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생태계전환을 위한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탄소배출 억제를 위한 에너지 세제 개편·기후대응기금 재원 등을 병행 검토하겠다는 게 골자다. 세계적 흐름에 맞춰 한국도 탄소 중립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선 ‘탄소세’를 징수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반발 조짐을 보인다.
정부, 탄소세 로드맵 공개
탄소세는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석유, 석탄 등 각종 화석에너지에 함유된 탄소량에 기초해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내재화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함과 동시에 경제적 효율을 증진할 방안으로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안이다.
탄소세 도입은 1990년 핀란드를 시작으로 1991년 스웨덴, 노르웨이, 1992년 덴마크가 각각 도입했다. 현재는 독일, 스위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영국 등 12개국 이상이 시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2050 탄소 중립 추진 전략’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저감 노력을 통한 제거량을 더해 순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 화석연료를 수소 등으로 대신하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도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에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기 위해 정부는 탄소세 도입이나 경유세 인상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날 공개한 정부가 발표한 추진 전략을 살펴보면 정부는 에너지 공급의 중심축을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바꾸게 된다. 지난 2016년 파리협정과 2019년 유엔(UN) 기후정상회의에서 한국을 포함한 121개국이 합의한 대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줄여나가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주력산업으로 볼 수 있는 고탄소 산업부문에 대한 혁신정책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철강‧석유화학 등 탄소 다 배출 업종의 대규모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고탄소 중소기업 대상 일대일 맞춤형 공정개선 계획도 내놓았다.
아울러 정부는 탄소 중립 정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기금과 기구도 만들 예정이다.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민관 합동 기구인 가칭 ‘2050 탄소중립위원회’도 설치한다.
기업‧국민 부담 증가 가능성
이런 가운데 정부는 탄소세 도입이 당장 현실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국민과 기업에 부과되는 세금부담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도 사실상 말을 아끼고 있다. 그는 “탄소세는 환경에 대한 기후변화 대응, 소득분배, 물가, 산업 경쟁력 등 미치는 영향이 다각적으로 있으므로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방침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단계에서 탄소세 도입 여부와 경유세 인상 여부에 대해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 ‘탄소세’가 부과될 경우 기업 부담이 가장 클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탄소세 도입으로 세 부담이 커질 업종으로는 대표적으로 석유와 철강업계가 꼽힌다. 이 업종에서 탄소배출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또한,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제 제조업 비중에서 한국은 28.4%를 차지했다. 유럽 16.4%, 미국 11% 등에 비하면 매우 높은 셈이다. 같은 해 기준 석탄발전 비중은 40.4%에 이른다.
또 다른 방안으로 거론되는 경유세 인상의 경우 경유 가격이나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해 SUV 차량 소지자, 화물·운송업자, 자영업자 등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존 산업 종사자들의 일자리 감소로 ‘고용 쇼크’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탄소세를 도입한 국가들은 이 같은 우려에 상당한 대책을 세워 운영 중이다. 가정용, 건물용, 수송용 연료에 높은 탄소세율을 적용하고, 산업부문에선 경쟁력 저하 방지를 위해 국가별 산업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종류의 조세특례 등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탄소제로(0), 탄소 중립은 이미 세계적 흐름을 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화두로 꼽히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도 공식적으론 처음으로 ‘탄소세’ 도입을 거론한 만큼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됐음을 인정한 셈이다.
다만 국민을 대상으로 ‘탄소세’의 취지나 개념 정립을 우선해야 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탄소세 도입 등으로 기업과 국민 부담이 늘어날 수 있어 자칫 조세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방향성만 제시됐을 뿐으로 실체적인 탄소중립 실현에 따른 효율성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