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을 보고 제주를 듣다”
“오름을 보고 제주를 듣다”
  • 박금현 기자
  • 승인 2021.06.03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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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제주스토리 이봉섭 대표

35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떠난 제주 한 달 살기. 한 달의 제주 살기에서 이봉섭 대표는 제주의 자연, 그중에서도 오름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는 곧 자신이 사랑하게 된 제주의 오름을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더제주스토리’가 탄생했다. 제주의 천혜자연은 제주의 자랑거리이지만,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일상 가까이에 자연을 두고 산 제주도민들은 오름에 대한 해설을 제공하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만이 가진 유일한 자연 자산은 제대로 알려져야 제대로 사랑받을 수 있고, 그 가치 또한 커진다. 이제 그는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제주를 찾은 사람들과 제주의 자연 한가운데서 시간을 보내며 제주를 알리고 있다.

더제주스토리 이봉섭 대표  ⓒ박금현 기자
더제주스토리 이봉섭 대표 ⓒ박금현 기자

 

운명처럼 찾아온 오름과 해설사
더제주스토리는 자연, 역사, 문화 등 제주 지역자원의 특성을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오름’을 통해 전달하는 곳이다. 이봉섭 대표는 은퇴 후 떠나온 제주에서 ‘용눈이 오름’을 다녀온 후 그곳에 반해 한 달의 체류를 1년으로 늘리고, 1년간 숨어있는 제주의 오름을 부지런히 다니기로 한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완전한 이주를 결심한다. 이후 우연한 기회로 제주대학교 평생대학원에서 오름 해설사 과정을 듣게 되면서 오름을 알아가는 것은 물론, 해설에도 매력을 느꼈다. 오름과 해설. 이 대표는 새롭게 좋아하게 된 이 두 가지를 결합해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를 알리기로 했다.
그즈음 운 좋게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한 초기 창업 공모전에 선발되었고, 3,000만 원의 사업 지원비를 받았다. 좋은 기회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업. 그러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도슨트를 양성하며 사업을 키워나가던 무렵, 코로나가 시작되며 제주를 찾는 발걸음이 뚝 끊긴 것. 절망적이었지만 늦은 나이에 용기를 낸 창업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청년뿐만 아니라 시니어 창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2020년 7월에 중소기업벤처부의 공모전에 선정되어 7,000만 원의 사업 지원금을 추가로 받았다. 덕분에 한 달 후 8월에 상품을 오픈했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고.
“은퇴 후에 1년간을 일거리 없이 선후배와 어울리며 지냈는데, 이 생활을 지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창업을 친구들은 굉장한 도전이라며 이야기하고, 한편으로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도전에는 여러 걸림돌이 있어요. 투자금이 필요하고, 실패의 위험이 존재하고, 가족의 반대도 있죠. 저 또한 아내가 처음에는 창업을 반대했지만, 이내 동의해주었어요.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조금 받아 제주로 내려왔어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고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어쨌든 지금 이곳 제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각자의 명확한 특징을 가진 오름의 매력을 느껴보기를
제주도에는 300개 이상의 오름이 있다. 이봉섭 대표는 더제주스토리만의 기준을 정하고, 여러 오름을 탐방하며 기준에 충족한 네 개의 오름을 엄선했다. 2년간 오름 해설사 과정을 공부하고, 오름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의 노력을 거쳤다. 어린이와 어르신 등 다양한 관광객을 고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관광객의 연령층이 다양하기 때문에 오름 등반이 힘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 분화구나 화산이 있어야 한다는 것,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을 고려했어요. 위치도 고려해 동쪽에서 2개, 서쪽에서 2개, 총 4개의 오름을 정했습니다. 동쪽의 다랑쉬오름과 따라비오름, 서쪽의 금오름과 왕이메오름이 주인공입니다. 먼저, 다랑쉬오름은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로 홍보될 만큼 멋진 오름이에요. 다랑쉬오름의 분화구는 한라산 분화구의 깊이와 같아 오름에 올라가면 백록담을 내려다보는 것만큼의 웅장함도 느낄 수 있는, 명실상부한 오름의 제왕입니다. 표선면에 있는 따라비오름은 억새로 유명해요. 제주에는 바다의 파도와 따라비오름의 억새 파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세 번의 화산폭발 후 용암이 지나간 곳에 따라 제각각으로 만들어진 분화구의 능선도 장관입니다.”
세 번째 주인공인 금오름은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오름으로, 젊은이들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이다. 이 오름의 특징은 많은 제주의 오름 중 단 9개에 불과한 분화구에 물이 고인 오름이라는 점. 금오름은 물과 분화구가 조화를 이루며, 분화구에 들어가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마지막은 제주 한라산 서쪽 자락에 있는 왕이메오름. 거대한 왕관처럼 생긴 전형적인 모습의 오름으로, 봄이면 이르게 피어나는 야생화로 꽃밭이 되는 곳이다. ‘왕이메’란 오름의 이름은 옛날 탐라국 삼신왕이 이곳에 와서 사흘 동안 기도를 올렸다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에 기가 강한 오름으로도 통한다. 또, 다른 오름은 햇빛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곳은 숲이 하늘을 막고 있어 걷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선정된 네 개의 오름을 고객의 문의에 따라 추천하고, 오름의 정보와 오름에 얽힌 이야기 등 복합적인 해설을 제공한다. 
“네 개의 오름을 다 다녀간 분들도 있습니다. 첫 방문에 동쪽의 두 개 오름을 다녀오고, 다음 방문에 서쪽의 오름 두 개를 다녀오는 식으로요. 두 번의 방문이면 네 개의 오름을 다녀올 수 있는 일정이어서, 추가 선정이 필요한 상황인데요. 늪이 특징인 서영아리오름과 물의 일부가 거꾸로 오르는 거슨새미오름이라는 두 개의 오름을 추가해 6개로 확장해 운영할 계획입니다.”

 

사람과 제주를 깊이 연결하는 것은 해설사의 몫
우리나라에는 3,000명 이상의 문화관광해설사가 있다. 제주도에는 200명 정도가 있고, 숲 해설 전문가도 따로 있다. 국가가 문화관광해설사와 숲 해설사에 자격증을 주고 있는데, 그 구조에는 아쉬움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정적인 일자리 제공이 어렵다는 점이다. 제주의 오름 중에 거문오름에만 유일하게 40명의 해설사가 있는데, 현재 해설은 무료로 제공되며 해설사들은 지자체에서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지자체의 지원금이 많지 않아, 대부분이 해설사 외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자연히 해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봉섭 대표의 생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입장이었을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해설이 해설 공부를 하고 나니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관광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도 크지 않은 것 같고요. 이들에게도 물론 고충이 있죠. 제주의 해설사들에게 통하는 말이 있어요. 해설 하다가 귤 따러 간다고요.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을 하는데, 한 달에 5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는 셈이에요. 당연히 생활을 위해 두 개, 세 개의 직업을 가지게 되고 해설의 질은 떨어지게 되죠.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전문성이 깊어지고, 해설의 질도 올라갈 거예요.”
유럽 각지를 다니며 음악, 미술, 건축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들었던 사람들이 현재 제주도에서 제공되는 해설 수준에는 불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에 이 대표는 우리나라에도 유료 해설사가 필요한 때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마땅히 제주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인다. ‘곶자왈’, ‘오름’ 등 제주에만 있는 유일한 자연 자산, 제주다운 관광지들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제주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도슨트를 양성하고, 해설을 유료화해 해설사들을 안정적인 형태로 고용한다면 질 높은, 차별화된 해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제주스토리는 해설의 질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더제주스토리를 찾은 관광객들은 스쳐 지나치기만 하던 제주의 역사, 문화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진짜 제주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매번 같은 해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해설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아 제주도는 삼다도로 불렸어요. 그러나 왜 제주도가 ‘삼다도’로 불렸는지 그 배경에 대해 아는 이는 많지 않아요. 섬 지역의 특성상 바다에 나갈 일이 많았고, 주로 뱃일을 하던 남편과 아들이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여 여자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전복을 해녀가 따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포작인이라고 해서 남자들이 따는 해산물이었어요. 그러나 탐관오리들이 자주 수탈을 했고, 포작인들에게 매질을 가하기도 했어요. 매질을 참다못한 남자들이 도망을 갔고, 여자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죠. 제주는 또 추사 김정희, 광해군, 독립 운동가였던 남강 이승훈 등이 유배를 왔던 지역이기도 해요. 이런 숨겨진 이야기들을 장소에 맞게, 상황에 맞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해설사들의 역할입니다.”

더제주스토리 이봉섭 대표  ⓒ박금현 기자
더제주스토리 이봉섭 대표 ⓒ박금현 기자

 

제주도 곳곳을 연결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할 것
카드회사에서 일한 덕분에 데이터에 대한 지식을 가진 것은 물론, 그 중요성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이봉섭 대표. 때문에 관광객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는 일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기존의 제주관광 관련 데이터들을 봤지만, 정량데이터 중심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수집 방법 또한 제주 공항에서 무작위로 어디서 묵는지, 얼마의 비용을 쓰는지를 묻거나 전화로 예, 아니오 방식의 답을 수집하는 식이에요. 저희는 오름을 함께 체험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만들고 있어요. 제주의 자연을 체험한 사람에게 얻는 데이터죠. 숙소, 렌터카, 비용 등의 기본적인 통계 자료에서 나아가 다음에도 자연을 체험할 의사가 있는지, 더 체험하고 싶은 제주의 자연은 무엇인지를 묻는 게 유의미한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하게 의미 있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다른 곳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이렇듯 회사는 단단한 성장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관광객들의 사진을 촬영해 인화해주기도 하고,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제공하기도 한다. 홈페이지 내 방문 관광객들의 리뷰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스마트 관광이 중요해진 만큼 이에 발맞춘 시스템도 연구하고 있다. 도슨트와 오름의 수를 늘려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A도슨트에게 B오름의 해설을 부탁할 수 있게 된다. 도슨트사관학교를 통해 전문화된 도슨트를 지속 양성하고, 회사의 지원 및 서비스의 체계적인 구축도 목표로 하고 있다.
“관광객 대부분이 한두 군데의 관광지만 정하고 나머지는 제주에 와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주에는 400여 개의 관광지가 있어요. 그러나 자연을 소재로 한 관광지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거든요. 제주 자연관광을 많이 알리기 위해서 저희와 같은 웰니스 상품으로 서비스하는 기업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또 유관기관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우리가 미쳐보지 못했던 국내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에 제주도도 재조명되고 있다. 제주도는 우리가 익숙했지만 미쳐 알지 못했던, 그 이상의 아름다운 스토리가 있다. 이번 여행은 더제주스토리의 오름 도슨트와 함께 제주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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