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의 도입을 저해하는 신의료기술평가 단상
신의료기술의 도입을 저해하는 신의료기술평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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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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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하우스피부과의원 배정민 원장(전 가톨릭의대 피부과 교수)

 

힐하우스피부과의원 배정민 원장

백반증은 전체 인구의 1%에서 발생하는 흔한 자가면역 피부질환이다. 전신 자외선 치료와 엑시머레이저 등으로 치료를 시작하지만, 치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 수술적 치료가 대안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미세펀치이식술과 흡입물집이식술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널리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적 표준수술법인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이 신의료기술평가에 좌절되어 국내에서 시술될 방도가 없어 안타깝다.

신의료기술평가는 2007년 도입된 제도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검증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사용되어지는 것을 막고 국민 건강권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임상적 유용성을 체계적 문헌고찰 방식으로 평가한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2009년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에 대해 "안전성에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나, 피부이식과의 비교연구가 없으며, 비교군이 동질하지 않고 연구결과의 일관성이 없는 배양 자가 표피세포 이식술과의 비교연구와 증례연구만으로 동 시술의 유효성을 입증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므로 국내 경험과 잘 설계된 연구결과가 축적된 이후에 도입되어야 할 의료기술"로 도입을 부결하였다. 이 심의결과에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체계적 문헌고찰로는 신의료기술을 평가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은 증례 보고(case report), 환자군 보고(case series), 후향적 연구(retrospective study), 임상연구(clinical trial)의 단계로 학계에 보고된다. 각 단계에서 충분한 임상 데이터가 축적되는데 수년이 소요되며, 데이터 분석, 원고 작성 후 치열한 동료검토(peer review) 과정을 거쳐 한 편의 논문으로 출간되는데까지 1년 이상의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 마지막 단계인 임상연구 결과가 둘 이상일 때 그 결과를 하나로 합성하는 것이 체계적 문헌고찰과 메타분석이다. 즉, 체계적 문헌고찰은 10년 이상 시행되어 복수의 임상연구 결과가 있는 기술의 효과를 종합하는 것이지, 새로운 의료기술을 평가하는 도구가 될 수 없다.

둘째, 수술법은 비교연구가 어렵다. 새로운 수술법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기존의 열등한 수술 방식을 임의의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수술법의 유효성은 그 수술의 결과로서 증명을 해야지, 비교연구가 부족하고 비교군이 동질하지 않은 것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더욱이 위원회가 언급한 피부이식은 백반증의 치료법이 아니다. 피부이식으로 백반증을 치료하는 의사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셋째,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한 수술법에 대해 국내에서 경험을 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료기기라면 허가를 통해 이익을 볼 수 있는 업체가 임상연구를 지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새로운 수술 기술은 모든 부담을 의사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수술에 수반되는 재료대와 인건비 등의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경우에 따라 식약처와 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국내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지적을 했다면 그 기회라도 제공했어야 한다.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은 2009년 신의료기술평가에서 부결된 이후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2015년 기관 연구윤리심의위원회로부터 연구목적으로 승인을 받아 백반증을 위한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을 국내 도입하여 시행해왔다. 현재까지 46례의 국내 경험을 쌓았고, 그 사이 동 기술은 백반증의 표준수술법으로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필자는 신의료기술 인정을 위해 심평원, 식약처, 보건의료연구원 등 여러 기관을 전전했지만 서로 다른 기관의 승인을 먼저 요구할 뿐 수년 째 답보 상태다. 이런 대응은 의사들을 몹시 지치게 만든다.

일선에서 환자를 맞는 의사들은 새로운 기술로 내 환자들을 더 잘 치료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제도는 반대로 작동한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왜 오롯이 의사들의 책임이어야 하는가. 정부는 뒷짐진 채 의사들이 준비해 오는것을 판정만 하면되는 것일까.

의료기술은 완벽하지 않으며 치료법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새로운 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의사들을 좌절시키는 족쇄로 작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백반증을 위한 비배양 표피세포이식술이 대한민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할 것인가? 이 현실을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오늘도 필자의 앞에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한 수술이 필요한 백반증 환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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