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수면장애
타인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수면장애
  • 월간인물
  • 승인 2021.02.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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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상 선병원 귀코목센터 과장
장희상 선병원 귀코목센터 과장·유럽수면학회 인정 수면전문의
장희상 선병원 귀코목센터 과장·유럽수면학회 인정 수면전문의

고속도로 주행 중 재미난 표어를 봤다. “깜빡 졸음, 번쩍 저승저 표어를 보면서 차에 함께 탄 지인들이 깔깔대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참신하고 기발하고 한편으로는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던 저 표어가 수면의학을 전공하는 나한테는 또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온다. 우리나라에 졸음으로 인한 교통사고 건수는 하루 평균 7~8건이고,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 원인 1위가 졸음운전이다. 이렇듯 졸음운전은 본인의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범죄에 해당한다.

미국 국립수면재단 연구에 따르면 60%의 운전자들이 운전 중 졸음을 느낀 적이 있고, 40%는 지난 한 해 동안 졸음운전을 한 적이 있으며, 무려 네 명 중 한 명은 지난 한 달 이내에 운전 중에 깜빡 존 적이 있다고 하였다. 이런 운전 중 졸음은 과도한 주간 졸림증(excessive daytime sleepiness)과 연관이 높다. 주간 졸림증은 전날 숙면하지 못한 것과 연관이 많은데, 단순 과로와 음주, 환경 소음 등과 같이 일회적인 원인인 경우도 있고 코골이 수면 무호흡증이나 불면증같이 매일 지속되는 상황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일회적인 원인의 경우, 수면 의사의 상담 없이도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생활방식을 개선하고 주변 환경을 개선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코골이 수면 무호흡증이나 불면증 등으로 수면이 지속해서 단절되고 잠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경우 피로가 쌓이게 되고, 그 결과 주간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운전 중 졸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작년에 고속버스를 운전하시는 환자가 외래를 방문했다. 수척하고 근심 어린 얼굴로 진료실로 들어왔는데 첫마디에 선생님 제가 너무 위험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분은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거의 매일 졸음운전을 한다고 하였다. 졸음을 참을 수 없어서 사고를 낼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운전 중 중간에 휴게소에 쉴 때면 운전사 휴게소에서는 동료들과 차도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싶은데, 그분은 바로 푹신한 의자를 찾아서 잠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10분이라도 짧게 자야지만 목표지까지 졸음을 버텨가며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어 본인뿐만 아니라 승객의 안전이 걱정되어서 내원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는 하루에 3분의 1을 잠을 잔다. 잠에 대한 기록은 6천 년 전부터 있었다. 그렇지만 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150년이 채 안 된다. 그리고 수면검사가 본격적으로 임상에 적응된 것은 50년이다. 과거에는 잠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생산적인 일에 매료된 사람에게 잠이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100년간 잠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나서 잠이 보약임을 깨닫고 있다. 하루의 3분의 1이 잠이듯 인생의 3분의 1이 잠이기도 하다. 잠을 자는 동안 의식적이지 않은 많은 일이 일어난다. 깊은 잠에 빠져들면서 뇌가 휴식을 취한다. 근육의 긴장이 풀리면서 근육도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그 시간 동안 뇌 활동이 활발하여 주간에 있었던 많은 일을 정리하기도 한다. 잠 초기에는 성장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키가 크기도 한다. 이외에도 스트레스와 연관된 많은 호르몬 반응들이 일어나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깊은 잠을 자고 나면 기분도 좋고 생활의 활력도 생기고 집중력도 높아진다. 하루의 3분의 1을 잘 보내면 인생 전체가 행복해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코골이가 심하거나 수면 중 상기도가 일정 기간 막히는 무호흡이 생기면 잠이 방해받고 자주 깨고 수면 중 소변도 자주 보러 가고 악몽을 꾸기도 한다. 그리고 불면증이 있어 잠이 들기 어려워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즉 하루의 3분의 1이 엉망이 되면 인생 전체가 불행해질 수 있다. 아침에 피로한 몸으로 출근을 해야 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쉽게 짜증을 내게 된다. 운전 중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게 되고 부부간에 사랑이란 피로 앞에서는 언감생심이다.

얼마 전 고속버스 운전사가 내 외래를 다시 방문하였다. 수술 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함이다. 마스크를 썼음에도 낯빛이 환하였고 미소가 담긴 눈가주름이 보기 좋았다. “선생님 덕분에 인생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분은 목젖이 많이 늘어져 있었고 입안에 편도가 너무 커서 숨구멍도 좁았다. 코뼈가 삐뚤어져서 한쪽 콧구멍은 막혀서 항상 한쪽으로만 숨을 쉰다고 하였다. 병원에서 하룻밤 수면검사를 시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였더니 코골이도 심하였지만, 수면 중 무호흡이 1시간당 70회나 되었다. 무호흡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혈중 산소 수치가 지속해서 떨어지다 매번 잠을 깨면서 끝이 났다. 제일 길게 잠을 잔 시간이 30분이 채 안 되었다. 잠을 분석해보니 깊은 잠은 거의 없었고 근육이 쉬는 잠은 더더욱 발견할 수 없었다. 환자와 수면검사 결과를 상담 후 비강과 구강 수술을 시행하였다. 그분은 아침이 이렇게 상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수면 중 깨는 횟수도 정상으로 줄어들었다. 운전 중 졸음은 사라졌다. 무엇보다 휴게소에서 10분 동안 동료들과 농담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고 전했다. 나가시면서 부부관계가 좋아졌다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폐쇄성 수면장애의 치료는 이런 수술적인 치료도 있지만,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선택적이다. 대부분은 양압기라는 장비를 사용한다. 잠을 잘 때 바로 누운 자세에서는 목젖과 혀가 뒤로 쳐지는데, 잠이 깊어질수록 근육의 긴장감이 떨어지다 보면 기도가 완전히 막히게 되고 이럴 때 숨을 쉬고 싶은데 상기도가 막혀서 숨을 못 쉬는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를 폐쇄성 수면무호흡이라고 하고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하면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이라 부른다. 양압기는 수면 중 코를 통해서 약한 바람을 지속해서 주입하여 기도가 닫히지 않도록 도와준다. 작동법도 쉽고 매우 안전한 장치이다. 중환자실에 계신 환자들이 사용하는 인공호흡기는 공기를 넣어주고 빼주면서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라면, 양압기는 단순히 지속적인 공기압으로 기도만 열어주어 정상적인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일 뿐이다.

유럽에서는 택시나 고속버스 등 직업적으로 대중을 상대로 운전을 하는 직업군 중에 주간 졸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수면 의사의 면담을 받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수면장애가 의심되면 수면다원검사를 통해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런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있는 분들이 의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운전 중 사고를 내는 경우 보험 적용도 되지 않을뿐더러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직업 운전자들은 수면장애 치료를 받고 치료 후 주간 졸음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지만 운전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적어도 1년마다 재진단을 받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약 26조 원에 달한다. 교통사고 중 사망사고의 원인 중 1등은 단연 졸음운전이다. 이런 졸음운전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상 운전자의 휴식, 차량 안전장치 확충 등의 재정적인 지원도 현재 범정부적인 협의체를 운영하여 개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위에 언급한 대로 운전자 개인의 수면장애 여부 또한 매우 중요할 것이다. 대중교통을 담당하는 운전자를 채용하고 해마다 운전능력을 평가할 때 주간 졸음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고 수면장애가 있는 운전사를 적절히 치료한다면, 교통사고의 발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고의 예방은 운전자 개인의 생명을 보호함과 동시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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