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의학에 깊은 공감과 이야기가 있기를
미래의 의학에 깊은 공감과 이야기가 있기를
  • 박소연 기자
  • 승인 2022.01.03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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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김준혁 교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김준혁 교수 ⓒ박소연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김준혁 교수 ⓒ박소연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흔히 의료윤리 문제는 의료인에 대한 규제 논의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안락사와 존엄사는 어떻게 다른지, 한국에서 임신중절은 어떤 맥락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의료 개인정보는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의료윤리가 결코 의료현장에 있는 의료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의료윤리의 목적은 환자와 의료인 모두가 행복한 의학을 만드는 것이다. 환자, 보호자, 사회, 의료인 모두가 의료가 무엇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의료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 서로의 충돌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지 알 때, 의료와 행복은 비로소 연결될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치의학교육을 담당하는 치의학교육학교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은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의 교육적 측면을 지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2019년 설립되었다. 오랫동안 치의학교육에 참여해 온 구강생물학교실의 서정택 교수가 주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김준혁 교수가 전임으로 소속되어 있다. 치과대학은 타 학과는 물론 의과대학과도 다르게 치과대학생이 직접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부분이 교육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의 경우 치과 전문의를 교육 전담교수로 초빙해 학생들의 진료와 생활을 지도하고 있으며, 치의학교육학교실은 이들 교육 전담교수를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교실은 최근 의학교육의 변화를 검토하고 수용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의료윤리·의료인문학 전공자이니만큼, 김 교수는 의료윤리와 의료인문학을 통한 학생 교육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의과대학의 교육은 크게 기초의학, 임상의학, 의료인문학으로 구분된다. 이중 김 교수가 중점을 두고 있는 의료인문학 교육은 직접 환자와 대면하고,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교육으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학생들은 의료윤리, 커뮤니케이션, 의학사, 의료정책, 경영 등을 통해 환자·사회·제도와의 연관 관계를 알고 각 주체와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치의학교육학교실의 김 교수는 치과대학 환경에서 학생들이 이런 부분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교육과정의 작은 변화들을 통해 졸업 시점에서 학생의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의료인문학적 접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공감하는 의학을 위해 이야기를 읽는다

의료인문학은 인문의학, 사회의학, 의인문학, 인문사회의학, 보건인문학 등 국가 또는 학교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인문학과 의료·의학이 상호작용하는 분야를 다루는 학문을 가리킨다. 전문의로서 환자를 진료하며 따라오는 물음들에 고민하던 김준혁 교수는 운명처럼 의료인문학과 만났고, 이후 의료윤리, 서사의학, 의철학, 치의학사 분야의 연구와 교육에 몸담게 되었다. 최근의 주요 연구 분야는 의료윤리와 서사의학이다.

의료윤리에는 여러 내용이 있지만, 김 교수가 특히 관심을 두고 있는 영역은 의료정의론이다. 의료정의론은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으나, 간단히 의료 자원 분배의 문제, 차별과 지위의 문제를 다루는 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자원 분배 문제는 국내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차별과 지위 문제는 외국에서도 이제 막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서사의학 또한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분야이다. 서사의학은 문학이나 영화 등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훈련을 받은 의료인이 진료 환경에서 민감함을 향상, 진료의 맥락과 환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 정확도와 신속성을 높이고, 의료인이 그에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또한, 서사의학은 의학을 비평의 관점에서 접근, 의학의 판단과 결정을 의료적 위계와 문화를 담론적 차원에서 문제시하고 이를 환자 및 사회와 연결하려는 분야이다. 분야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서사의학이란 무엇인가가 번역·출간되는 등의 성과들을 거쳐 최근에는 질환에 관한 관점의 변화로 환자의 이야기가 출판계에 주목을 받으며 서사와 의학의 교점에 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알려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서사의학 공부를 시작했기에 분야를 명확히 파악하는 일이 먼저였습니다. 서사의학 분야를 시작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를 방문해 해당 분야의 교수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조금씩 분야를 정의 내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실천 방법 등을 알게 되었어요. 서사의학은 의료인과 환자의 변화를 꿈꾸는 분야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 통로로 이야기, 소설과 시, 영화와 그림 등을 택한 것이고요.”

소설 읽기를 공부하고 생각을 나누며 길러지는 역량은 환자를 볼 때 필요한 역량과 일치한다. 의료인은 환자의 언어적·비언어적 표현과 함께 그가 말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알아야 하며, 주변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해 환자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이 책을 세밀하게 읽는 독자에게 벌어지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사의학은 책 읽기와 글쓰기 훈련이 진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김 교수 본인이 소설이나 영화를 함께 읽고 보며 생각을 나누었던 과정들이 현실의 의료적 상황에서 세밀하고 날카로운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기에 학생들이 이야기를 통해 읽어내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워 의학과 의료에 적합한 역량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제 막 자리를 구축하고 있는 서사의학은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던 청년 치과 전문의 시절부터 서사의학을 알리려 했던 노력이 신문 칼럼 연재와 책 출간이라는 성과들을 만들었듯이 앞으로도 그는 서사의학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더불어 서사의학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문학이나 영화 전공자, 예술인 등이 협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연명의료 중단,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의 헌법 불합치 결정부터 가습기 살균제 사건,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 사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건강세, 의사 파업 사태까지 2000년대 들어 발생한 보건의료 사건들은 사회, 경제,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더는 의료문제를 전문가에게만 떠넘길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 모두 건강과 질환, 더 나아가 치료와 의료제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긴박한 의료현장에서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을 때, 그저 관습적으로 결정하거나 과학, 경제의 논리만을 따라서는 모두가 불행해진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인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살피고 각 의료적 쟁점의 역사적 맥락을 검토한 뒤 내리는 인간의 건강과 삶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 그것을 최선의 결정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 방법이 바로 의료윤리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아팠고, 지금 고통받고 있거나 언젠가 아플 수 있다. 다시 말해, 의료윤리는 우리 모두에 대한,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다. 김준혁 교수가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라는 책을 출간한 이유도 돌봄과 치료가 우리 모두에게 닥쳐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202110월에 출간된 이 책은 연명의료, 임신중절, 치매돌봄 등 우리의 건강과 삶에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부터 유전자 조작, 건강세, 의료 개인정보처럼 외국에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 주제까지 살핀다. 의료적 쟁점들이 지닌 역사적·과학적·철학적·경제적 배경을 우리나라의 맥락에서 살피고, 그에 적용되는 이론을 검토하는 한편 실제 사례와 영화, 소설, 드라마 등에서 이야기를 빌려와 각 이슈를 둘러싼 이들의 입장을 살펴봄으로써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이론적 논의를 친숙하게 다루고 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의료윤리는 아직 분명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의료윤리 제도가 법과 많이 얽혀 있다는 점이 난관으로 작용한다. 개인의 자율적인 행동보다는 법의 강제를 우선하는 사회적, 역사적 여건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의료법과 의료윤리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당장 큰 쟁점들만 해도 생명윤리법, 연명의료결정법과 같은 법 조항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규율하는가가 담론의 중심을 차지하는 반면, 개인의 자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료윤리는 별로 논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법은 잘못된 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윤리가 중심이 되어 자기 역할을 하는 환자와 의료인의 만남이나 의료 환경 속 개인의 역할에 관한 논의와는 거리가 있다. 윤리와 법은 별개의 분야라는 점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의견이다.

법은 테두리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의료인과 환자, 사회가 어떻게 움직여야 모두에게 좋고 옳은 일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윤리의 영역입니다. 최근 코로나19라는 큰 배경 안에서 의사 파업 사태, 백신 거부 등 쟁점이 등장, 우리나라에도 의료법을 넘어 의료윤리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문제에서 사회와 학계가 함께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데 공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픈 자와 돌보는 자, 그들과 관계를 맺고 치료하는 자, 각자의 상황과 의료적 맥락을 살핀 후 모두를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의료윤리다. 내 가족의 일을, 내 진료를, 우리 지역사회의 일을 외부의 초연한 관찰자가 결정 내릴 때, 사람들은 그 결정의 차가움에 절망하게 된다. 현대 의학을 좌우한 과학과 체계의 무딘 날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받아 왔다면, 이제 결정의 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윤리적 방향으로의 결론을 맺도록 이끄는 의료윤리학자로서 김 교수는 모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모두를 위한 선택을 돕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김준혁 교수 ⓒ박소연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학교실 김준혁 교수 ⓒ박소연 기자 / 사진 박성래 기자

대한민국 의료가 바로 설 수 있기를

대한민국은 의료의 하향식 접근을 오랫동안 유지해온 국가로, 국가의 정책 결정이나 방향이 국민의 보건의료 이용과 대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준혁 교수는 국가의 정책 결정이 자원 이용의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춰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지적해 왔다. 보건복지부가 경제학적 관점으로만 보건의료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꼭 단점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갈등은 효율성만을 금과옥조로 삼아 내린 결정이 쌓여 나타난 현상이라고 경고한 것. 그리고 이러한 우려처럼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의료진의 대우나 자원 활용, 백신 이상 반응 관리 문제 등 여러 사례로 문제가 터져 나왔죠.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가 문제가 되었고, 제 주변 의사들도 많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요. 위드 코로나 한 달 만에 중증 환자 여력은 바닥났죠. 효율성만 보면 인적 자원은 최대한 착취하고, 평시에 필요 없는 시설은 안 만드는 게 맞거든요. 그 결과, 우리는 거리두기 정책을 철회해야 했습니다. 백신의 경우 국가가 백신 접종을 강제한 것은 아니지만, 여러 상황으로 국민들은 접종을 의무로 받아들였어요. 그러나 백신 접종 후 발생한 문제에 대해 국가가 전혀 책임지지 않으려 한 건 문제죠. 인센티브, 백신 패스 등을 통해 백신 접종을 어느 정도 의무로 인식하게 했다면 그 결과를 당연히 책임져야 합니다. 백신 접종 후 문제가 생겼다면 그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다 해도 치료비를 보장하고, 사망자 예우를 확립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부스터샷 접종을 꺼리게 된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라요.”

더 많은 사람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자 했던 지금까지의 국가 보건의료 시책의 방향성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건의료는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시민의 가치와 참여, 의료인의 지적과 논의 등에 관심 가져주기를, 국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바로 선 의료 분야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하는 김 교수. 지금까지처럼 그는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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