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화 고현갤러리 대표·고현한지공예연구회 회장 - 한지공예에 깃든 조상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전한다
정계화 고현갤러리 대표·고현한지공예연구회 회장 - 한지공예에 깃든 조상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전한다
  • 안수정
  • 승인 2016.08.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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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은 손이 가야 만들어진다고 해서 ‘백지(百紙)’라고 불리는 한지. 이것이 다시 백 번의 손을 거쳐 공예작품으로 탄생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빨리 더 빨리’를 논하는 시대에 기다림의 미학을 담은 작품을 내 놓은 정계화 대표. 오로지 한지에 풀을 먹이고 말려 색과 문양을 넣는 것이 정 대표에게는 하루이자 생활이며, 그녀가 한지로 빚어낸 아름다움은 작품 곳곳에 보석처럼 알알이 맺혀 있다.

 

정계화 고현갤러리 대표·고현한지공예연구회 회장

즐거움 따라 20여 년, 2016년 부산시 공예명장 선정

예전 세대들이 그랬듯, 정계화 대표 또한 획일화된 교육의 틀에서 성적에 맞는 전공과 주위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한지공예를 만난 뒤 그녀는 공예작업과 열애를 하듯 뜨겁게 불타올랐다. 며칠 밤을 새워도 피곤한 줄 몰랐고, 이런 게 배우는 재미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직업으로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 기다림에서 우러나온 고운 색감과 한지를 오리는 정성은 한데 어우러졌고, 풀칠과 마감재칠 후 기다림은 사색의 기쁨으로 이어졌다. 전통에 더해진 창조는 긍정의 색으로 칠해져 정 대표에게 행복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녀가 선택한 은은한 멋은 질리지 않는 충만한 감정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했다. 공존이 쉽지 않은 ‘열정’과 ‘여유’를 손끝으로 배운 그녀는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을 쉬지 않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고, 그 노력은 ‘2016년 부산시 공예명장(종이분야)’으로 결실을 맺었다. 결코 무형문화제나 명장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이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행복했고, 故상기호 한지공예가에게 체계적인 전통을 배우며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늘어났다.

“절 명장으로 만들어 준 것은 제자들입니다. 선정 소식을 듣고 생각지도 못한 분들까지도 축하를 많이 해주셨어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 것을 보고, 명장의 무게감을 잊지 않고 한지공예를 더욱 발전시켜야겠다는 긴장 섞인 책임감을 느껴요.”

정 대표는 2006년 고현한지공예연구회를 설립했다. 현재 25명의 제자들과 함께 국내·외를 막론하고 활동 중이다. 바쁜 와중에도 연구회를 운영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한지공예의 활성화’를 위해서다. 그녀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공예에서도 ’누군가와 함께‘하며 발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2월, 연구회에서 주최하는 제 7회 고현한지공예전이 열렸습니다. 1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작품을 선보인 작가가 단 한명도 없어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 공예 발전을 견인한다는 생각에 모두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어요.” 실제로 정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고현갤러리는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액세서리 소품뿐만 아니라 마치 나무로 만든 듯 견고해 보이는 가구까지, 한지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든 다양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지공예에 전념해 온 정 대표는 한지공예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전통공예에 국한시킨 것에서 찾는다. 전통적인 기본 지식과 기술을 이해하고 습득한 후에는 생활 속에 밀접한 작품을 자신만의 색깔로 해석하는 작가로 성장해야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작가의 색깔이 완성되면, 다른 분야의 기법이나 방향성을 접목시키는 일도 쉬워질 것이고, 보다 창의적인 한지공예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을 닮은, 인생사를 닮은 한지

정계화 대표에게 ‘한지’란 사람 그 자체다. 쉽게 찢어지고 상처 나지만 여러 겹 겹쳐지면 그 어떤 갑옷보다 단단해지는 한지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상처를 받지만 서로 의지해나가면서 더 강해지는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녀 자신이 우리의 삶과 닮은 한지에서 조상의 지혜와 멋을 찾을 수 있었기에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희망한다. 이에 그녀는 서양미술은 열심히 가르치면서 도예나 공예 등 우리 전통예술을 가르치지 않는 현 교과과정의 문제점이 개선되고, 공예가들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어야 함을 언급했다.

한지공예의 발전과 관련해 생각으로만 그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하는 실천력을 보여주는 정 대표. 자신이 작품 활동을 하며 겪은 시행착오들은 반드시 다시 보완하는 과정을 거쳐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전하는 것도 그녀가 한지공예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 이는 스스로 변화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알려줌과 동시에 함께 발전하기 위한 정 대표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지공예는 복원 전승된 분야이기에 구전으로 기능 중심의 전수가 되어온 터라 관련 서적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정 대표는 우리종이 한지의 놀라운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서적 <생활 속의 한지공예>를 시작으로, 다양한 저서를 집필했다. 한지를 다양한 장르와 함께 도서화 시킨다면 다음 세대들의 다양한 도전을 견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지를 통해 전통공예를 향한 애정, 선조들의 지혜와 감각에 대한 자랑스러움, 우리 문화로 세계인을 감동시키고픈 사명감 등이 함께 자라서 심성의 성숙도 이루었습니다. 한지공예가 작품으로 문화상품으로 끝없는 발전을 이루어 내는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세상이지만 내공이 없는 결과는 스스로의 성숙을 포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유로운 마음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과 시간을 내어 보는 건 어떨까요? 100세 시대를 열어가는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지는 것을 느끼게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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