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Now] 우리 시대 진정한 사랑의 수호자
[Monthly Now] 우리 시대 진정한 사랑의 수호자
  • 정이레 기자
  • 승인 2020.09.28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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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이제나 저제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언제쯤 잠잠해지는 걸까. 세계인 모두가 염원하는 지금, 한 발짝 떨어져서 막연히 걱정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처절하고 생생한 의료 현장에서 온몸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아 내고 치료하는 의료진들을 생각하며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의학사를 돌아본다.

 

믿거나 말거나 : ‘문짝 탕약 처방에 얽힌 에피소드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김상열 옮김, 책과 함께 , 2005)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인 스웨덴의 신문기자 아손 그렙스트가 19041224일 조선에 들어와서 몇 달간 체험한 대한 제국의 사회상과 풍속들을 다루고 있다. 그의 여행기, 197~201쪽을 보면 당시 사회상을 그린 대목 중, 왕실의 치료를 담당한 궁중 의원들의 진료 이야기가 나온다. 순종의 첫째 왕비 순명효황후 민씨가 위중한 병에 걸렸다. 태자비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한국 최고 의술을 자랑하는 의원이 태자비를 진료하게 된다. ·녀 유별(有別), 엄혹한 시대의 여() 환자와 남() 의원. 의원은 환자의 옆방에서 벽에 구멍을 뚫고 가는 비단 줄을 통해 진맥을 한다. 의원의 손이 환자의 배에 직접 닿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환자의 복부는 일곱 겹의 비단 헝겊과 층층이 솜으로 누빈 일곱 겹의 두꺼운 이불로 덮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심 끝에 의원이 내린 진단은 악귀(惡鬼)로 인한 질병이었으니. 악귀를 몰아내기 위한 처방은 성문 한 짝을 떼어낸 나무로 탕약을 끓이고 그것을 마시라는 것이었다. 태자비는 그 탕약을 먹었으나 완치는커녕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고귀한 신분인 태자비를 사망케 한 죄를 의원에게 묻자, 의원은 아주 당당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답한다. 탕약은 아침에 마셔야 효험이 있는데 저녁에 마신 것이 잘못이다. 그 탕약은 성문의 문짝으로 달인 것이다. 성문은 아침이면 열리고 저녁에 닫히지 않는가. 저녁에 닫히면 모든 사람들이 성안에 머물러 있게 되는데 아침이면 나갔을 악귀가 저녁에 마셔서 나가지 못했으니 역효과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래서 악귀가 왕비의 배속에 남아있던 것이다. 따라서 죄상은 탕약을 저녁에 마시게 한 시종들에게 물으라는 기막힌 논리로 명의(?)는 책임을 모면했다는 이야기였다.

 

근대 의학이 한국에 펼쳐지기까지

위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로 미루어 짐작건대 당시 사회 전반을 지배했을 미신적 분위기와 어둡고 척박한 의료 현실을 추측할 수 있다. 한국 최고 로열패밀리의 진료 상이 그러했다면 빈곤과 미몽(迷夢:무엇에 홀린 듯 똑똑하지 못하고 얼떨떨한 정신 상태)에서 헤어날 길이 없던 민중들의 삶은 아마도 더욱 처절했을 것이다. 한국 근대 의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역사의 핵심에 미국인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알렌이 있다.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은 미국 오하이오 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1881년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교에서 신학으로 학위를 받고, 1883년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알렌은 미국 북장로회의 의료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중국 상해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곳의 반 기독교적 정서와 아내의 건강 악화 문제로 고충을 겪게 되고 마침내 조선에서의 의료선교사 활동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1884920일 최초 개신교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왔다.

1884124(양력), 우정국 개국 축하연에서 개화당이 수구 사대당 요인(要人)을 살해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갑신정변은 우리 역사상 근대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으로 평가된다. 삼일천하로 끝난 이 갑신 정변이 우리 근대 의학의 첫 출발점이 되었다. 갑신정변으로 칼에 찔린 민비의 친척이자 세도가인 민영익의 목숨을 구한 알렌은 이를 계기로 고종의 시의(侍醫:임금의 병을 전문적으로 맡아보는 의사)가 되었다. 그는 병원 설립 안을 제출하여 고종의 지원으로 제중원 건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알렌이 심한 자상(刺傷)으로 죽어가던 민영익을 상처를 봉합하는 외과(外科) 수술로 살렸으니 그가 가진 서양 의술이 당대 조선인들을 놀라게 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제중원: 뭇사람을 살리는 집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인 고종이 1885410일 현재 헌법재판소 자리(종로구 재동)에 최초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세웠다. 광혜(廣惠)란 널리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다. 이 명칭은 곧 제중원(濟衆院)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대중(大衆)을 구하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조선 정부는 재정과 행정을 지원했으며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는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하고 진료와 병원 운영을 담당했다. 여성 의료인 엘러스(Elless, A. J.)1886년 파견되어 그해 7월 부인부(婦人部)를 설치, 이로써 여성 전문 진료가 시작되었다. 서양의학을 교육하고 양의(洋醫)를 길러내기 위한 최초의 서양의학교육기관인 국립 제중원 의학당1886329일 개교되었다.

알렌은 18879, 주미 조선공사관 서기관으로 활동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고 제중원은 존 헤론( John W. Heron: 1856 ~ 1890, 2대 제중원 원장)과 찰스 빈턴( Charles Cadwallader Vinton , 한국어: 빈돈 (賓頓), 1856~ 1936, 18907월 헤론 사망 후, 18914월 제중원 부임)이 맡았다. 조선 정부는 재정이 악화되고 병원의 운영은 부실해졌다. 189311월 에비슨( Oliver R. Avison, 캐나다의 선교사이자 의사: 1860~ 1956)이 제중원 제4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에비슨은 조선 정부에 병원 정상화를 요구했다.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으로 재원이 부족했던 조선정부는 운영권을 미() 북 장로교회 선교부로 이양했고 이로써 제중원은 사립 선교 의료기관으로 재편성되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밝힌 한국 현대 의학의 횃불 : 세브란스

에비슨을 필두로 많은 의료선교사들이 조선 땅에서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전개하였다. 에비슨은 한글로 된 의학 교과서를 편찬하였으며 특히 조선의 신분 차별 철폐에도 앞장선 공로가 있다. 에비슨이 조선에 부임 초기인 1893년 말 그의 환자 중 백정 신분인 박성춘이 있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현실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뿌리 깊은 차별을 떨치기 어려웠다. 에비슨과 선교사들은 만민평등의 그리스도 신앙을 펼치며 백정들도 양반과 동일하게 대우했으며 나아가 조선 정부에 편지를 보내 백정들의 신분 차별 철폐 조치를 적극 이끌어 내었다.

19004, 뉴욕에서 세계 선교대회가 열렸다. 당시 에비슨은 한국에서의 의료선교 성과를 위해 교파를 초월한 연합의 필요성을 알렸다. 각 교파의 의료 선교사들이 한 병원에서 일할 수 있도록 새 병원의 건립이 필요하다는 그의 강연을 듣는 이 중에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 ( Louis Henry Severance : 18381913 )가 있었다. 록펠러와 함께 스탠더드 오일의 창립자였던 세브란스는 에비슨의 연설에 감동하여 새 병원 건립을 돕게 된다. 1900년 처음 1만 달러를 시작으로 추가 기부를 더하여 총 45천 달러(현재가치 수천억 원)의 거액을 기부하였다. 세브란스의 지원은 물질적 지원을 넘어선 숭고한 정신이었다. 1907년 세브란스와 함께 한국에 내한했던 그의 주치의 알프레드 러들로(Alfred Irving Ludlow, 1875~1961) 박사도 에비슨 박사와 의료 선교사들의 헌신에 감동하여 한국 선교를 자원, 세브란스 병원에 26년간 재직하며 한국 현대 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의인(義人)세브란스는 성경 말씀에 따라 남모르는 선행을 평생 지속하였고 그의 자손들도 고귀한 뜻을 이어받아 기부의 삶을 실천했다. 한국 최초 현대식 병원 세브란스 기념 병원1904923일 개원했으며 연세의대의 전신인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는 1908년 제1회 졸업생이자 한국 최초의 면허의사 7명을 배출했다.

 

위대한 사랑의 힘은 또 다른 사랑을 불러 온다

서양 의술을 배운 최초의 한국인 면허 의사들 7.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부()의 길은 마음만 먹으면 탄탄대로(坦坦大路)’로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물질(物質)’이 아닌 가치(價値)’를 선택했다. 역사공간 출판사가 2015년 출간한 제중원 세브란스 이야기(신규환 · 박윤재 공저)를 보면 제중원 초기부터 일제 강점기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들이 펼쳤던 인간애() 가득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슴 깊은 감동을 전한다.

세브란스의학교 1회 졸업생 박서양. 백정 박성춘의 아들인 그는 세브란스 병원 의학교 교수로 후학양성에 기여했다. 또한 후일 북간도로 이주하여 학교를 세우고 구세병원을 설립했다. 그는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에도 적극 투신했다. 또 다른 1회 졸업생 김필순(1878~1919)은 세브란스의 교수로 재직하며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1907년 설립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新民會) 회원이었던 그는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중국으로 망명했다. 서간도에 적십자 병원을 개설했고 부상당한 독립군을 치료하였으며 독립군의 군자금을 지원했다.

대표적인 1기 세브란스 출신 의사들과 그 후학들은 초기 의료선교사들의 사랑과 소명의뜻을 이어받아 의사로서의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인술(仁術)을 펼쳤다. 그리고 현대의학의 발전과 조국 독립을 위한 든든한 초석을 놓는 뜻깊은 업적을 쌓았다.

척박하고 가난한 땅, 일본 제국주의 강압아래 신음했던 구한말의 백성들. 가난과 무지(無知),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 시대의 많은 선각자들을 떠올려 본다. 우리 역사에 이름난 인물들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위인들도 많다. 자신만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누릴 수 있었던 부와 안락. 그 탄탄하고 넓은 길을 포기하고 좁고 험난한 고난의 길을 택했던 인류애의 의미.

 

2020년 코로나 방역의 전사들

20209월 말, 추석을 바로 앞둔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 2차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이 모두 방역에 동참하며 힘을 모으고 있다. 8월 중순 이후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급증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 수의 증가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각계각층의 노력들이 모여 우리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사회 경제생활 전반에 미친 영향으로 인해 불만의 목소리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우수한 방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K-방역의 평가 뒤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의료진들의 헤아릴 수 없는 노고가 숨어 있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한 그들의 노력.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사투에 가까운 의료진들의 땀방울. 장시간 착용해야만 하는 N95 마스크가 얼굴에 남기는 선명한 자국들. 21조 훈련을 통해 반복하는 오염 방지 전신 방호복 착탈의 연습. 전동식 호흡 장치와 김 서린 방호복 사이의 24시 집중 간호. 식사할 시간도 부족한 방역의 상황을 사명감 하나로 버텨 나가는 우리 방역의 최일선 전사(戰士)들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사랑을 말하는 것은 쉬우나 그 실천은 결코 쉽지 않다. 진정한 사랑에 그 무슨 수식(修飾)이 필요할까마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몸소 실천하는 코로나19 최전선의 이름 없는 전사들이야말로 팬데믹의 공포에서 국민을 지키는 우리 시대 진정한 사랑의 수호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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