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면 그 안에 ‘창조’가 있습니다”
김근수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생각의 방향을 전환하면 그 안에 ‘창조’가 있습니다”
  • 안수정
  • 승인 2016.08.1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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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라면 항상 생각의 문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A를 A로만 바라보는 것은 현재 주어진 상황만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A의 이면에 있는 원리를 바라보며 이를 개념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마주하게 됩니다.” 머리에 물음표를 새기고 사는 것이 과학자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김근수 교수. 이 때문일까. 그의 기초연구는 지난 수년간 그래핀 전자소자의 상용화를 방해하던 핵심난제를 규명하면서 희망의 싹을 틔웠고, 2차원 반도체물질연구의 중심이 그래핀에서 포스포린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근수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저차원전자계연구단 학연교수 <사진제공=김근수 교수>

포스포린의 반도체 성질 제어 및 그래핀 수준의 전도성 규명

독특한 물성과 다양한 소자로의 응용가능성으로 인해 원자 한 겹 두께의 2차원 물질에 대한 연구는 지난 10년간 응집물질물리학 및 재료과학 분야에서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받아왔다. 특히 2차원 물질을 기반으로 한 초소형 반도체 소자 실현을 위한 난제 가운데 하나가 2차원 물질의 고유한 전자물성을 자유자제로 제어하는 기술이다. 밴드갭(Band-gap)은 물질 고유의 물리량으로 0에 가까우면 전류가 쉽게 흘러 도체가 되며, 값이 클수록 전류가 쉽게 흐르지 않아 절연체가 된다. 즉 밴드갭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면, 물질의 전기적 성질을 도체에서 부도체에 이르기까지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철보다 강하고, 구리보다 전류가 잘 흐르는 뛰어난 물성으로 ‘꿈의 신소재’로 각광 받은 그래핀 연구가 상용화 수준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밴드갭이 존재하지 않는 그래핀의 금속성 탓에 전기적 신호에 의해 전류의 흐름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김근수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기초과학연구원 원자제어저차원전자계연구단 학연교수(이하 김근수 교수) 연구팀은 인(P) 원자로 이루어진 새로운 2차원 반도체물질 ‘포스포린(Phosphorene)’의 전류흐름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8월 14일 세계최고권위를 가진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IF 33.611)지에 게재되면서 우수성을 입증 받았다.

연구 성과에 앞서 주목할 점이 있다. 아이디어의 시작점인데, 김 교수는 그래핀 상용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밴드갭을 만들려는 기존의 접근법과는 반대로 출발했다. 포스포린처럼 이미 밴드갭을 갖고 있는 2차원 반도체의 밴드갭을 조작하여 그래핀의 우수한 물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흑린(黑燐)을 원자 한 층 두께로 떼어 내면 효율적인 반도체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인(P)에 고온 고압을 가하면 흑린이 되고, 흑린 표면에서 몇 개의 층을 떼어 내면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 수준인 0.5nm 정도의 ‘포스포린’이 된다. 이 포스포린은 탄소(C)로 이뤄진 그래핀과 원자배열이 유사하나 규칙적으로 주름진 구조를 갖기 때문에, 외부 스트레인이나 전계효과로 물성을 조작하기에 용이하다.

김 교수 연구팀은 포스포린의 표면에 칼륨원자를 흡착시켜 수직방향으로 전기장을 만들었다. 해당 전기장은 포스포린의 전자배치에 영향을 줘 밴드갭 값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밴드갭 값을 0 에서 0.6 eV 까지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포스포린의 밴드갭이 0이 될 때 그래핀의 우수한 물성의 근원에 해당하는 디랙준도체 상태가 포스포린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포스포린의 전도성이 그래핀과 비슷한 수준에 이를 수 있음을 밝혀냈다.

 

초소형 고성능 포스포린 전자소자 개발 발판 마련

“그래핀 상용화을 가로막던 밴드갭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핀의 장점만을 취했습니다. 밴드갭을 폭넓게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해 2차원 신소재 포스포린의 전자물성을 반도체로부터 도체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조작하는데 성공했고, 그래핀의 물성 중 우수한 전기전도성을 포스포린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고속소자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궁극적으로는 2차원 반도체물질연구의 중심이 ‘그래핀’에서 ‘포스포린’으로 이동하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일반적으로 물질의 밴드갭은 거의 변하지 않으나 두겹층 그래핀의 경우 일정 정도 조작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김근수 교수가 개발한 조작 가능한 밴드갭의 범위는 두 겹 층 그래핀의 세 배가 넘으며, 포스포린의 전자물성은 반도체로부터 도체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변환 가능하다. 이미 상용화된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와 다른 2차원 반도체에도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발광다이오드(LED)나 컴퓨터 칩 등을 만드는 전자소자나 전기신호를 이용해 빛을 만드는 광전소자 등의 고성능, 소형화에 활용될 수 있다. 실용화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친 김 교수는 2차원 반도체의 상업성 타진과 발견한 밴드갭 제어원리를 전계효과 트랜지스터에 적용하고 대면적 포스포린 합성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술적 과제 해결에 수 년 정도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번 연구가 ‘서랍속 기술’이 되지 않도록 포스포린 산화 메커니즘 추적 연구를 진행 중인 김 교수는 물리적 관점의 후속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그래핀은 방향에 따라 물체의 물리적 성질이 다른 비등방성(Anisotropy)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반해 흑린은 이방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특징에서 비롯된 새로운 물리학적 현상을 연구하는데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미해결 과제 퍼즐 맞추는 ‘창조적 연구자’

이제 우리나라는 모방과 추격에 의한 점진적 혁신(Incremental innovation)을 넘어 파격적 혁신(Breakthrough innovation)을 이루어야 할 시점이다. 과학 선진국의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발명과 발견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기에 차세대 과학 리더들의 도전적 생각과 연구가 절실하다. 더불어 과학을 움직이는 것은 ‘의견’이 아니라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집요하게 실현하는 김근수 교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물성을 완벽히 이해하고 실험한다는 것은 단순히 탐구하는 것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과학자는 다른 사람의 학문적 성과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자기만의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하고 체계화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자는 논리적이기를 넘어서 창의적이어야 하며, 어떤 점에서는 예술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과학계의 미해결 과제 퍼즐을 맞춰 나가는데 있어 기존 고정관념과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으로 문제를 관찰하는 그는 그래핀 반도체 핵심특성인 터널링 다이오드 효과를 발견하고, 초소형 그래핀 전자소자 개발을 가로막았던 기술적 난제의 원인을 찾아냈다. 광전자분광 시설을 이용해 전자구조를 직접 측정하고 그로부터 미세한 비틀림 구조를 역으로 추적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그는 그래핀의 밴드갭을 만들려는 기존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포스포린의 밴드갭을 조작하여 그래핀의 우수한 물성을 유도하면서 연구의 꽃을 피웠다. 혹자는 물리학적 관점에서 그래핀 연구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김 교수는 그래핀에서 초전도성의 발현이 뚜렷하게 규명된 바 없기에 이를 인가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더불어 기초과학연구원에서 개발한 포항방사광가속기 스핀각도분해 광전자 분광 시설이 올해 말 가동됨에 따라, 이를 활용한 그래핀과 흑린연구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세계적인 과학저널에 논문을 게재할 때,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강조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학문적 관점’과 ‘응용적 관점’을 강조하게 되는데 많은 기초학문 연구자들은 ‘학문적 관점’을 강조합니다. 늘 진지하게 고민했던 부분으로 저는 ‘응용학문의 바탕이 되는 기초연구’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한 발이라도 앞서갈 수 있는 연구를 통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치열한 경쟁과 빠른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영향력이 높은 저널에 꾸준히 논문을 낼 수 있는 수준 높은 연구실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응용연구는 기초연구의 토대 위에 꽃 피운다‘는 표현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김근수 교수는 마지막까지 연구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을 내비쳤다. 마치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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