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김혜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고통이 되게 하소서’
[휴먼] 김혜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고통이 되게 하소서’
  • 남윤실
  • 승인 2015.06.0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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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국민 엄마’로 불린다. <전원일기> <사랑이 뭐길래> <엄마의 바다> <그대 그리고 나> <마더> <엄마가 뿔났다>…. 1962년부터 그는 텔레비전을 켜면 보이는 얼굴이었고 22년 동안 ‘전원일기’ 양촌리 김회장댁 부인으로 인내와 헌신의 상징의 이미지로 살아왔고 ‘바로 이 맛이야’ 27년 동안 조미료 광고의 속삭임으로 친숙하게 다가왔다. ‘연기의 달인’ ‘대한민국의 영원한 어머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지만 유난히 느리고 어눌한 말투, 호기심어린 눈을 반짝일 때면 소녀같이 해맑다. 그는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머릿속은 불행한 어린이를 돕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국제 자선구호 단체인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빈곤국 어린이를 적극 돕고 있다. 오래 전부터 틈만 나면 이디오피아나, 우간다 등 아프리카를 찾아 봉사활동에 나선다. 그는 드라마에서는 한국의 어머니상을 보여줬지만 기아구호활동 등 세계를 누비는 자선봉사활동을 통해 ‘세계의 어머니’로 거듭나고 있다.

 | 여배우 김혜자 <사진제공=월드비전>
| 여배우 김혜자 <사진제공=월드비전>  

아프리카를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 봉사활동을 떠났을 때가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끝난 직후였어요. 그때 대학 졸업한 딸과 유럽여행을 함께 가려고 했는데 월드비전에서 ‘우리가 받았던 도움을 다른 나라에 돌려줘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각자 다른 곳으로 떠났죠. 아프리카라고 하니까 영화 <녹색의 정원>에서 넝쿨이 휘감긴 수많은 나무들 사이를 요정처럼 뛰어다니던 오드리 헵번 생각도 나고, 원주민의 안내를 받으며 그곳을 여행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신기한 나라를 구경하자는 마음으로 떠났던 거예요.”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어땠나요?
“충격 그 자체였어요. 항생제가 없어서 몸이 썩어 죽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지나요? 신에게 묻고 싶고 따지고 싶고 그랬어요.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는 이런 나라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아프리카를 다녀 온 후 다신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셨는데, 왜 또 방문하셨나요?
“에티오피아에 다녀온 후, 구로공단에서 일한다는 어떤 아가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어요. 소년소녀 가장을 도우려고 8만 원가량 저금해놓은 게 있는데 제가 봉사활동 다녀온 걸 보고 그 돈을 아프리카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 아가씨가 내 등을 떠미네’라고 생각했어요. 그 통화 이후 슬프게 빛나던 아이들의 눈동자가 자꾸 떠오르기도 했고요. 내 의지가 아니라 뭔가에 이끌리듯 떠난 거죠. 온 사방이 벌레로 가득하고, 들쑥날쑥한 기온에 수시로 모래바람이 불어대는 그곳에 있으면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힘겨운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보면 안절부절 못하겠어요.”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아파 울고만 다녔다. 그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에서 “그해 아프리카에서 흘린 내 눈물만 다 모아도 에티오피아엔 가뭄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뭘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좀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되도록 노력한다. 에티오피아 안소키아 사업장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양과 염소를 선물했고, 배고픔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죽을 떠먹이며 고통을 함께했다.

많은 것을 느끼셨을 거 같은데요.
“그곳에 다녀오면 진정한 구원을 얻어요. 지구 곳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연기를 하면서 깨닫지 못했던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 그곳에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삶이 변해가며 더 많이 웃게 되었고, 홀로 있을 때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홀로가 아니란 깨달았어요.”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다이몬드를 버렸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단돈 백 원이 없어서 사흘 동안 굶어야 하는 케냐의 소녀, 온몸이 피부병에 걸린 채 종일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을 하지만 임금은 커녕 두 끼밖에 못 먹은 시에라리온의 소년들, 8백 원짜리 항생제가 없어서 장님이 돼야 하는 아이들을 목격했어요.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광산의 아이들을 보고 와서는 다이아몬 반지를 버렸어요.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 대학살의 원인이었고,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려야 할 아이들이 하루에 열여덟 시간씩 다이아몬드 채굴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다이아몬드를 몸에 지니고 다닐 수가 없었어요. 그것에는 수많은 아이들의 피와 땀이 묻어 있기 때문에...”

에티오피아에 김혜자의 이름을 딴 ‘에티오티아 백학마을 OBS 김혜자센터’는 굴레레 지역 4~6세 극빈층 어린이 230명에게 급식과 잠자리, 의약품 등을 제공한다. 현지 교육청의 인가를 받아 유아교육 과정도 운영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스물일곱 명의 현지 교사와 직원들이 상근하고 있다. 교실 다섯 개와 도서실, 급식실, 취침실 그리고 놀이시설까지 완벽하게 갖췄다.

봉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신이 저에게 연기라는 재능을 준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 쓰라는 의미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엾고 힘없는 아이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소명이라고 생각해요. 봉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붙일 필요도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에요. 큰 물질이 있어야 아이들을 돕는 건 아니에요. 관심과 마음이 중요해요. ‘아프리카를 돕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만 있어도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도 못사는데 아프리카까지 도와야 하느냐’는 식의 힐난도 없어졌으면 하고요. 많은 분들이 봉사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언제나 희망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다고 믿어요. 그리고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끼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하는 일들을 봉사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가서 보면 그런 애들을 어떻게 모른 척해요. 내 재산을 다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요. 전 그들을 모르고 산 게 죄인처럼 느껴졌어요. 그니까 봉사가 아니라 도리죠. 처음엔 한 달은 밥도 안 넘어가고 예쁜 가방을 봐도 못 샀죠. 이 돈이면 몇 명을 살리겠나 싶어서요. 저도 얻는 게 많아요. 거기 가면 서울에서의 나의 고민이 참 별게 아니었다는 것을 느껴요. 영혼이 맑아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가는 거지, 내가 무슨 천사라고. 눈 감고 누우면 천장에서 애들이 빙글빙글 돌아요. 가서 심장에 사진을 찍고 오니까. 그래야 내가 더 설명을 잘 해줄 수 있으니까요. 안타까운 건 아프리카를 찾아갈 때마다 크게 달라지는 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을 뿐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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