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 MD앤더슨 암센터 홍완기 박사-“폭탄주는 자살행위다. 정말 멍청한 짓이다”
[Health] MD앤더슨 암센터 홍완기 박사-“폭탄주는 자살행위다. 정말 멍청한 짓이다”
  • 남윤실
  • 승인 2016.03.24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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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기 박사는 성대를 잘라내지 않고 후두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개발한 인물로 세계 암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홍 박사의 성대 보존 후두암 치료법은 미국 암협회의 ‘100대 희망 스토리’ 중 세 번째로 올라 있다. 그는 그동안 689편의 연구논문, 11권의 책을 저술했고 17개 과학저널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의 밑에는 17개 학과 350명의 교수가 연간 1만2000여 명의 암 환자를 돌보고 있다. 올해로 31년째 근무하고 있는 MD앤더슨 암센터의 ‘Making Cancer History(암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라는 모토를 묵묵히 실현해가고 있다.


|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MD앤더슨 암센터 홍완기 박사
|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MD앤더슨 암센터 홍완기 박사

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가족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큰아버지가 한의사였고 일곱 남매 중 맏형이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홍석기 박사·1999년 작고)였습니다. 저는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죠. 맏형은 내 인생의 ‘롤 모델’이었습니다. 제가 의대에 가고 같은 학교 후배가 되자 무척 자랑스러워하셨죠. 당시 맏형은 연세대 의대 생리학과 교수였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닌 60년대에도 의대 학비는 상당히 비쌌는데 맏형이 내 학비를 다 내주셨습니다. 교수라고 해도 월급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텐데 형제의 정이 그만큼 각별했어요.”

 

의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인데, 미국 이민을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무엇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70년대 한국과 미국의 격차는 굉장히 컸어요. 공군 군의관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의학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미국이란 큰 나라에는 여러 가지 기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침 미국 이민법이 바뀌면서 의사 같은 전문직은 이민 비자가 쉽게 나왔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힘드셨을 텐데요.

“육체적·정신적으로 고생이 말도 못했죠. 외국에서 대학을 나온 의사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어요. 인턴·레지던트 자리를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죠. 이를 악물고 열정과 끈기로 버티고 버텼습니다.”

 

암 연구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70년대 초반 보스턴 재향군인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할 때 암 환자가 많이 찾아왔습니다. 900명의 환자가 있다면 그 중 100명은 암 환자였던 것 같아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이 끝난지 아직 오래되지 않았고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던 시기였습니다. 제대하고 고향에 돌아온 군인들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술·담배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암에 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다 보니 다른 병원엔 가기 어렵고 제대 군인을 공짜로 치료해 주는 재향군인병원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런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암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성대를 잘라내지 않고 후두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십니다.

“예전엔 후두암이 생기면 대부분 성대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어요. 암은 치료하더라도 환자가 수술 후 말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죠. 그게 가슴이 아팠어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죠. 그래서 수술 대신 항암제 투여와 방사선 요법을 결합해 봤고, 그 연구가 성공적이어서 성대를 보전하면서도 후두암을 치료할 수 있게 됐어요. 수술과 비교할 때 후두암 환자의 생존율은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전 세계 병원에선 이 방법으로 후두암 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암은 예방 가능하다고 하셨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암은 예방 가능한 질병입니다. 암 치료는 어렵고 힘들지만 예방법은 간단합니다. 생활 습관만 고쳐도 예방할 수 있죠. 전체 암의 3분의 1가량은 예방 가능한 암이에요. 예방을 위해선 금연이 가장 중요한데, 담배는 폐암뿐 아니라 모든 암의 적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일상생활 속에서 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식습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금연, 소식, 규칙적인 운동, 적정한 체중 유지(비만억제), 채소·과일 위주 식사 등 5가지와 함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암 발병 원인 20~25%가 감염에 의한 것입니다. 특히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 담배는 건강을 망치는 독(毒)이며 암 환자 3명 중 1명꼴로 흡연이 원인인 사례가 많습니다. 술은 와인 1~2잔이나 식사 후 위스키 한 잔 정도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즐겨 마시는 폭탄주는 자살행위입니다. 한국인은 술에 관대하지만 취하도록 마시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또 중요한 점이 규칙적인 운동입니다.”

 

담배를 피우면 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나요?

“담배를 피우면 흡수되는 물질이 인체의 유전자(DNA)를 파괴합니다. DNA를 복구하려는 시스템도 망가뜨리는 셈이죠. 결국 통제 기능이 말을 듣지 않아 세포가 멋대로 증식하면서 암이 됩니다. 특히 담배와 술을 함께하는 것은 아주 미련한 짓입니다.”

 

담배 피는 사람들은 금연하기 힘든데요.

“니코틴 수용 능력이 비정상이어서 유전적으로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끊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금연은 동기 부여가 중요합니다. 제가 주치의를 맡았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담배를 끊고 회사 직원들에게도 금연을 권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금연 스토리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전사적인 금연 정책을 펼친 일은 정말 존경스러운 일입니다.”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통곡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먼저 일반 의사보다 진단받은 암 전문의를 찾아가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암은 정확한 진단과 병기, 정확한 치료 방법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환자가 암을 극복하겠다는 동기 부여가 중요합니다. 동기 부여가 돼야 꾸준히 치료를 받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보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의사를 잘 따르는 환자의 치료 결과가 좋습니다.”

일부 암 환자들이 병원 치료보다 대체요법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암 대체요법과 보완 치료도 중요하지만 주된 치료가 되면 안 됩니다. 현대의학으로 유방암을 치료하면 90% 이상 치료할 수 있지만 대체요법으로 치료하면 완치 가능성에 대한 데이터(통계)가 없습니다. 성분이 확실치 않은 약초를 잘못 쓰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체요법을 병행할 때 반드시 의사에게 물어보고 해야 합니다.”

 

암 치료에 있어, MD앤더슨 의사들에게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암 전문의와 상담시간이 짧아서 생기는 오해들이 적지 않습니다. MD앤더슨은 의사들이 암 환자와 30~40분 이상 충분히 상담을 합니다. 독특한 환자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해줍니다. 필요하면 암 환자 가족과도 3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지만 상담을 통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은 좋은 소식이 됩니다. 암은 의지가 강하면 나을 수 있지만, 포기해서 암세포가 퍼지면 치료하고 싶어도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한국과 미국의 암 치료 격차는 크지 않나요?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암 치료 기술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일부 암 완치율은 미국을 앞서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 암 연구비의 규모입니다. 미국 정부가 암 연구에 쓰는 돈은 어마어마하지만 그래도 미국에선 연구비가 적다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한국에선 암 연구에 얼마를 쓰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만일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1895~1948년)가 저한테 치료를 받았다면 후두암으로 죽지 않았을 것이란 기사가 미국의 암 전문 학술지에 실린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남들이 아직 개척하지 못한 연구 분야에서 제가 앞장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것에 보람으로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암 치료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암 치료는 협진이 중요합니다.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 협진이 강화돼야 합니다. 암 치료에는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40여년 넘게 암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저 자신도 혹시 놓친 게 없는지 동료 선후배 의사들에게 의견을 묻고 있습니다.”

 

암 정복이 실현 가능한 시대가 올까요?

“암 치료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암 환자가 늘고 있지만 사망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암 정복의 여정에서 7부 능선까지 와 있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암 환자의 50%는 완치되고 있으며 나머지 25%는 암과 함께 여생을 살고, 마지막 25% 정도는 암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20~30년 전 암 환자의 20~30% 정도만 완치됐던 것에 비하면 큰 진전입니다. 암도 고혈압·당뇨병·심장병처럼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뇨병이나 고혈압은 완치가 어려워도 꾸준히 약을 먹으면 관리할 수 있듯이 암도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면서 관리를 잘하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언제까지 일할 계획이신가요?

“요즘도 매일 오전 5시쯤이면 병원에 나가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사람으로 병원에서 유명합니다. MD앤더슨에 따로 정년은 없습니다. 더 이상 전임으로 일하기 어려워지면 파트타임이라도 좋으니 계속 일하고 싶어요. 제가 직접 연구 프로젝트를 하지 않더라도 후배 의사들의 연구를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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