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총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 패션계의 거장, 한복 재해석 하다
샤넬 총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 패션계의 거장, 한복 재해석 하다
  • 남윤실
  • 승인 2015.06.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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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넬 총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제공=샤넬>
| 샤넬 총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사진제공=샤넬>

 

“이번 패션쇼는 한국 버전으로 진화한 샤넬”

색동과 조각보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패치워크, 한복의 실루엣을 반영한 둥근 어깨선과 스커트, 가채를 응용한 헤어 장식까지 샤넬의 크루즈 컬렉션은 한국의 전통미를 고스란히 반영한 의상들로 가득했다. “왜 한국, 왜 서울을 택했느냐”고 물음에 라거펠트는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중국·일본에 대해선 다 알지만 한국에 대해선 많이 모른다. 그래서 이거다 싶었다.” 새로운 영감과 소재를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한국이 신선한 영감이 됐다는 얘기다. 그는 “한 지역의 패션을 세계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한국적 요소가 “동양의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라거펠트는 방대한 한국 관련 자료를 공부했다. 

  

크루즈 컬렉션은 패션쇼가 개최되는 국가와 도시에서 영감을 받은 문화코드가 주로 반영되는 만큼 과연 한국적 영감이 샤넬에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 귀추가 주목됐다.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의 문화를 디자인의 영감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국내 디자이너들 조차도 한국적 영감을 활용하기를 어려워했기에, 라거펠트의 서울 크루즈 컬렉션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샤넬 크루즈 컬렉션은 샤넬의 정체성과 한국의 전통의상이 섬세하게 조화를 이룬 쇼였다. 소매가 넓고 어깨 부분이 둥근 형태 재킷을 디자인했다. 원래 한복이 가지고 있는 플랫 칼라, 접힘 칼라를 감쪽같이 숨겨, 목선을 훤히 드러내게 하며 새로운 룩을 표현했다. 바지는 통이 넓으면서 짧게 재단하거나 단 부분을 타이트하게 만들었다. 스커트는 펜슬 형이나 일자형으로 길이는 무릎 바로 밑까지 오도록 했다. 이브닝드레스는 하이 웨이스트 라인으로 가벼우면서도 볼륨감 있게 표현했다. 어깨 끈 없는 드레스는 벨벳이나 그로스그레인 장식을 넓게 둘러 포인트를 줘 이브닝 웨어를 새롭게 나타냈다. 

 

라거펠트는 “이번 패션쇼는 한국 버전으로 진화한 샤넬”이라고 했다. 그는 의상의 군데군데에 한국 전통 요소를 조화시키면서 첨단기술 국가인 한국의 현대적 이미지도 패션쇼에 녹여냈다. 샤넬이란 브랜드를 상징하는 꽃 ‘카멜리아(Camellia)’를 새로운 기술·소재로 만들어 “더 현대적으로 보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카멜리아는 고무의 일종인 신소재 ‘네오프렌’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이번 패션쇼에 대한 의견은 갈렸다. 샤넬은 한복을 해체하고 조립하여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한국 고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단순 접목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어색하다.” “촌스럽다.” “한복에 대한 이해가 얕다.” 등의 혹평이 있는 반면 “한국적인 것을 샤넬스럽게 매우 잘 풀어냈다.”는 극찬의 의견도 많았다. ‘스티브J&요니P’의 디자이너 요니P는 “샤넬 정통쇼를 선보일 줄 알았는데, 한국적 요소로 풀어낸 옷들이 너무 많아 굉장히 놀랐다”면서 “샤넬만의 캐릭터와 특징에 한복의 요소들을 잘 반영한 걸 보면 리서치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 디자이너와는 다른 시각에서 한복을 해석하고, 라거펠트의 그 해석이 전 세계적으로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매우 감동적인 쇼였다”고 덧붙였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하이패션의 모티브로 사용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서구 중심의 세계패션 시장에 그것도 하이패션을 대표하는 샤넬이 한국적 모티브를 적극 반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패션의 요소를 활용하여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는데 필요한 것은 패션에 대한 열정이다. 90년대 식으로 말하자면 이 요소들은 음악에서 작곡을 하는데 필요한 노트와도 같은데, 중요한 것은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소명은 샤넬에 새로운 시각적 사운드를 부여하냐는 것이다" 라는 그의 말처럼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하는 단계를 거치며 샤넬의 클래식함과 트렌드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나이와 세대를 초월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지금의 샤넬을 만들지 않았을까. 

  

  

"패션은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다"

여성들이 열광하는 '샤넬(Chanel)'을 만드는 남자,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t). 일흔이 넘은 노장이 만드는 패션왕국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933년, 독일인으로 태어나 1952년 프랑스로 이주한 라거펠트는, 1954년 개최된 “국제양모사무국(IWS) 콘테스트”에서 코트부문 1위를 차지하며 패션계에 입문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파리 쿠튀르로 대변되는 패션계의 보수적이고 기성적인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디자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 찰스주르당 이외에도 자신의 디자인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였다. 

  

패션계에서 그의 독창성은 1970년대부터 빛을 발하게 된다. 끌로에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또 펜디의 브랜드 개혁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기성복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혹자들의 평을 뒤로 한 채, 변화와 혁신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업적들을 이루어 나간다. 이후, 점차 파리 쿠튀르의 위상이 낮아지게 되었고, 그 중심에 있던 브랜드 “샤넬” 은 트렌드의 재빠른 도입과 독창적이고 젊은 감각에 일가견이 있던 라거펠트를 정식으로 영입하게 된다.

  

샤넬과 그가 만나 이루어낸 수많은 업적들에 대해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아하고 고혹적인 스타일로 대변되던 샤넬의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게 되고 트위드 재킷, 블랙 미니 드레스, 클래식 트윈 세트, 퀼팅백, 이브닝 드레스, 로고를 활용한 모노그램 디자인 등 현재 샤넬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된 패션 아이템들이 순차적으로 탄생하게 된다. 동시에 주 고객층의 연령대가 다소 높은 편이었던 이전에 비해, 트렌디하고 자유로운 젊은 층의 기대와 수요를 충족시키게 된다. 이후 샤넬은 브랜드 고유의 특성과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감각을 적절히 조화시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존재로서 다시 한번 입지를 견고히 하게 되었다.

  

칼 라거펠트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라거펠트는 다른 디자이너와 달리 종종 많은 직업을 보유한 사람 중 한 명으로 언급되는데, 이 당시부터 본업인 패션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예술관련 잡지나 전기, 역사책들을 읽으며 디자인을 구상하고 신문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샤넬 홍보에 필요한 글과 사진도 직접 쓰고 만든다. 그의 집 서재에는 20만권이 넘는 책들로 둘러 싸여 있다. 게다가 2000년부터는 샤넬의 사진 및 다양한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한 출판인이자 전시 기획자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과 'Edition 7L'라는 이름의 출판사와 서점을 설립해 출판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포토그래퍼, 필름디렉터, 화가, 작가와 같은 부차적인 일에도 열정을 다했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유로움” 을 중요시 하였다. “전통과 역사” 와 같은 보수적 개념들을 배제하고, 디자인 자체로의 독창성과 실용성을 최대한 우선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패션” 을 사치가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그 가치를 향상시켰다. 하이 패션과 스트릿 패션을 서로 경계하지 않고 조화롭게 혼용하였으며 건축, 미술, 영화와 같은 타 영역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여전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샤넬의 아이콘에서 패션계의 아이콘, 이제는 예술계의 아이콘이 된 라거펠트, “내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는 분명,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희대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것에도 마지막이라는 말 대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라거펠트. 그는 모든 파티와 오프닝 행사에 하나로 곱게 묶은 은발의 머리와 두 눈을 가린 검은 선글라스, 목까지 올라오는 화이트 하이넥 셔츠, 단정해 보이는 수트와 손에 낀 가죽장갑 그리고 열 손가락 빼놓지 않는 실버 액세서리가 그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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