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봉 작가 - 탄광 위 카지노에서 자라난 ‘카지노 베이비’,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낸 비밀스러운 이야기
강성봉 작가 - 탄광 위 카지노에서 자라난 ‘카지노 베이비’,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낸 비밀스러운 이야기
  • 문채영 기자
  • 승인 2022.10.11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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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봉 작가 [사진=작가 제공]
강성봉 작가 [사진=작가 제공]

 

카지노 근처의 전당포. 처음엔 호기심으로 찾아와 금반지를 맡겼던 사람도 나중에는 넋나간 얼굴로 찾아와 자신이 가진 ‘전부’인 자동차와 핸드폰을 맡긴다는 그곳. 전당포 근처에서 한 자리에 몇 년째 방치된 자동차가 안타까움을 더하는 이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자라난다. 강성봉 작가의 소설 <카지노 베이비> 속 ‘지음 시’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자라나고 있다. 강성봉 작가는 카지노 전당포에 버려진 ‘그림자 아이’의 시선에서 소설을 전개해나간다. 아이의 눈에 비치는 다양한 인간군상 역시 이 소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다. 독자들로 하여금 그 아이를 응원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소설의 엄청난 흡인력을 자랑한다. ‘2022년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카지노베이비> 작가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매력적인 캐릭터와 생동감 넘치는 소설을 파헤쳐 본다.

 

안녕하세요, 월간인물 독자분들께 작가님 소개와 더불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카지노 베이비>를 쓴 강성봉입니다. 출판편집자로 일하며 다양한 책들을 만들고 있고요. 더불어 소설도 계속 써나가고 있습니다.

 

잡지 기자와 출판편집자로서 살아오시다가 첫 소설 <카지노 베이비(원제 : 아이들의 땅)>를 내셨습니다. 혹시 어떤 부분에서 창작의 매력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잡지 기자와 출판편집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거나 다른 작가들의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기획을 하고 작가들을 섭외하여 책을 만들기도 하지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사실 저에겐 소설 쓰기도 비슷하게 느껴져요. 독자들이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읽을 무언가를 기획한다는 점에서, 또 아예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들을 잘 살피고 글의 형태로 전달한다는 점에서요. 오히려 스스로 기획도 하고 글도 직접 써야 하니 더 고된 일이지요. 다만, 지금 저에겐 출판편집이 직업으로서 하는 일이라면, 창작은 개인적인 일이고 이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이에요. 마감이 없고 제 맘대로 일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장점도 있고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은밀한 자유로움과 성취감도 있어요. 아마도 그 차이가 저에게 매력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말도 있는데, 첫 작품부터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소감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매우 기뻤죠. 실은 소설을 공모하고 나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온갖 생각을 다 했어요. 혹시 내 길이 아닌데 고집을 부리고 있나, 웹소설 버전으로 바꿔 써볼까 혼자서 갈등했었죠. 실제로 조금 써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수상 소식을 듣고, 아 그냥 이 길로 가라는 거구나 하고 받아들였어요. 다른 걸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동안 내가 좋아해서 해온 것들을 계속해도 된다는, 응원과 격려를 받는 것 같았죠.

 

인터넷 실화가 모티브인 소설인데, 각 인물들은 참고하신 실존 모델이 있었을까요? <카지노 베이비>라는 소설과 소설 속 캐릭터들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요?

배경이 되는 장소는 특정할 수 있지만, 실존 모델은 특정하기가 좀 힘드네요. 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여러 인물의 특징들을 가져와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화자인 하늘이는 인터넷 실화를 모티브로 하기도 했지만, 거기엔 저의 어린 시절의 기억, 제가 관찰한 그 또래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방식들이 들어가 있어요. 할머니도 마찬가지인데요. 실제로 생존했던 광부들의 끈질긴 생활력, 제가 보아왔던 부모님 세대들의 경제관념 등을 참고해서 만든 캐릭터예요. 이 캐릭터들은 당연히 제가 하려는 이야기 주제에 맞춰서 계획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이야기를 써나가다가 우연히 등장하기도 했어요. 과거를 상징하는 할머니와 미래를 상징하는 하늘이를 두 축으로 놓고, 그 사이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었던 것이죠.

 

작중 작가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인물이 있는지, 있다면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소설의 화자인 하늘이에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이 투영되어 있으니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제 의도와 달리 소설 속 하늘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더라고요. 이 아이의 말과 행동을 잘 따라가 보자, 이렇게 생각하며 소설을 써갔어요. 어리지만 당당하게 저를 이끌고 가는 모습에 제가 반할 수밖에 없었지요.

 

소설은 나이에 비해 일찍 철이 든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어른이 되면 아이들의 마음은 많이 잊게 되잖아요. 화자를 아이로 설정한 이유가 있었을지, 또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시면서 어려우신 점은 없으셨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사실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기준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물리적인 나이인지, 내면이 성숙한 정도인지, 아니면 자기 행동에 대한 통제력인지, 사회 적응력인지……, 잘 들여다보면 어른보다 더 속 깊은 아이도 있고, 아이보다 철없는 어른도 많습니다. 다만 아이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을 때, 인간의 순수한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고, 그런 인물을 화자로 삼았을 때 주어진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어려운 점이 있다면, 소설의 무대가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이기 때문에, 현실의 중력에 따라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것이 불가피하고, 또 그 나이대의 아이가 물리적으로 할 수 있는 앎과 행동에는 한계가 있으니,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고민이 많았는데, 저는 소설을 쓰다 보면 생기는 작법상의 일관성을 따르기보다는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택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한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만 있다면, 현재 진행형 서술이든 과거 회고형 서술이든, 관찰자 시점이든 전지적 시점이든 가리지 않는 거죠. 기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어른의 정형화된 구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시공간 어디쯤에 걸쳐 있는 자유로운 화자를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은 현실과 판타지의 중간쯤 어딘가에 있게 된 셈인데요. 아마 그러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끝내 마무리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예술적인 문장들이 많아서 필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카지노 베이비>를 집필하시면서 가장 공을 들인 문장이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첫 문장 “아빠는 나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렸다.”를 많이 기억해주시는데요. 오히려 제가 공을 들인 건 그 뒤에 나오는 세 문단의 문장들이었어요. 첫 문장이야 아무렇게 자극적으로 쓸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그걸 지탱하는 뒷 문장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독자들이 더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소설의 앞부분이기도 하니까요.

 

<카지노 베이비>를 통해 좋은 말씀도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혹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서사가 살아 있는 소설을 읽었다는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 익히 아는 정통적인 방식, 단일한 화자의 목소리로 선형적으로 진행하는 이야기를 써나가기가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둘 이상의 화자, 과거와 현재의 중첩, 다양한 구성과 스타일을 섞는 다성적이고 비선형적인 방식의 소설이 요즘 시대에는 더 많기도 하고, 또 독자들에게 잘 맞는 것 같았어요. 근데 저는 일단 정통적인 서사를 끝까지 완성해보고 나서 다음 작품에서는 그 전통적인 서사를 깨는 방식으로 접근해보려고 했어요. 정반합(正反合)에서 ‘정(正)’을 먼저 시도해본 것이지요. 당장은 힘들어도 길게 보면 결국 저한테는 도움이 될 거라고 봤거든요. 그 덕분에 소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서사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 같고, 그걸 알아봐 주시는 독자분이 있으면 매우 기쁩니다.

 

한 작품을 완결내는 것도 그렇고, 글을 끝까지, 또 계속해서 쓰는 것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작가님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저는 저 자신이 인내심이 있다고 보는 편은 아니에요. 차라리 루틴을 믿는 편이죠.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도 모르게 이를 닦듯이 저에게 최적화된 루틴을 정해놓고 거기에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거죠. 그렇게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초고를 쓰고, 그 초고를 휴대폰으로 옮겨서 휴대폰으로 딴짓할 시간에 글을 수정하는 습관을 만들어놨어요. 일종의 자동항법모드처럼 글을 써나가는 것이죠.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일상생활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도 잘 메모하거나 기억해 두면, 루틴에 따라 글을 쓸 때 저절로 떠올라서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어요. 특히 이번 소설을 쓸 때는 워드 파일명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정해놓고 클릭할 때마다 그 말을 마음에 되새겼는데요. 글을 쓸 때만큼은 그런 존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서였어요. 사람은 자기 안에 무엇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 힘들어도 그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고 믿거든요.

 

향후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으실까요?

저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에 관심 많아요. ‘지금 여기’와 관련되어 있다면 역사 소설도 쓸 수 있고, SF 소설도 쓸 수 있지요. 지금 내 마음이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그 글을 쓰고 싶은 동기가 나를 온전히 설득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그걸 잘 표현할 수만 있다면 어떤 장르든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동안 작가님께서 다양한 도전을 해오셨기에 앞으로도 하고 싶으신 것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강성봉 작가님이 가진 앞으로의 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일단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 당연히 계속 글을 써나가는 거예요. 다만 기계적으로 쓰기보다는 제 마음속에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무엇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며 계속 써나갈 수 있기를 바라죠. 지금도 제 마음을 이끄는 몇몇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걸 써내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어서 요즘엔 새로운 루틴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꿈이 있다면 꼭 글을 쓰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온전한 것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못다하신 말씀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카지노 베이비> 작가의 말 마지막에 쓴 문장이 있어요. “이 책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음을 믿고, 그 이야기를 발견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것입니다.” 이건 꼭 무언가를 창작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소위 창작을 한다는 사람들도 그러지 않은 사람들보다 구태의연하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거든요. 뭔가를 창작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 자체를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더욱 중요하단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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