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작가 -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책들의 부엌 ‘소양리 북스키친’, 책장을 펼치면 스며드는 치유의 향기
김지혜 작가 -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책들의 부엌 ‘소양리 북스키친’, 책장을 펼치면 스며드는 치유의 향기
  • 문채영 기자
  • 승인 2022.12.07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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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고도 각박한 세상 속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마디와 공감가는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싶다. 작든 크든 사소한 일에서부터 누적된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 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한 템포 시간이 느리게 흘러갈 것만 같은 ‘소양리 북스 키친’은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을 환하게 맞아주며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책장을 넘기면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이곳에서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주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월간인물 독자분들께 작가님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책들의 부엌>을 쓴 작가이자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 김지혜라고 합니다. 월간인물 독자님들께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창작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진행해오셨는데, 어떻게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항상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던 걸까요?

회사 다닐 때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어요. 세상에는 좋은 소설이 아주 많으니까 읽는 독자로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겠다고 여겼거든요. 글쓰기를 따로 배워본 적도 없었고요. 그런데 코로나 시국에 퇴사하게 되면서 참 많은 생각과 감정이 한꺼번에 찾아왔어요. 외로운 마음을 누구에게 오롯이 털어놓을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상황에서 육아하는 것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버거웠거든요. 그래서 도피처이자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을 머릿속으로 구상하게 되었고,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고 내 깊은 마음속 감정과 생각을 오롯이 털어놓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죠. 그때쯤 장강명 작가님의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에세이를 읽게 되었어요. 작가님은 책에서 ‘글 쓰는 일이야말로 꽤 괜찮은 취미 생활’로 얘기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저도 누가 이걸 볼 거라는 생각은 한 톨도 없이, 그저 저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들의 부엌>은 첫 작품이지만, 출간 후 짧은 시간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잖아요. 책이 주목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떠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어요. <책들의 부엌> 출간제안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2쇄만 찍는다면 충분히 행복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출간과 더불어 갑자기 책이 주목 받으며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진입하니까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즐거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막연한 두려움도 함께 찾아오더라고요. 제 이름 옆에 작가라고 쓴 명함을 대중에게 뿌리고 다닌 기분이 들었거든요. 정식으로 글쓰기를 공부해본 적도 없고, 글쓰기를 오랫동안 해온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주목을 받아도 되나, 부족한 부분이 금세 드러날 텐데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과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죠. 그때 가족과 지인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응원해줘서 용기가 났어요. 출판사 편집자와 마케팅 담당자의 열정과 역량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도 있으니, 저 혼자 만들어낸 성취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감사하고 행복한 이 순간도 금세 지나갈 테니 온전히 누려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소설에 대한 질문을 드려보고 싶어요. 작가님 안에서 ‘소양리 북스 키친’은 어떻게 탄생되었나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의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랬어요. 코로나 시국에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없으니, 이야기의 세계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지요. 육아와 코로나 시국의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소양리 북스키친’을 만든 거랍니다. ‘소양리 북스키친’의 모티브가 된 곳이 있냐고 묻는 독자분을 종종 만나요. 사실 있어요. 전라북도 완주군에 있는 한옥 호텔 ‘소양 고택’과 현대식 카페 ‘소양 두베’, 작은 책방 ‘플리커’입니다. 바로 근처에 ‘아원 고택’이라는 미술관 겸 한옥 호텔까지 다 모여 있어요. 제가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곧잘 찾아갔던 곳이에요. 사시사철 느낌과 분위기가 다르고, 때마다 주는 위로의 결이 달랐어요. 그래서 이곳을 모티브로 해서 저만의 ‘소양리 북스키친’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계절의 흐름과 분위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했지요.

 

다인을 보며 국내 모 가수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각 인물들은 참고하신 실존 모델이 있었을지, 이러한 소설 속 캐릭터 및 에피소드들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계절별 에피소드의 주제를 먼저 정하고, 이에 맞는 인물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봄에는 사회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 사이의 간극에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30대에 맞닥뜨리게 되는 정체성의 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맞이하는 이들이 누구일까 생각해봤어요. 그랬더니 여자 아이돌 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제 주변에 아는 여자 아이돌 가수가 없어서, 그냥 저의 상상과 추측만으로 인물을 만들어 본거예요. 하하. 5~6명의 연예인 분들을 모티브로 삼아서 캐릭터를 잡아갔어요. 캐릭터를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을 복합적으로 섞어서 윤곽을 그려놓고, 엑셀 파일을 켜서 50문 50답 하듯 캐릭터의 모든 것을 알아가려고 했어요. 다른 작가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인터뷰를 보고, 저도 흉내를 내 본 거였지요. 근데 정말 신기했어요. 처음에는 A와 B와 C를 닮은 인물이었는데, 점점 내면과 외면을 알아가다 보니 진짜 알고 지내던 어떤 친구로 재탄생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캐릭터들은 어떤 날은 산책하는 제게 말을 걸기도 하고, 소설 속 장면에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느끼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정리하자면, 저는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주제를 파워포인트 20장 정도로 먼저 정리했고, 여기 주제에 맞는 캐릭터를 구상하고 엑셀로 상세 사항을 정리하며 캐릭터를 구체화했던 것 같아요.

 

<책들의 부엌>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이 소개되는데, 가장 애정을 느끼는 인물과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가장 애정을 느끼는 인물은 마리에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마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엄두가 안 나서 이야기에서 아예 빼버릴까 하는 고민을 한 적도 있어요. 마리 에피소드는 몇 번이나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거든요. 설정과 공간을 바꿔보기도 하고, 외모와 전공, 나이와 성격까지 재구성에 재구성을 거듭한 인물이랍니다. 그러다 보니, 마리에 대해서 서서히 이해가 됐고 정이 누구보다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마리가 누구보다 외롭고 힘들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래서 마리 곁에 지훈이를 두고 싶었어요. 지훈이라는 존재가 마리의 삶을 안아줄 수 있어서요. 그래서 마리가 언젠가 자신의 가면을 벗고,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훌훌 날아가는 자유로운 나비가 되길 바랐죠.

 

이번 책을 통해 저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으셨을 텐데요. 그런 만큼 좋은 말씀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혹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북토크를 가서 만난 몇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몸이 안 좋아서 회사를 잠시 쉬고 있는데, 병실에서 제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신 분이 계셨고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라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고 이내 속이 어딘가 시원해진 기분이 들었다고 하신 분도 있으셨어요. 여행지에서 책을 읽었는데, 그 여행지가 마치 자신만의 소양리 북스키친이 된 것 같아 행복했다는 분도 계셨지요. 북토크에서 독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누군가가 휴가로 간 바닷가에서, 사무실에서, 조용한 카페에서 <책들의 부엌>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북토크를 통해 직접 뵙고 책이 각자의 삶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들어보니 그제야 책이 출간된 게 실감도 나고 행복한 느낌도 들었어요.

 

한 작품을 끝까지 써내는 일은 시작할 땐 즐거웠더라도 끝을 낼 때는 지치고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결까지의 중간의 서사들, 그리고 주인공과 인물들의 성장을 설득력 있게 써내는 일 또한 쉽지 않을 것 같고요. 끝까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작가님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었나요?

초고는 저 혼자 아주 신이 나서 썼어요. 가상의 공간을 떠올리고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로 연결하는 일이 진심으로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신나게 쓰고 나서 퇴고할 단계가 되자 막막해졌어요. 당연히 퇴고도 처음이었으니까요. 퇴고에 대한 작문법 책을 찾아서 읽어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저와 저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오랜 친구를 만나서 얘기하다가 제가 소설을 썼다는 얘길 쭈뼛쭈뼛 꺼냈죠. 그 친구는 당장 글을 보여달라고 졸랐고, 그 후로 몇 달간 제 글을 리뷰해주었어요. 별거 아닌 문장에도 엄청난 칭찬을 아끼지 않아서, 그 친구의 피드백을 받으면 저절로 신이 나서 퇴고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모호하고 산만하던 부분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 그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기도 했으니까요. 오랜 친구의 다정하고 따스한 피드백이 <책들의 부엌>을 끝까지 쓸 수 있게 만든 에너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책들의 부엌>은 작가님께서 지금껏 많은 책을 읽어오셨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던 소설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위로받고 싶을 때, 오가와 이토와 메이브 빈치, 조조 모예스, 이도우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었어요. 구체적으론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 <반짝반짝 공화국>, <달팽이 식당>, <인생은 불확실한 일 뿐이어서> <양식당 오가와> 같이 소설과 에세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읽었고요. 메이브 빈치의 <그 겨울의 일주일>, 조조 모예스의 <더라스트레터>, <원 플러스 원> 등도 위로가 되었어요. 이도우 작가님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과 에세이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를 다시 읽기도 하고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환야>, <분신>, <편지>, <녹나무의 파수꾼>처럼 두꺼운 추리소설과 드라마를 쌓아놓고 정신없이 빠져들기도 했어요. 더불어 <빨강머리 앤>을 빼놓을 수 없죠. 사실 위의 책들이 <책들의 부엌>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으신 장르 혹은 소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트콤을 닮은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이케이도 준의 작품처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면서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회사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며 고민 중이에요.

 

첫 작품의 성공이 작가님께 부담도, 앞으로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는 원동력도 될 것 같습니다. 김지혜 작가님께서 갖고 계신 삶의 철학과 더불어 앞으로의 꿈에 대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말자’는 것이 저의 가치관이에요. 세상의 평가와 기대에 너무 민감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굳이 한계를 지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봐요. 저는 앞으로 진심을 다해 꾸준히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첫 소설이 반짝 흥행했던 사람으로 남기보다, 마흔에 글을 쓰기 시작해 평생 글쓰기에 진심이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거든요. <책들의 부엌>을 읽고 마음에 위로를 받고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는 독자를 만날 때마다 저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행복했어요. 소설의 문장이 완벽할 리 없겠지만, 어딘가 누군가에게 저의 마음이 오롯이 가닿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습니다. 소설이라는 행성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마음을 전하는 일을 평생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들의 부엌>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저의 30대는 기다림의 시간이었어요.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실패하고 좌절한 순간이 참 많았죠. 그런데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낙담과 불안의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 저의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키워주었는지, 그 과정이 쌓여서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어졌는지 하는 것들을요. 누군가 상실감과 좌절감, 허무함과 낙담의 자리에 있다면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런 감정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는 것처럼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거라고요. 언젠가 바람도, 비도, 눈도 그치고 당신만의 햇살이 내리쬘 거라고요.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던 거기에, 다른 오솔길이 시작되고 있을 거라고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새로운 시작이 있을 거라고요. 열한 살 빨강머리 앤이 그랬던 것처럼, 막막한 기다림의 시간에도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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