2b IND 승인을 받았다. 송 교수는 스크리닝 단계부터 연구를 수행해 온 후보물질에 대한 애착과 다기관 임상연구 실무책임자라는 특별한 경험을 이어가고자 박사 졸업 후에도 임상연구를 지속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를 지원하던 정부 연구개발사업이 일몰되면서 안타깝게도 후속 임상 연구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한의약 기술사업화의 경우 10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대부분 정부의 연구개발사업은 10년 이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기부터 참여한다 해도 결코 넉넉지 않은 시간이며, 사업 중간에 참여한다면 제품화에 이르지 못한 채 프로젝트가 끝나게 됩니다. 연구 과제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진짜 한의약 산업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사업 산출물 중 결과가 우수한 결과물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016년부터는 개별인정형 기능성 소재 개발로 연구 범위가 확장되었다. 현재까지 위 건강, 체지방 감소, 전립선 건강 등의 기능성 소재 개발 프로젝트를 맡아 연구 개발을 진행해 왔으며, 위 건강은 2020년 식약처 인정을 받아 제품출시까지 이어졌다. 2021년 교수 임용 후부터는 전립선비대증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했다. 전립선비대증은 노화에 따른 남성호르몬의 불균형으로 비대해진 전립선이 요도를 막아 생기는 질환이다. 잦은 소변, 야뇨로 인한 숙면 방해, 잔뇨로 인한 불쾌감 등으로 환자의 불편이 크지만 성기능 장애를 초래하는 기존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인한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존재해왔다. 이에 한의학이 유효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송 교수는 2020년부터 5년간 동물모델에서 한약재 수십여 종을 스크리닝하며 관련 소재를 발굴해왔다. 천연 유래 물질에 대한 선호가 커지는 미국, 유럽은 물론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도 치료제나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 판단한 그다. 그는 한의학 이론에 기반한 전립선비대증 치료 후보물질 발굴 연구를 2020년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과제로 선정되어 수행하였으며, 최근에는 K-MEX에서 전립선비대증 예방 및 치료용 조성물 기술사업화 연구에 관한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송 교수는 자신이 연구·개발한 소재를 본격적으로 사업화하는 것을 목표로 2024년 12월 교원창업기업인 ㈜일목바이오를 창업했다. 일목바이오는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고 원료 표준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표성분 함량분석법을 개발하였으며, 기준규격 설정을 위한 산지별 함량 편차를 확인하는 등 원료 표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 나가는 모습이다.
“석박사와 postdoc 과정에서 연구실에서 발굴한 소재가 제품화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은 저의 큰 자산입니다. 첫 단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연구 초기부터 데이터의 정확성을 검증하는 것이 큰 그림으로 봤을 때는 결과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일임을 여실히 깨달았죠.”
본초학 연구의 즐거움이 이끈 창업의 길, 현대의학 속 한의학의 가치를 재조명하다
학부 시절 송정빈 교수는 본초학에 매료되었다. 대학원을 본초학교실로 택하고, 지난 15년 간 한의학을 기반으로 식·의약품 소재 발굴과 개발을 수행할 수 있었던 힘은 본초학에 대한 애정과 연구의 즐거움이었다. 본초학교실에서 학생연구원으로 지내던 두 번의 방학은 그가 기초연구라는 자신의 적성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본초학 연구에서 재미를 느끼고 연구에 임하다보니 어느덧 교수가 되고 창업에 이르렀다는 송 교수다. 그런 그에게 연구 결과가 논문에서 그치지 않고 제품화되어서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즐겁고 보람된 일이다. 실험을 수행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은 그가 오늘도 연구를 이어가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영어로 된 사명을 택하는 바이오벤처와 달리 일목바이오는 한자어를 택했다. ‘일목’이라는 사명은 송 교수의 전공인 본초(本草)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본 본(本)자를 파자(破子)하면 일(一) 목(木)이 된다. 송 교수는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본초를 자신이 만든 기업의 사명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돌아가신 부친의 호 역시 음(音)이 일목이었다. 한의학이라는 뿌리는 물론 자신의 뿌리를 되새기게 하는 사명인 셈이다.
현재 송 교수는 고대구로병원과 함께 다빈도 보험 한약제제인 황련해독탕의 신규 적응증을 탐색하기 위한 연구를, 경희대한방병원과는 뇌졸중 환자 검체로부터 신규 바이오마커 발굴하여 기능 회복을 촉진하는 한약물을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한의약 산업의 성장을 돕는 데 필요한 연구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는 그다. 2021년 한의학 연구 활동 및 한의학 발전에 기여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여한의사회로부터 미래인재상을 수상했던 송 교수는 대한본초학회 총무를 맡는 등 학문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송 교수는 한약제제 활성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의 한약제제 시장은 매우 작은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보험 한약제제 기준 처방은 수십 년째 56종으로 고정되어 있다. 송 교수는 그 수를 늘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의사들 역시 기존의 전탕(첩약) 외에도 표준화된 원료와 정량화된 함량을 담보할 수 있는 다양한 제형 개발 및 사용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피력하는 그다.
실험 결과의 신뢰성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학문의 발전 이끌어갈 것
교육자로서 송정빈 교수는 한의대 학부생들에게 한의학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학문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되, 전통 지식에 대한 맹신도 폄하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2천여 년간 누적된 기록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에서다. 대학원생들에게는 본인 연구 결과에 본인 자존심을 걸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실제로 세계 유수의 대학 실험실 및 연구소에서 나온 실험 결과물조차도 재현성(reproducibility)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실험 결과의 재현성 미확보에 대한 문제점은 SCIE 연구논문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내 연구실에서 나오는 실험 결과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면서 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실험 결과의 재현성을 철저히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존심은 기술사업화에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연구 결과가 산업화로 되는 과정에서 뒤로 갈수록 비용과 시간, 그리고 투입되는 인력 규모가 커지는 만큼 어려운 길일지라도 앞단에서 비용과 시간을 들여 표준화된 추출물을 가지고 정확한 세포 및 동물실험 결과를 얻는 것이 오히려 나중의 비용과 시간을 아끼는 길입니다.
송 교수는 자신이 실험한 결과는 다시 반복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찾아봐야 하고,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송 교수는 교수로서 자신이 택한 본초학이라는 학문의 발전에 보탬이 된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창업가로서는 사람들이 ‘글로벌 천연물 연구개발기업’하면 가장 먼저 일목바이오가 떠올랐으면 한다는 그다.
끝으로 송 교수는 약 2천 년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방대한 지식이 축적된 본초학은 전통지식과 현대과학을 연결하는 가교임을 강조했다. 한약재의 정확한 기원, 품질 동등성을 위한 원료 표준화, 임상 근거 확보를 위한 약리 연구 등 천연물 산업화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Tu Youyou 박사는 4세기 한의학 서적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 담긴 복용 방법에 대한 기록에서 힌트를 얻어 청호(靑蒿)라는 한약재로부터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해냈다. 송 교수는 현대의학에 굉장한 힌트를 줄 수 있는 가치들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 바로 본초학이라며, 본초학을 근간으로 한의학 사업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다짐을 전했다. 그의 연구들이 현대의학이 마주한 미충족 의료수요에 대한 솔루션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