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Now] 영화 ‘리틀 포레스트’, 젊은 그들을 위한 치유와 위로의 사계(四季)
[MonthlyNow] 영화 ‘리틀 포레스트’, 젊은 그들을 위한 치유와 위로의 사계(四季)
  • 박금현 기자
  • 승인 2020.11.09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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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날씨는 예년에 비해 유난스러웠음을 기억한다. 초여름에 이른 더위를 선사하는가 싶더니 지루한 장마로 여름은 그렇게 허무한 자취를 감추었다. 깊어가는 가을, 11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숲의 풍경은 노랗고 붉은 강렬한 색감으로 자연을 물들인다. 도심(都心) 속 가로수의 낙엽은 공허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지만 자연 속 단풍은 우리에게 미감(美感)을 선사한다. 부단히 움직이지 않으면 구르지 않는 수레바퀴처럼 우리의 삶도 일상에 매몰되어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고 버티기 위해 하루하루 처절히 살아간다. 마음이 복잡하고 불편할 때 풍경은 우리 마음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과 부대낌, 번잡함에서 몇 발자국 떨어질 수 있다면 마음의 비움 공간에 비로소 평화가 깃들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임순례 감독이 2018년 내어놓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 (Little Forest)’는 자연을 배경으로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담담히 건네는 위로다.

 

돌아오다, 마음의 고향으로

영화의 도입부, 겨울이다. 주인공 혜원이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스산한 까마귀 울음소리와 함께 헐벗은 겨울 고목을 지나 마을로 진입하는 혜원의 서걱대는 눈 발자국 소리. 대문이 없는 시골집은 활짝 열려 있는 그대로 그녀를 환영하듯 맞아들인다. 그녀가 떠났던 그대로 두터운 커튼 뒤에 멈춰 있던 집은 그녀가 돌아옴으로써 다시 생동한다.

임용고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서울을 떠난 혜원의 마음은 쓸쓸하다. 그녀가 지고 온 둔중한 배낭을 털썩 내려놓는 것은 그녀를 짓누르던 마음의 무게도 비로소 털어내기 시작함을 보여주는 미장센(mise-en-scène)이다.

혜원은 성냥으로 난로에 불을 지피며 그녀의 온몸을 휘감던 한기(寒氣)를 온기(溫氣)로 바꾸어 간다. 고향에 온 것이다. 어린 시절과 엄마의 추억,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향집, 그녀는 그렇게 기억 속으로 회귀(回歸) 했다.

 

음식과 삶, 그것이 엮어가는 이야기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할 때, 단편적 프레임처럼 우리의 머릿속을 스치는 지난날의 장면은 어떤 사소하지만 강렬한 하나의 감각으로 떠오를 때가 있다. 내게 남아있는 음식의 따뜻한 감각적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아홉 살, 열 살 무렵, 나의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감자 크로켓과 함께 한다. 감자크로켓 속의 부드러운 감자의 질감과 그 고소한 냄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린 날의 기억 속에 여전히 잔존하는 행복한 기억들. 입식 부엌의 구조가 보편적이지 않았던 그 시절, 어머니는 방 안에 석유 곤로를 들여놓으셨다. 당신의 어린 딸이 좋아하던 감자 크로켓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어머니는 감자를 깎고 끓는 물에 삶아 으깨어 곱게 체를 내렸다. 당근과 시금치를 잘게 채 썬 뒤, 삶아 으깬 감자와 섞고 둥글게 주먹밥 크기로 뭉친다. 그리고 밀가루와 계란 물, 빵가루를 입혀 뜨겁게 튀겨 낸 감자 크로켓. 엄마와 함께 고사리 손으로 만들었던 감자 크로켓에 담겨 있는 추억. 지금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던 가을날,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미소와 함께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젊은 날의 어머니. 고소한 맛과 어머니의 사랑을 충만히 느꼈던 그때. 이제 어머니의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렸지만 미각과 함께 따라오는 사랑의 기억은 나이 들어가는 딸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선물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겨울에서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 봄으로 순환하는 사계의 자연과 함께 맞물리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일상의 행복 속에 안정을 되찾는 청춘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평온하게 풀어낸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 속 공간 농촌. 상처받은 젊은 영혼들인 혜원과 혜원의 친구인 재하, 은숙. 그들의 삶과 요리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에피소드와 수채화 같은 영상미가 관객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사한다.

혜원이 집에 돌아온 겨울날, 눈밭에서 맨손으로 캐낸 배추로 끓여낸 배춧국. 마당의 눈을 치우고 혜원이 언 손을 녹이며 먹는 수제비. 계절 따라 보여주는 다양한 요리의 향연, 아카시아 꽃 튀김, 두부 전, 막걸리, 무지개 시루떡, 감자 빵, 밤 조림, 곶감, 어린 시절의 혜원과 혜원의 엄마가 만든 크림 브륄레......

 

청춘들이여, 아파하라! 그리고 이겨내라

최근 나는 30대 초반 결혼 적령기의 청년과 세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삼십 초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결혼이나 연애가 아니라고 했다. ‘안정된 일자리’, ‘먹고사는 현실적인 생계 문제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다음 중시하는 것은 자신의 여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라이프 스타일이 주요 관심사라고 했다. 젊은이들이 YOLO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뿐이다 )라든지, 소확행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생각하며 희생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삶을 확실히 즐기는 방향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경제력을 갖추는 것이 어려운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 못지않은 인생의 중압감과 그들 나름의 고민의 회오리 속에 번민하며 살아간다.

영화에서 혜원은 시험에 떨어진 자신과 달리 임용시험에 합격한 남자친구에게 축하를 건넨다. 그도 그녀를 위로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이별이다. 혜원의 초등학교 친구 재하는 도시의 직장 생활에서 받은 상처가 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조직 속의 부속품 같은 생활, 월급날만 기다리게 되던 속박된 느낌, 가슴 터질 것 같은 답답함, 사랑하던 여자 친구와의 이별. 재하는 독백하듯 말한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기 싫다고.

농협에 근무하는 친구 은숙 또한 상사와의 고충 속에 나날을 보내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 극복하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영화의 내러티브(narrative)는 어떠한 긴장도 주지 않고 물 흐르듯 매우 담담히 전개된다. <리틀 포레스트>는 가족이나 친구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고, 음식을 나누며, 삶의 이야기와 시간을 나누는 것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2030대를 관통하는 젊은이들의 방황, 그들이 채워가는 삶과 고뇌, 고독과 상처, 그리고 스스로 상처를 이겨내는 치유의 이야기이다.

 

임순례 감독, 상처받은 청춘을 위로하다.

<리틀 포레스트>는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가 그 원작이다. 임순례 김독은 1994년 단편영화인 <우중산책>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장편 영화는 1996<세 친구>로 데뷔하였다. 2001<와이키키 브라더스> , 2003<여섯 개의 시선>, 2007<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2009<날아라 펭귄>, 2010<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 2012<남쪽으로 튀어> , 2012<제보자>, 2018<리틀 포레스트>를 연출하였다. 임순례 감독은 <리틀 포레스트> 개봉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삶이라 해도 자신에게 편안한 마음을 스스로 선물하길 바란다.’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편안한 휴식 같은 영화를 선물하고 싶어서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러닝타임 103분 내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안온함과 포근한 감정을 선사한다. 자의든 타의든 경쟁에 뒤지지 않으려면 치열하게 내달려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임순례 감독은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삶이 남과 같을 필요는 없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힘들고 지칠 때 한 템포 느리게 쉬어가도 좋다.’ 고 인생 선배가 미래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후배의 지친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며 격려하듯 그런 위로의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후반부에서 혜원은 떠나간 엄마가 자신에게 남긴 편지의 구절을 상기한다.

엄마는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믿어. 지금 우리 두 사람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서 있다고 생각하자.”

혜원은 자신이 성장했음을 느낀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그녀는 다시 집을 떠난다. 혜원의 엄마가 집을 떠나 엄마만의 성장 시간을 만들어갔듯 그녀도 더 이상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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