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Now] 상상으로 떠나는 미라보 다리 여행과 가을에 떠난 시인 아폴리네르
[Monthly Now] 상상으로 떠나는 미라보 다리 여행과 가을에 떠난 시인 아폴리네르
  • 김예진 기자
  • 승인 2020.10.05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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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긴 연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여행은 단순한 휴식의 차원을 넘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견문을 넓힌다는 교육적 의미 외에 현장에서의 이국적 문화 체험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며 새로운 감성을 일깨운다.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가 일상이 된 올해,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해외여행을 아직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장래에 문화 · 예술의 도시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를 여행할 계획을 했던 이도 있을 것이다. 한 번쯤 센(Seine) 강변에 부는 바람 속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미라보 다리를 걷는 상상을 해 보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현재 해외로 여행을 갈 순 없지만 차선(次善)으로 인터넷 영상전문 플랫폼에서 파리 영상을 보거나 미라보 다리를 노래한 샹송은 접할 수 있다. 한국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샹송 중 이베트 지로(Yvette Giraud: 프랑스 가수 1916~2014)가 부른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가 있다. 이베트 지로는 1960년대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한 적도 있는 샹송 가수로 미라보 다리는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Apollinaire)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깊어가는 가을, 센 강변의 풍경을 상상하며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시()와 노래를 통해 저마다의 추억도 떠올려 보자.

 

미라보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삶과 실연(失戀)과 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1880826일 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신원미상이고, 어머니는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이었는데, 향락과 도박을 좋아한 사람이었다. 아폴리네르의 아명은 빌헬름(Wilhelm)이었고 두 살 아래 남동생 알베르가 있었으나 알베르의 아버지 역시 확실히 밝혀진 바 없다. 어머니 안젤리카는 로마와 볼로냐 등 이탈리아 도시들을 전전하면서 아이들을 혼자 키웠으며, 빌헬름 아폴리네르가 7세 때 이탈리아를 떠나 모나코로 이주했고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는 매우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다. 1892년경에 첫 시를 쓰고 그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1897년부터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였다.

19세인 1899년에 모나코를 떠나 파리에 살게 되었고, 파리의 도서관에서 많은 양의 독서를 하였다. 취직이 어려워서 대작자(代作者)생활을 하다가 19018월 친구 가이에가 창간한 몽마르트(Montmartre)의 풍자비판지 <<타바랭>>에 글을 발표함으로써 정식 문필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진성 저 파리의 보헤미안 아폴리네르아카넷 , 2007p38) 그는 독일에 대한 신랄한 시사 평론과 국내 시사문제에 대한 논평을 게재했다. 그리고 친구 장 세브의 소개로 <<라 그랑드 프랑스>>(La Grande France)라는 잡지에 몽상 (Lunaire), 혼례 (Épousailles), 도시와 마음 (Ville et coeur)이라는 짧은 시 세 편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으로서 공식적인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아폴리네르는 19018월에 독일 출신의 부호 미요 부인의 딸의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취직하여 라인강변에 있는 부인의 저택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영국인 가정교사인 애니 플레이든(Annie Playden)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하는데, 이 실연의 아픔으로 지은 사랑받지 못한 남자의 노래 (La Chanson du Mal-Aimé) 이다.

27세인 1907년에는 피카소의 소개로 유명 화가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 1883~ 1956)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로랑생과 아폴리네르는 서로 사랑했으나, 19126월 결별하게 된다. 애니 플레이든과의 사랑이 그러했듯, 로랑생과의 사랑도 아폴리네르로 하여금 몇 편의 시를 쓰게 하였다. (이진성 저 파리의 보헤미안 아폴리네르아카넷 , 2007p204) 이른바 로랑생편 이라고 불리는 변두리, 미라보 다리, 마리 (Marie), 사냥의 뿔 나팔(Cors de Chasse)이 그 시편들이다. 이 시들은 모두 사랑의 종말을 담아낸 시들로 고통스러운 추억을 읊조리는 엘레지(悲歌, elegy: 엘레지란 고대 그리스어의 탄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라지는 사랑과 시간에 대한 한탄조의 짧은 시를 지칭한다.) 들이다. 이 시들은 모두 시집알코올에 수록되어 있다. 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시로 샹송으로 작곡되어 대중성이 높은 유명한 작품이다.

 

천재시인, 102년 전 11, 스페인 독감으로 생을 마치다

마리 로랑생과 헤어져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던, 1914년 제1차 대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외국인이던 아폴리네르는 자원입대를 신청하고 프랑스인으로의 귀화 신청도 하였다. 입대를 기다리던 그는 이혼녀인 루이즈 드 콜리니 샤티옹을 만나 관능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는 그녀를 Lou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정열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었으나 사교적이고 자유분방한 그녀와의 만남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914928일 루에게 첫 편지를 쓴 이후 19161월까지 모두 220통의 편지를 썼다. 이 편지들 속에는 깔리그람을 포함한 76편의 시가 들어있었다. 1969년이 되어서야 루에게 보낸 편지 (Lettre à Lou)가 출간되었다. 전장에서 병영생활 중에 써 보낸 편지 속의 시들은 루를 상대로 쓴 시이기에 매우 개인적이고 은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19151, 그는 우연히 기차 안에서 고등학교 문학 교사인 마들렌느 파제스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신을 왕래하며 사랑을 키우게 되고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나 1916년 아폴리네르가 전장에서 포탄 파편으로 두개골 절개 수술을 받은 이후 소원해져 헤어지게 된다. 아폴리네르가 마들렌에게 보냈던 편지들은 1952추억은 감미로워( Tendre comme le souvenir)라는 책으로 묶여져 세상에 내보이게 된다.

특기할만한 것은 1918415일 시집 깔리그람(Calligrammes)이 출판된 것이다. 이 시집에서 그는 문자를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들을 선보였다. 아폴리네르는 아름다운 상형글자'라는 의미의 깔리그람이라는 '합성어를 만들어냈다. 깔리(calli)는 접두사로서 아름답다는 뜻의 그리스어 ‘kallos'에서 따왔고, 그람(gramme)문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gramma'에서 가져왔다. 그는 그림 요소와 언어적 요소인 글을 결합하였다. 글자를 이용한 이미지를 추구한 독특한 시인이다. 그는 시구들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기존 시 작법에 시각화된 이미지를 접목한 창조적 시도를 보여주었다.

깔리그람이 간행된 직후, 아폴리네르는 191852일 화가인 자클린 콜브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그해 가을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1918119일 숨을 거둔다. 38년의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여인들과의 사랑에서 영감을 얻고 사랑을 갈구했으며 진실한 사랑 속에 안착하길 바랐던 그는 겨우 6개월간의 짧은 사랑을 끝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쳤다.

 

초현실주의(surréalisme)와 아폴리네르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머리에 큰 부상을 입었던 아폴리네르는 수술 후 회복기를 거쳐 1917년부터 본격적인 문필 활동을 전개하였다. 기자로서 <<파리-미디>><<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기사와 칼럼을 쓰기도 했다. 아폴리네르는 19173월 폴 데르메(Paul Dermée)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대의 새로운 시 경향을 정의하기 위하여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하였다. 이는 전쟁 전에 사용하였던 초자연주의라는 말 대신에 사용한 것으로 후일 앙드레 브르통이 문학운동으로 전개하는 초현실주의와는 크게 다르다. (이진성 저파리의 보헤미안 아폴리네르아카넷 2007p.348)

아폴리네르는 19176티레지아스의 유방(Les Mamelles de Tirésias)이라는 초현실주의 연극을 상연한다. 아폴리네르 자신이 초현실주의 연극이라 이름 붙인 이 작품은 황당한 이야기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10여 년 전에 아폴리네르가 표명한 위대한 시인과 예술가는 자연의 모습을 끊임없이 쇄신시키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한다.’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창작된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상징성은 사물의 재현에서 벗어나는 것, 실물에서 영감을 받더라도 진부하고 상투적인 것을 피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

훗날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 1896~1966-초현실주의를 주창한 프랑스 시인, 작가이자 평론가. 파리 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1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신경정신과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프로이트, 상징주의,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음.)이 사용한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아폴리네르가 티레지아스의 유방의 서문에서 사용한 말의 뜻과는 매우 다르다. 브르통이 19241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정의 내린 초현실주의는 마음의 순수한 자동 현상으로서 이성의 어떠한 통제도 없이, 심미적이거나 윤리적인 모든 관심 밖에서 행해지는 사고의 구술을 말하며, 삶의 중요한 문제 해결을 지향한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은 1930년까지 3차에 걸쳐 발표되며 초현실주의 운동과 문학을 여는 초석이 된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사랑은 가 버린다 (L'amour s'en va)

 

아폴리네르는 시 미라보 다리의 마지막 행에서 사랑의 고뇌와 이별의 아픔이 남긴 쓰라림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Les jours s'en vont je demeure)’는 말로 처연(悽然)히 노래하고 있다. 그가 쓴 단어 demeurer머물러 있다. 지속된다라는 뜻도 되는데 아마도 로랑생과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 그리움이 진하게 남아있는 심리를 노래한 것이리라. 시인들이 애절한 이별이나 사랑의 상심을 형상화할 때, 강물에 투사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 시인 윤동주 님의 작품에 소년이라는 시가 있다.

 

소년-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윤동주 시인이 1939년 쓰셨던 산문시 소년이다. 이제는 가 버린 시간 속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연인과의 이별을 노래한 아폴리네르나 윤동주 님의 아름다운 소녀 순이를 생각해 본다. 잡을 수 없는 추억과 그리움. 가을은 젊음이나 청춘의 열기보다는 침잠과 고독,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을 준다.

사랑의 종착역에 닿았나 싶었지만 1918년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으로 짧은 생애를 마친 아폴리네르. 미라보다리에 가면 마리 로랑생과 함께 몽마르트를 오갔다던 그 이야기들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리 로랑생과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이 낳은 노래 미라보 다리.’ 그 강물은 아마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에펠탑을 배경으로 오늘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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