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Now] 코로나 시대 자연이 주는 선물 찾기
[Monthly Now] 코로나 시대 자연이 주는 선물 찾기
  • 김윤혜 기자
  • 승인 2020.09.0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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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8월 중순 이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퍼지고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상승하였다. 신체는 물론 마음까지도 움츠리게 한다. 사회생활의 동력은 떨어졌다. 경제적 어려움마저 늘어나 정신적 피로도가 높아졌다.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이나 상황은 피해야만 했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니 일상 루틴에 변화가 생겼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우울증 · 피로감이 우리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탓이다. 어려운 시절은 항상 있었다. 잠시 기다리면 곧 예전 일상으로 회귀하게 되리라는 기대는 그러나 쉽지 않은 것이 되었다. 해외여행은 전혀 생각할 수 없고 국내 원거리 여행도 어려운 실정이다. 재택근무, 비대면 권고하에서 행동반경이 어쩔 수 없이 좁아지는 요즘, 근교 산행이 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차선의 대안이 된 것이다. 코로나 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깨닫게 되고 자연(自然)에 관한 관심이 더욱 높아 간다. 8월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이전, 중부권에서 가까운 계룡산 신원사를 찾았다.

 

충청남도 대표 명승 계룡산

한국 지형의 칠십 퍼센트는 산이다. 대도시를 벗어나 하루 동안 다녀올 수 있는 산 중 충청권에 계룡산이 있다. 공주, 대전, 계룡, 논산의 4개 도시와 접해 있는 충청남도 으뜸 명산이다. 계룡산[鷄龍山]의 이름에는 닭과 용이 언급되어 있다. 언뜻 듣기에 조합이 생소한 두 동물이 이름에 들어있다. 산 능선의 형상이 닭 볏을 쓰고 있는 용의 모습과 닮은 점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바람과 물과 땅의 이치를 설파하는 풍수지리에서는 산의 능선을 용에 비유하는 것이 많다. 계룡산 산줄기의 모양이 회룡고조(回龍顧祖: 용이 휘돌다가 머리를 돌려 처음을 돌아보는 형국)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계룡산의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통일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을 대사중사소사로 나누고 중사 오악에 서악 계룡산을 지정했다고 한다. 오악[五嶽]이란 중국에서 건너온 오행사상에 연원한 것으로 오대 명산을 말한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당시 도읍을 정할 때 계룡산 근처 신도안이 유력 후보지였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로 도성을 쌓다 중단했던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계룡산에는 갑사 · 동학사 · 마곡사 · 신원사 등 유명 사찰들이 자리해 있다. 무속신앙에서는 계룡산을 우리나라 최고 기도 명산으로 꼽는다. 계룡산 근처에서 곳곳에 기도처 · 기도 도량 · 영성 수련원 등이 있음을 알리는 안내 푯말을 볼 수 있다.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中嶽壇)은 조선 태조 3(1394) 이성계의 명으로 무학대사가 지었다. 그 이후 왕실의 기도처로 내려왔으며 한국 제일의 산신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계룡산 산책로 [사진=월간인물]
계룡산 산책로 [사진=월간인물]

 

신원사(新元寺) 소개

신원사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8번지(신원사동 길 1)에 있다. 대중교통인 버스를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험한 산세를 힘들게 오르지 않아도 정류장에서 십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충청남도 지역의 불교 관련 문화재 중 약 40%가 공주에 위치한다. 충청남도 지역의 불교 유산 중 절반이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다. 백제의 도읍이었던 웅진(공주)과 사비(부여)가 지리적 요충지였던 까닭에 불교 문화가 공주 · 부여 등을 중심으로 융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세기 후반 한반도에 전래한 불교는 고대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372년 소수림왕 때 중국 전진으로부터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한 이래 백제도 384년 침류왕 때 불교를 받아들였다. 신원사는 백제 의자왕 11(651) 고구려 승려인 보덕화상(普德和尙)이 창건했다. 보덕화상은 고구려 말 보장왕(643)의 국사(國師)였다. 당시 정치적 부패상을 보장왕에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백제로 망명하였다. 보덕화상은 불가사의한 기가 서려 있다하여 현재의 신원사 자리에 사찰을 지었다. 신라 말기 도선국사(827~898) 이 법당만 남아있던 절을 중창(重創:낡은 건물을 고쳐 다시 지음)하였다. 효종 2년인 1651년에 폐사되었다가 1879(고종 16) 명성황후의 서원으로 재건되었다. 주요 건축물은 대웅전(지방문화재 제80)과 중악단(보물 제1293),국제선원이 있다. 국보 제299호인 노사나불화 · 지방문화재 제31호인 5층석탑 · 후불탱화 등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다.

지금부터 천 삼백칠 십여 년 전 보덕화상은 신원사를 세우고 열반경을 강설했다.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를 소리로 번역한 것이다. 니르바나는 ‘nir(없어진)vaa(불다)’가 합성된 과거분사로 불어서 없어진’, ‘불어서 꺼진이란 뜻이다. 석가모니는 열반이란 갈애의 소멸로 설파했다. 갈애(渴愛)란 목마른 사람이 물을 구하듯 범부가 오욕을 탐하는 것을 의미한다. 열반은 번뇌가 소멸된 상태 또는 완성된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열반은 바로 모든 중생적인 번뇌 · 망상이 사라진 적멸(寂滅)의 상태를 말한다. 수행으로 고뇌의 중생 세계를 마음 안의 정토[淨土]로 바꾸자는 가르침이다.

 

신원사 전경 [사진=월간인물]
신원사 전경 [사진=월간인물]

물과 바람과 숲이 주는 위로

코로나19로 방문객이 뜸한 산사는 경내가 고요했다. 명성황후는 직접 중악단에서 기도하여 순종을 회임하였다고 한다. 신원사는 189510월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추모 천도재를 매해 올리고 있다.

어느 절이나 대웅전은 존재하지만, 산신각인 중악단이 존재하는 곳은 신원사가 유일하다. 중악단에 들어가려면 대 문간채와 중 문간채 두 대문을 지나야 하는 데 그 양쪽으로 스님이 거처하는 방이 있다. 중악단 건물 출입 가능 여부를 알 수 없어 망설이던 차 우측 방문이 열리고 노스님 한 분이 나오셨다. 스님께 여쭈니 출입 가능하다는 답을 하셨다. 신원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몇 가지 여쭈니 친절한 답변을 주신다. 스님이 묵고 계시는 방은 대한제국 때 명성황후께서 신원사에 오시면 기거하신 방이라는 설명도 곁들이셨다. 중악단 경내에서는 묵언이 원칙이므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중악단 건물 바로 뒤 비스듬히 병풍처럼 둘러 높이 솟아있는 소나무들은 기도처를 감싸는 듯 위풍당당 둘러서 있다. 평일 오후 인적 드문 산사의 적막과 침묵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차분해졌다. 중악단 내에는 기도 중인 네 사람이 조용히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천정에 달린 수많은 진분홍 연등에는 소원 성취를 염원하는 이들의 이름을 적은 작은 종이들이 질서정연하게 가득 들어차 있었다. 좌우로 열어 놓은 문들을 통해 잔잔한 바람도 함께 드나들었다. 신원사 일주문 앞에 널찍한 돌다리가 있다. 계룡산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이 바위틈 사이로 낮게 흐른다. 물과 바람과 숲. 산에 가면 산을 지키는 산신의 호흡일 것만 같은 시원한 바람이 있다.

석가모니는 열반을 통해 생로병사와 번뇌에 시달리는 만 중생을 구하려 했다. 불어서 꺼뜨려야 할 번뇌라면 생각을 잠시라도 멈춰야 한다. 마음에 여백을 내는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후 각자 상황에 따라 조금씩 내려놓아야 하는 부분이 생겼다. 이전 시간에는 당연했던 만남, 수다, 축제, 여행, 함께 어울리는 일, 소소한 일상이 이제는 귀하고 소중한 추억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눈을 돌려 보자. 복잡함을 덜어낸 마음 공간에 자연의 호흡을 불어 넣자. 흙냄새 맡으며 걷는 길은 자연이 이끄는 길이다. 자연이 주는 보너스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즐거움이다. 걷자. 몸을 움직이며 활력을 회복하자. 비워 낸 마음 여백에 자연이 주는 선물을 채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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