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Now] 먹을 것이 귀해지는 시대, 생명의 밥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
[MonthlyNow] 먹을 것이 귀해지는 시대, 생명의 밥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
  • 박미진 기자
  • 승인 2021.02.09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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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던 어젯밤, 평소 이용하는 마트의 할인 전단을 보게 되었다. 원래 가격 8,950인 달걀 한 판의 가격이 명절 전 세일 특가로 7,160원에 판매한다고 되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주말 늦은 밤, 쉴 시간에 굳이 마트에 가지 않았겠지만 요즘 달걀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터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 주 초가 되면 더 오를까 걱정되어 문 닫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둘러 단골 마트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달걀들이 아직 다 팔리지 않고 수량이 조금 남아 있었다.

 

28, 현시점 농축수산 식품 가격 동향

살림을 꾸려나가는 국민이 모두 장바구니 물가를 체감하고 있듯, 식품 물가 상승은 달걀 품목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농수산물 유통 정보 (KAMIS : Korea Agricultural Marketing Information Service) 사이트 공표 자료를 보면 현시점에서의 농 · · 수산 물가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가격 정보파트의 도매 물가 섹션을 살펴보자. (* 참고사항 : 품목별 도매가격은 도매시장 중도매인 상회에서 소상인이나 실수요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이다. 1개월 전, 1년 전, 평년 가격은 해당 일자 기준 5일 이동평균 가격임. 평년은 5년간(올해 제외) 해당 일에 대한 최곳값과 최솟값을 제외한 3년 평균값.)

 

(자료 출처: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운영 KAMIS)
 (자료 출처: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운영 KAMIS)

작년 여름 이상 기온은 우선 우리의 주식인 쌀의 가격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기본 주식인 쌀과 김치, 즉 배추 가격을 보면 현재의 동향을 잘 알 수 있다. 쌀의 경우 (최곳값이 아닌) 1년 전 평균 가격의 47,100원이었고 3일 전의 평균 가격은 57,180원으로 조사되었다. 지역별로 천 원단 위의 차이가 있지만, 가격 상승 추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자료 출처: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운영 KAMIS)
(자료 출처: aT: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운영 KAMIS)

대표적인 채소, 배춧값도 만만치가 않다. 김치가 금치()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치를 담그자면 포기 배추만 가지고 담그는 것이 아니고 고춧가루, 마늘, (쪽파 기타) , , 소금, 젓갈 등 기타 양념과 부재료들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저 한숨만 나올 지경이다.

요즘 애호박 가격[마트 소비자 소매가격]은 한 개에 2,700원에서 2,800원 사이를 보인다. 크기와 상태도 작년 하반기 상품보다도 못한 품질인데도 호박 한 개가 3,000원을 향해 가니 이대로 간다면 서민들이 보통 먹는 된장찌개, 고추장찌개에 호박을 넣는 것도 큰 호사가 될 것 같다.

명절이면 단골 선물 품목이자 필수 제수용품인 과일의 경우, 선뜻 진열상품에 손을 내밀기 어렵다. 정부 당국 통계에서 보여주는 배, 15kg의 가격은 (KMIS 사이트 자료에 따르면) 3일 전인 25, 평균가는 78,320원이다. (1년 전 도매가격은 44,200원이었고 1개월 전은 72,060) 이제 과일을 크게 마음먹고 구매하려면 최소 8만 원은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농수산 물가가 식품 물가 전반에 끼치는 영향

조류 인플루엔자의 영향으로 달걀값이 많이 오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트 소매 판매 가격이 일반 달걀(고급 영양란이 아닌) 한 판에 5천 원대 후반에서 6,000원 정도였다. 당시 마트에서 다음에 살까, 망설이는 모습을 본 직원이 내일이면 더 오르니 지금 당장 사라고 조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제는 달걀 한 판이 만 원에 근접한다.)

당시, 달걀을 사고 빵 판매대에 가니 즐겨 먹던 빵의 가격은 이미 500원이 올라 있었다. 부수 재료가 더 들어가는 빵은 한꺼번에 천 원이 오른 제품들도 있었다.

쌀값이 오르니 간편 조리 식인 햇반 가격도 조만간 오른다고 한다. 허리띠를 줄이고 이참에 다이어트나 할까 자조(自嘲)하며 덜 먹는다고 해도 아예 안 먹고살 수가 있나. 밥 한 그릇, 달걀부침, 김치 한 보시기, 된장찌개마저 부담스럽다면 정말 우울한 일이 될 것이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자녀들도 온라인 수업을 듣는 동안 대다수 가정의 엥겔 지수(일정 기간 가계 소비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가 높아졌다. 조류 인플루엔자 탓에 닭고기, 달걀값이 오른다고 대체재인 돼지고기를 찾으니 아뿔싸, 돼지고기 가격이라고 해서 그냥 머물러 있지 않았다. 마트 정육 코너 직원의 말인즉, 닭고기의 대체재인 돼지고기 가격은 벌써 훨씬 전에 올랐다고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다라는 격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 (ASF, African Swine Fever)도 문제 되고 있다니 첩첩산중이다.

 

어떤 굶주림에 관한 이야기

예전 학생 시절, 프랑스 혁명사에 관한 일련의 주제를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음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파리코뮌[Commune de Paris]1871,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립된 혁명적 자치 정부를 일컫는다. 1870년과 1871년에 걸친 프로이센과의 전쟁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패배시킨 비스마르크가 프랑스를 제거하여 독일 통일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일으킨 프랑스 제2제국과 프로이센 간의 전쟁. 한자로 보불 전쟁(普佛戰爭)이라고도 했음.)에서 프랑스는 패배했다. 프랑스 민중들은 프랑스 정부의 무능함에 반발하여 항쟁을 일으킨 것이 파리코뮌의 원동력이었다.

코뮌 정부가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던 것은 치열한 전투를 다룬 대목보다는 국민이 겪는 처절한 굶주림에 관한 내용이었다. 감자 몇 알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굶어 사망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쥐를 잡아먹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책을 읽은 지, 매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의 충격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인간 생존 최소한의 존엄이 무너지는 굶주림의 고통은 직접 겪었을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그 광경을 역사로 읽는 나와 같은 독자에게도 무척이나 끔찍한 스토리였다.

세기의 명배우 오드리 헵번 (Audrey Hepburn | Audrey Kathleen Ruston: 192954, 벨기에 - 1993120)이 은퇴 후 유니세프 친선 대사 활동을 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드리 헵번의 어머니는 네덜란드 귀족 출신으로, 헵번의 외가가 네덜란드에 있었다. 그녀가 열네 살, 열다섯 살 무렵, 치열한 2차 대전 시기에 그녀는 외가에서 전쟁을 겪었다.

1944에서 45년 겨울, 독일군의 식량 공급 차단으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퇴락한 귀족이었던 그녀의 외가에서 그녀는 혹독한 굶주림을 겪었다.

그녀와 가족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다 못해 튤립의 뿌리까지 먹어야 했다고 한다. 한창 클 시기 청소년이었던 그녀는 빈혈과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체형에 변형이 와서 성인이 되어 아무리 많이 먹어도 결코 살이 찌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활동 시절 그녀의 키는 170cm였는데 몸무게는 채 50kg이 되지 않았다.

배우로 성공을 거두고 만인의 연인으로 세계 사람들에게 명성을 날린 그녀는 의식이 참으로 성숙하고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을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돌려주기로 했다.

전쟁을 겪은 소녀 시절, 유니세프 전신인 유엔 구제 부흥 사업국의 도움으로 살아날 수 있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녀는 노년에 유니세프 활동에 헌신했다. 또한 오드리 헵번 어린이 재단을 설립하여 그녀의 자녀들이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지금도 어린이들을 돕는 활동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 :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마지로 28에 자리한 안나의 집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하는 집이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안나의 집을 설립하신 분은 이탈리아에서 오신 김하종 신부님이다. 김 신부님의 본명은 빈첸시오 보르도(Vincenzo Bordo : 1957년 이탈리아 피안사노 출생)이다.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한 뒤 신학교에 진학하여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1990512일 한국으로 왔다. 1992년 성남의 빈민사목을 시작으로 1993년부터 무료급식소인 평화의 집을 운영하다가 1997IMF 구제금융기가 시작된 이후 늘어난 노숙인들을 위해 안나의 집을 설립하여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안나의 집은 저녁밥을 제공하고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지금은 도시락 나눔으로 진행하고 있다.

안나의 집은 노숙인 기숙사, 노숙인 자활사업, 청소년 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트럭을 몰고 나가 거리의 청소년들을 챙기는 아지트(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도 운영 중이다. 이 또한 요즘은 워킹 스루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와 국민이 총력을 기울이는 지금, 어려운 사람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던 서울 시내 단체 54곳 중, 17(31.5%)'의 운영을 중단했다. 사회복지 시설의 이용도 제한되고 있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21세기인 이 시대에 굶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안나의 집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면 김하종 ( 한국인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성씨인 과 하느님의 종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 신부님이 매일 수백 명분의 쌀을 씻고 직접 밥을 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인이 해야 할 일을 바다 건너오신 외국인 신부님이 하시는데 참으로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꼈다.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후 일용직 일자리가 많이 끊겼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이웃들이 하루 세끼 밥도 먹지 못하는 아픔을 겪는다. 김 신부님께서 하시는 간절한 기도 내용은 안나의 집에서 결코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안나의 집을 이용하는 700명 넘는 분들이 이곳에서의 한 끼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음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안나의 집을 이용하는 분들은 주로 일을 하기 어려운 노인과 40대 이상 연령대의 남성 노숙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후원 문의: 031-757-6336(http://www.annahouse.or.kr)}

김하종 신부님은 코로나 발생 이후 275일 동안 안나의 집에서의 기록을 책으로 내셨다. 제목은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이다. (김하종 글, 펴낸 곳 니케북스, 20201115일 초판)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서 신부님께 힘을 실어드리면 좋지 않을까. 작은 힘이라도 보탠다면 춥고 외로운 명절을 나야 하는 힘든 이웃들의 마음이 조금 따뜻해질 것 같다.

신부님은 배식이 시작되기 전, 매일 봉사자들께 정중히 부탁을 드린다. 안나의 집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물질을 주는 것이 아닌 사랑의 마음을 담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줄을 서서 도시락을 받아 가는 사람들에게 멀리서 머리 위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합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신다.

미사여구가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 그리스도의 참 가르침 사랑이 바로 안나의 집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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