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뜨겁다. 환경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뜨겁다.
도시가 뜨겁다. 환경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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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2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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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도시공학부 최성진 교수

 

원광대학교 도시공학부 최성진 교수

기존에 이미 가득 찬 도시를 바꾸는데 예전처럼 모조리 없애고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최대한 남기고 기존의 것들과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가꾸는 것으로 도시사업의 구도가 전개되면서 사업관계자와 사업구도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이 사업의 중요한 주체가 되면서 시스템만큼이나 주민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랜 기간 도시 사업의 경험과 지식을 쌓아온 전문가 한 사람이 바꾸기 힘든 것을 오랫동안 지역에서 거주해왔던 주민 한 분이 계획의 근간부터 바꾸어낸다. 2000년대 전후에 마을만들기 운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주민이 직접 마을을 가꾸는 활동에 참여할 때만해도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의 좋은 마음과 의지만 있었어도 충분했는데 도시재생특별법에 의해 행정적, 제도적으로 주민참여가 보장을 받고 수많은 주민들이 도시재생대학과 같은 교육을 통해 조금씩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안에서 서툰 지식과 경험을 가진 주민의 목소리와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진 전문가의 개입이 섞여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엔 주민 간의 갈등이 난제였는데 이젠 주민과 전문가 간의 갈등의 불씨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예전엔 열심히 하는 좋은 주민 한 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도시재생사업의 성패가 갈린다는 말이 공공연했는데 이젠 전문가와 주민의 소위 케미를 빼놓고 사업의 성패를 이야기 할 수 없게 되었다. 가면 갈수록 이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 같다. 문제는 주민 참여와 주민 간 갈등은 전문가와 행정이 길을 터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주민과 전문가 간의 갈등은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 그 미묘한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줄 중재자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예전처럼 전문성을 인정받고 존중받는 가운데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도시의 이미지를 실체화하고 싶고 주민은 갈수록 전문가의 실체화하는 그림들이 미덥지 않고 본인이 살아온 마음으로 배운 삶의 경험이 더 신뢰가 가고 구체적이다. 전문가는 실제 자기들의 상황과 이야기는 모르고 잘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책 이야기만 해대는 가방끈 긴 샌님들이고 주민은 도시사업에 대해 어디서 조금 들어봤다고 마치 전문가인양 사사건건 개입하고 요구만 하는 요란한 빈 깡통이다.

나는 이 문제가 도시재생사업을 커뮤니티계획과 동일시하는 것, 커뮤니티계획을 주민참여를 하는 무언가로 여기는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도시재생사업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기초한 것으로 기본적으로 토지의 기능과 효율적 운용에 초점을 맞춘 현대도시계획의 틀 안에서 운영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사회의 안정과 시민들의 소통, 지역사회의 연결도 중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현대도시를 구축하는 틀은 ‘토지’이다. 그리고 그런 토지의 용도, 기능, 규모,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도로와 동선의 기본 논리는 ‘효율성’이다. 커뮤니티계획은 그런 현대 도시계획의 구축 논리를 개선, 혹은 획기적으로 전환하여 ‘문화(생활)’가 구축의 틀이 되고 그것의 ’관계’가 논리로 작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토지와 공간이다. 사람들 간의 소통과 연결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토지와 효율성으로 구축되어 있는 현대 도시의 틀 안에서 어떻게 하면 문화와 관계를 융합해서 도시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가 커뮤니티계획의 핵심이고 그 작은 한 부분에 주민의 참여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일본 번제시대에 혼바쿠교 혹은 혼토로 불리던 마을의 구성단위였던 ‘이에’에서 비롯된 독특한 가족 중심 문화인 ‘이에(家)’를 통해 발전한 일본의 주민참여형, 주민주도형 마치츠쿠리(마을만들기) 운동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오고 그것이 주민의 목소리를 듣는 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정치권의 관심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의 도시사업은 주민참여에 엄청나게 주목했고, 그것이 그냥 커뮤니티계획으로 인정되었다.

이런 도시사를 통해 주민이 주도해나가도록 구조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도시사업을 들여다보면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은 우리나라의 문화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주민참여는 도시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모두가 희생할 것을 강요한다. 전문가는 본인이 전문성을 가장 많이 가진 참여자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주민이 주도하는 사업을 기획해야하고, 주민은 전문성의 부족함을 느끼고 전문가의 리더쉽을 필요로 하면서도 주도적 입장을 취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것은 그 재생의 지향점이 그저 주민의 소통과 활력 증진에만 맞추어져 있는 왜곡된 커뮤니티계획의 관점 때문이다. 지향하는 소통과 활력은 토지의 적합한 활용과 공간의 기획 없이는 불가능하며 말랑말랑한 주민 프로그램은 딱딱한 도시공학적 기반위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얻는다. 앞으로 도시사업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민참여가 아니다. ‘찐’ 커뮤니티계획과 커뮤니티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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