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성 암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질 고민하며 중개 연구에 힘쓰는 의사의 사명감
진행성 암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질 고민하며 중개 연구에 힘쓰는 의사의 사명감
  • 유지연 기자
  • 승인 2023.02.0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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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유지연 기자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유지연 기자

[월간인물 유지연 기자] 건강검진이 대중화되며 암의 완치율 또한 높아졌다. 조기 발견과 빠른 대응 덕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진행성/전이성 환자들은 존재한다. 종양내과는 이들에 대한 약물적 치료로 환자들이 느낄 병증과 고통을 덜어내고, 귀한 시간을 연장하며 더욱이 그 남은 시간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환자를 마주하며 이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의 성과를 다시 환자들과 공유하며 환자들의 고통을 덜고자 노력해온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의 시간, 그 중심에는 환자가 있다.

 

 

HER2 양성 위암 환자에 대한 항암제 3중요법, 더 나은 효과와 더 낮은 부작용 확인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라선영 교수를 필두로 하여 다기관 연구진이 HER2 양성 위암 환자 치료에 있어 항암제 3중요법이 76.7%의 객관적 반응율(ORR)을 보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4HER2 양성 위암 환자 43명에게 세포독성·표적·면역항암제 3중요법을 적용한 후 치료 효과를 추적 관찰하는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IIT)를 진행한 결과다. 특히 환자 7명은 총 치료 기간인 2년간 암 진행 없이 항암 치료를 종료하는 고무적 성과를 낳았다. 1년 무 진행 생존율은 41.9%, 약효가 지속되는 시간인 반응지속시간 (DOR) 중앙값은 10.8개월이었다. 라 교수는 HER2 양성 위암 환자에서 세포독성, 표적, 면역항암제 조합을 통해 기존 표준치료법 대비, 효과의 우수성과 부작용 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연구였다며, 세포독성과 표적항암제 2제요법에 면역항암제를 추가했을 때 효과는 더 뛰어나면서도 부작용은 기존 치료법 대비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항암제 조합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암세포와 주변의 세포 간 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암세포에 도움을 주는 모든 환경을 제거할 수 있는 조합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연구는 3중요법의 효과를 파악하기 위한 한국의 다기관 2상 임상연구로 수행되었으며, MSD가 진행 중인 3상 임상연구 중간 분석 결과 또한 2상 연구와 같은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2상 임상연구 결과와 3상 임상 중간 결과를 토대로 4HER2 양성 위암 치료에 대한 3중요법 적용을 조건부 신속 승인했다. 라 교수는 하 반기에 확인할 3상 임상연구 결과를 토대로 내년부터는 환자들에게 실제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 내다봤다. 더 나아가서는 위암 환자에게 세포독성 부작용은 배제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생명의 연장을 유도할 수 있는 요법을 정립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HER2 양성환자의 2차 치료차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 2제요법으로 최상의 치료 효과와 안 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임상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위암은 아시아인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암종이다. 서양인과 동양인 간 발병률은 물론 생존율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기에 글로벌시장 및 서양인 중심의 제약 기업들의 관심 또한 적다. 이는 라 교수가 위암 연구에 무게를 싣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위암분과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 대회에서 국내 진행성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우산형 임상시험인 ‘K-Umbrella’ 연구결과를 최초 공개하기도 했다. 진행성 위암 2차 치료에 바이오마커에 기반한 약물치료와 기존 표준요법의 치료 성적 및 안전성을 비교한 해당 연구는 우산형 임상시험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적용하며 눈길을 끌었다. 공통의 대조군을 메인으로 놓고 바이오마커에 따른 여러 코호트를 통합해 디자인한 것이다. 라 교수는 이번 연구의 핵심은 연구자 주도의 임상시험이라는 점에 있다며, 기업들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분야에 있어 연구자가 시그널을 찾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은 굉장한 중 요도를 갖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유지연 기자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유지연 기자

다스리기 어려운 진행성 위암, 늘어나는 젊은 환자 및 고령 환자는 새로운 과제

저는 임상에서 환자들을 만나 치료하고, 치료 경과가 차이를 보인다면 그 이유를 추적하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의사예요. 이는 종양내과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죠. 같은 암 환자라도 수술로 암 덩어리를 떼어내 완치를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외과와 달리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하는 등 수술이 어려운 환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종양내과에서는 병증을 조절하고 시간을 벌어주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종양내과를 찾는 환자 대부분은 4기에 접어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암 환자의 20~30%는 수술 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보조요법을 진행하지만 재발 및 전이성 위암의 대다수 환자들은 시한부 진단을 받은 후 병을 조절하고자 약의 도움을 받는다. 같은 4기 암을 선고받았다 할지라도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암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유방암, 전립선암의 경우 10년까지도 생존하지만, 췌장암/담도암 환자들의 시간은 짧게는 6개월에서 1년에 그친다. 위암 또한 1년 반에서 2년 정도다. 다만 의료기술의 발달은 환자의 생존 기간을 늘려주기도 한다. 위암과 함께 평균 생존 기간이 1년여에 그쳤던 폐암은 표적항암제의 등장과 함께 평균 생존 기간이 길게는 5년까지도 늘어났다.

암종마다 생존 기간이 다른 원인은 병의 복잡성과 이질성에 있습니다. 표적치료제의 등장은 환자의 생존 기간을 높여준 계기가 되었죠. 하지만 표적항암제가 잘 작용하는 암종과 그렇지 않은 암종이 있죠. 이 부분이 현재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됩니다. 위암은 표적이 없어요. 표적이 있어도 약에 잘 안 듣는 경우가 많지요.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속해서 연구하고 있음에도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고 있어요.”

라 교수는 표적항암제의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암종이 있다는 점과 더불어 젊은 환자의 증가를 최근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통상적으로 위암은 60세 이상의 환자에게서 빈번하게 발생해왔으나 최근 들어 젊은 환자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젊은 환자들에게 복막 전이가 더 쉽게 생긴다는 점 또한 그가 해결책 마련에 골몰하게 만드는 이유다. 위에 생긴 암세포가 가장 많이 옮겨가는 곳이 복막과 간이다. 간으로 옮겨 간 암세포는 눈에 잘 보이는 데다 약에 듣는 표적이 있는 경우가 있어 집중 치료가 가능하지만, 복막에 자리 잡은 암세포는 복막을 따라 스멀스멀 번져가기에 증상이 확인될 때면 이미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경우가 많다.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제도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구나 최근에는 고령화와 함께 늘어나는 노인환자 문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과거 65세 전후의 남성 환자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80세를 넘긴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라 교수는 수술이나 항암요법을 견디기 어려운 고령 환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년내과가 생긴 지 불과 10년이에요. 고령층은 모든 장기기능이 저하된 것은 물론 대부분 만성질환을 갖고 계시기에 평소 드시는 약과 항암 치료에 사용되는 약이 상충하는 경우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80세를 넘어 90, 100세까지 생존하는 시대이기에 결코 포기할 일도 아니죠.”

 

의사·과학자·연구자로서의 삶그 시작과 끝은 의사로서의 사명감에 있다

라선영 교수는 위암 외에도 신장암과 방광암 분야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자신이 종양내과를 선택하던 당시만 해도 많지 않은 비뇨기계 암을 치료하는 종양내과 의사가 거의 없었다며, 그럼에도 환자는 존재하기에 신장암과 방광암 분야 임상과 연구에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그간 그가 지켜봐 온 위암과 신장암 관련 치료법의 발전 방향은 판이하게 달랐다. 신장암의 진행패턴은 미국과 동일한데다 표적치료제의 효과가 좋아 관련 치료법이 빠르게 발전했다. 라 교수는 다른 암종을 함께 본 경험은 자신에게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다른 암종에 관한 치료법이 발전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위암을 다스리기 위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라 교수는 그간 동일한 약의 효과와 부작용에 관한 인종적 차이를 확인해왔듯 이제는 청년층과 고령층 등 보다 세분화된 타겟에 대한 효과를 확인해야 할 때라 말했다.

수련 기간에는 여러 암종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편이 나중에 전문분야를 가진 후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말하곤 해요. 그간의 지식과 정보들이 어우러져 신선한 아이디어와 해석으로 도출될 수 있거든요. 저 또한 각각의 암종 사이에서 새로운 의문점과 접근법을 떠올리곤 합니다.”

라 교수는 시간과 노력, 비용의 측면에서 자신이 가진 분명한 한계를 말하며 자신의 연구를 이어받을 후배 의사들에 대한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약의 효능이 입증되며 가시적 발전을 이룬 폐암과 달리 위암은 점차 의료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 때문이다. 그는 그 수가 줄어든다 할지라도 여전히 위암 환자는 존재한다며,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당부했다. 또한, 후배들에게는 서두르지 말고 연구의 목적을 되새 길 것을 주문한다. 환자를 살피며 발생한 질문을 좇아 연구하고, 그 결과가 다시 환자에게 돌아가는 중개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그는 모든 연구의 성과는 환자에게 돌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저는 의사이자 과학자고 연구자이지만 그 시작도, 끝도 환자예요.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성과에 목적이 있지 과학적 성취를 위해 환자들을 마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의사들에 게 굉장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정말 환자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의사에게 주어진 사명이죠.”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유지연 기자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유지연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환자에게 남은 시간을 더 값지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의사

종양내과를 찾는 환자의 90% 이상은 말기암 환자이다. 암을 조기 발견한 후 초기에 수술한다면 완치가 가능하지만 말기에 다다랐다면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환자를 마주함에 있어 라선영 교수는 병에 대해 정확하게 알림으로써 환자들이 남은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환자를 대하고자 한다며, 환자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남은 시간을 삶을 정리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한정된 시간 동안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고통을 완화해 삶의 질을 유지해주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완화의료를 통해 환자들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이죠. 명절이나 연휴 때면 항암 스케줄을 조절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항상 환자분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시간을 벌어드리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 말씀드리곤 해요.”

마지막 희망으로 자신을 찾은 환자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고하는 일은 라 교수에게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알리고 준비해야 할 일이라 말한다. 의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라 교수는 환자에게 남은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역할이라 단언했다. 언제나 환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선택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의 철학은 가족보다 환자를 우선으로 여기는 의사였던 그의 부친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모친, 은퇴 직전까지도 환자로부터 한밤중 호출을 직접 받았던 반 호프 교수, 환자에 관한 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직접 확인하던 노재경 교수, 연구 도중 막다른 길에 부딪힐 때마다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던 정현철 교수에게서 비롯되었다. 어떤 경우든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는 가르침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그다.

라 교수는 사람의 위대함을 이야기했다. 사람의 몸을 100%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지속적인 도전과 노력이 있을 때 언젠가 암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였다. 그는 암에 관한 지식과 치료법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만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희망을 전했다. 암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쌓으며 암을 알고자 도전해 온 인류의 노력은 언젠가 암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에 도달 할 것이다. 암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닌 정복의 대상이 될 내일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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