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저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 저자
  • 안수정
  • 승인 2016.03.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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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보편적 이념의 수행자입니까, 자기 꿈의 실현자입니까. 당신은 바람직함을 지키며 삽니까, 바라는 걸 이루며 삽니까. 당신은 ‘원 오브 뎀’(one of them)입니까, 유일한 자기입니까.’ 노자 사상 연구 석학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에서 화두처럼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다. 질문은 다르지만 그가 묻고자 하는 뜻은 한 맥락이다. 질문 자체에 저자가 원하는 답이 이미 제시돼 있다. 그는 노자 사상을 근거로 “당신은 바라는 걸 이루며 살아가는 자기 꿈의 실현자이자 ‘유일한 자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눈빛은 상대방을 꿰뚫을 것처럼 매우 강하다. 반백의 짧게 깎은 머리,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 모습에서는 신세대 철학자 같은 면모를 느끼게 한다. 

 

| 최진석 서강대 교수
| 최진석 서강대 교수 

  

노장사상은 지극히 현실적

노자 사상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무위(無爲)’다. 흔히 ‘무위’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무위는 이런 소극적이거나 현실도피적인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저자는 ‘무위’를 어떤 이념이나 기준을 근거로 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풀이한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다는 뜻이 아니다. 최진석 교수가 전하는 무위는 남이 만들어 놓은 이념이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세계의 변화에 따라 자발적이고 유연하게 접촉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를 특정 기준에 따라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보고 반응하는 무위적 태도를 지녀야 변화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자를 강의하고 책을 쓰는 이유를 여쭤볼게요. 

“결국 자세의 문제입니다. 노자를 배울 때 지식을 흡수하려는 게 아니라 노자의 사유를 제대로 받아들여 그와 맞먹어 보겠다는, 또 다른 노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노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보다 노자가 그 말을 하게 된 역사적 조건을 알고 그 사유의 높이에 동참해야 합니다. 노자의 사상에 대한 오해가 많아요. 이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노자 사상에 대한 어떤 오해인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어요?

“노자의 사상을 현실도피적이거나 신선사상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아요. 하지만 사실은 달라요. 철저히 현실적이며 매우 정치적인 사상입니다. 시대적으로 노자와 공자는 둘 다 신의 권위가 쇠퇴하고 인간의 지위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어요. 공자는 인간의 내면적 본성, 즉 인(仁)을 토대로 보편적 기준을 만들고 예(禮)를 향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고 봤죠. 반면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노자는 인간의 본질이나 토대 자체를 부정합니다. 모든 것은 유(有)와 무(無)의 관계로 이뤄진다고 봤죠. 이런 ‘관계론’ 철학은 모더니즘 이후의 세계와 잘 부합합니다. 노자를 ‘현대철학자’라 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특별히 ‘무위’를 매우 적극적인 개념으로 해석하고 계십니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강조한 말입니다. 노자는 무위를 말하면서 모든 것을 이루는, 즉 무위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뜻의 ‘무위이 무불위(無爲而 無不爲)’를 말했어요. 다시 말해 바깥세계를 남이 봐야 하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보라는 것이죠. 이에 비해 유학(儒學)은 어떤 명분, 규범을 갖고 세상을 봅니다. 시스템을 만들 때에는 의미가 있지만 지금 같은 글로벌 모바일시대에는 맞지 않아요. 유학사상이 주도권을 가지면서 노장철학을 두고 현실 도피적, 반문명적이라고 몰아갔는데 오히려 거꾸로에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노장사상이야말로 더 현실적이죠. 요즘 서양에서 노장사상과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노장철학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다고요? 다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인데요.

“디지털, 모바일, 무한접속 시대에는 집단이 아닌 개인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세대는 PC를 쓰던 세대보다 훨씬 더 개별적이에요. ‘사명’보다는 ‘재미’가 더 의미 있는 시대죠. 노장철학은 자율과 개별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현대와 더욱 가까운 거리에 있어요.”

  

이 노자의 무위 사상이 한국사회에 주는 메시지도 있을까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이념갈등 아닌가. 이념이나 신념은 인간을 어떤 본질을 가진 존재로 보는 데서 생겨납니다. 본질을 인정하면 이상적 단계가 설정되고,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구분을 하게 되고, 이는 곧 이단 배격으로 이어지죠. 하지만 이념은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입니다. 노자는 인간과 세계를 비본질적인 것으로 봤습니다. 어떤 이념을 설정해 놓고 세계를 보지 말고, 변화하는 구체적인 세계를 읽어 자신의 문법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인문학이란 결국 그런 ‘인문적 레벨의 시선’을 가진 인간을 키워내기 위한 것입니다.”

  

생각을 선도하는 나라가 선진국

최진석 교수는 선진국을 “생각을 선도하는 나라”라고 정의한다. 그는 경제나 기술 발전 수준으로 선진국을 가를 수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상상력을 기준으로 가르고 싶다고 말한다. 남을 선도하는 생각, 선도력(先導力)을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보는 것이다. 

  

선도력을 가진 나라,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남들이 가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생각을 시도하는 것에서 만들어집니다. ‘창조’적인 힘인데 ‘창조’는 ‘인간의 동선(動線)을 세밀하게 읽은 뒤 어떤 개념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스마트폰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입니다. 삶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있었고 그것을 개념으로 구체화시킨 결과물이 아이폰이죠. 아이폰을 만들기 전 집요했던 잡스의 인간에 대한 탐구, 이 지점이 철학과 인문학이 개입되는 지점입니다. (실제로 잡스는 동양의 음양사상, 선 철학에 심취했다.) 인문학을 할 때 ‘인문(人文)’, 즉 삶이 그리는 무늬란 것은 ‘인간의 동선’이란 말을 고상하게 표현한 겁니다. ‘동선’이란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삶에서 어떤 것에 의미 부여를 하는지 같은 것들이에요. 이걸 파악하는 능력이 바로 인문적 상상력이죠. 대표적인 선진국인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은 자기 나라만의 철학을 갖고 그런 시선에서 상황에 대처합니다. 한국은 스스로 판단해서 철학적 결단을 내린 적이 없어요. 자기 길을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 안에서도 서로를 모두 타자로 보고 있는 겁니다. 현재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기준 안에 갇혀 있고, 이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겸비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도달할 지점은 딱 여기까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사회 전반적으로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을 우리 한국 사회가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해도 됩니까?

“그렇죠. 자각한 거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포인트는 인문학 열풍을 주도한 그룹이 어느 그룹이에요? 대학은 아직까지도 인문학의 위기라고 그럽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를 관리하는 관료들,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겠다고 한 정치인들 모두 아니에요. 기업인들이에요. 왜 기업인들이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가. 그건 뭐냐면 기업인들이 그래도 제일 깨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이분들을 만나보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박하게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업인들은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바로 자기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이죠. 승패를 좌우하거든요. 그런데 기업인들, 상인들 외 어떤 직업도 자기가 한 의사결정이 바로 자기 승패를 좌우하는 그룹은 없죠.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소비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철학과 인문학적 상상력에 달려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기업인을 주의 있게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맞아요. 주의 있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인이 유지하고 있는 그 예민함을 관료도 가져야 되고, 학자도 가져야 되고 군인도 가져야 되고 정치인도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하나 또 지적을 해야 될 점은 어떤 인문학 지식을 쌓는 것을 인문적 사유의 레벨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왜 인문적 지식을 그렇게 많이 관리하는 대학에서 인문학이 오히려 위기라고 하겠습니까. 그건 대학에서 인문적 레벨의 사유를 하는 것보다 인문적 레벨의 사유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남긴 지식을 습득하는데 더 몰두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인문적 지식은 많지만, 인문적 레벨의 시선을 갖거나 그 사유를 하는 것은 오히려 더 기업인보다 늦을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인문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인문학이 아니라 그 인문학이 인문학적 지식을 통하거나 어쩌거나 간에 자기가 인문적 레벨의 시선을 갖는 것, 인문적 레벨에서 활동하는 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될 지점입니다. 아무리 인문학적 지식이 많아도 인문적 레벨에서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거는 헛일이죠. 또 하나의 지식을 쌓는 거에 불과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특히 철학, 인문학 레벨에서 우리가 습득하는 지식들은 다 누군가의 생각의 결과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결과들을 숙지하는 것은 생각하는 거 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철학을 하고 인문학을 하는 것은 철학적 레벨에서 인문학적 레벨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갖는 건데 생각하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 먼저 생각해 놓은 결과들을 숙지하다가 정작 자기는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수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남’이 아닌 ‘나’의 기준으로 살아야

한국 사회의 개인은 왜 불행한가. 왜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휩싸여 고통 받고, 경쟁의 강박에 시달리나. 한국 사회는 어째서 심각한 지역 갈등 속에 서로를 비난할까. 우리는 과연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를 침울하게 하는 여러 문제들. 이 문제들에는 감정과 사고의 지점이 ‘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남의 욕망을 희구하고, 사회의 가치를 좇고,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결정을 내린다. 한국 사회에서 실종된 ‘나’의 존재는 모든 불행과 사회 문제의 원인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최진석 교수는 예리한 분석과 계몽적 화두를 던졌다.

  

저서에서 개개인의 삶을 ‘보통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존의 문법에 지나치게 충실할 경우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를 정체 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을 찾고 이를 통해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녀를 가르칠 때도 자녀 스스로 자신의 욕망이 드러나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욕망을 가르치려고만 하죠. 생각해 놓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직장인들에게도 직(職)에 연연하지 말고 업(業)을 이루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는 사회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행복하지 않죠. 직은 하나의 역할에 불과하고, 업은 자기의 삶을 이루는 문제인데, 한국 사람들은 직을 가지는 데에 만족합니다. 한국은 이념이나 신념에 대한 믿음이 굉장히 강한데, 그만큼 독립적 사유가 약하다는 뜻입니다. 신념과 이념은 머리 위에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발밑에 깔고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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