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말벌 여전사의 내면의 바람 뒤에 숨겨져 있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평화주의: 누구를 위한 평화란 말인가?
어느 말벌 여전사의 내면의 바람 뒤에 숨겨져 있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평화주의: 누구를 위한 평화란 말인가?
  • 월간인물
  • 승인 2020.09.22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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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대학교 김요섭 교수
군산대학교 김요섭 교수
군산대학교 김요섭 교수

필자는 오래 전부터 꿀벌과 말벌과 같은 곤충들도 집단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일본 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 尚樹)딸들의 제국이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한 장수말벌(Vespa mandarinia)인 마리아의 짧지만 치열한 사랑 이야기를 일본 제국주의와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소개하려고 한다. 집단 지능과 제국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을지 궁금해 할 독자들에게 일본 제국주의는 개인의 모든 활동이 일본 민족과 국가의 존립을 위하여만 존재한다는 이념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제국주의 사회의 일원들은 집단적으로 세뇌를 통해서 제국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수용하면서 그 사회를 유지한다. 햐쿠타는딸들의 제국에서 집단 지능이 아닌 집단 세뇌된 말벌의 집단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부 우익 정치인들에게 끌려가는 일본사회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햐쿠타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작가로 평가되는 인물인데, 그는 현재 일본의 최대 공영방송사인 NHK의 경영위원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딸들의 제국을 단순하게 말벌사회를 의인화한 소설 정도로 볼 수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소설이다. 햐쿠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 사상을 말벌사회에 정교하게 대입시켜, 작가가 신봉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이념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마리아가 속해 있는 집단의 말벌들은 스스로가 제국에 속해 있다고 세뇌되어 있다. 마리아를 비롯한 모든 말벌들은 제국의 소유물이며, 햐쿠타는 이 말벌집단을 통해 아직도 잔인하고 포악한 일상을 겪지만 그들이 속한 제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이중적인 인간사회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이것은 바로 일본이 추구하는 제국주의와 선제공격을 통한 평화주의라는 이중성을 의미한다.

햐쿠타는 딸들의 제국에서 유충들을 위해 잠자리, 꿀벌, 나비, 사마귀, 다른 말벌 집단까지 선제공격해서 사냥하는 말벌들을 통해 일본의 평화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려고 한다. 아베는 평화주의라는 용어에 집착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의 평화주의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사전적으로 취해지는 전략혹은 선제적 평화전략정도로 볼 수 있다. 즉 아베가 추구하는 평화주의란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는 비평화주의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햐쿠타는 아베가 추구하는 선제공격을 통한 평화를 마리아가 속한 말벌제국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야 이 글의 주된 이야기인 한 전사 말벌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우리말로 번역된 햐쿠타의 딸들의 제국의 원제목은 のマリア이다. 이 중 한자로 적혀진 을 히라가나로 표기하면 각각 かぜ(카제)’なか(나카)’이며, ‘かぜのなかのマリア(카제노나카노마리아)’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바람 가운데 있는 마리아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일본어 원제목을 보면 우리말로 지어진 제목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이 소설을 읽기 전 일종의 말벌 제국 이야기로 받아들이면서 한 여왕벌의 이야기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원제목에 나오는 마리아는 여왕벌이 아니라 아스트리드라는 여왕벌에게서 태어난 한 일벌이다. 마리아는 일벌들 중에서 힘과 지혜가 뛰어난 20~30%의 일벌들에게 주어지는 전사의 임무를 맡아서 아스트리드의 제국의 생존과 직결되는 먹이를 책임지고 있다. 일본인들에게 제국은 일본인들이 자기 정체성 또는 스스로 욕망하는 질서를 일상적으로 표현하는 개념적 수단이 되었는데, 햐쿠타가 딸들의 제국에서 보여주는 아스트리드의 제국 역시 일본의 제국주의와 평화주의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마리아, 아스트리드 등과 같은 여성의 이름이 나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장수말벌들을 의인화한 소설이며, 햐쿠타는 아스트리드의 제국을 마치 인간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이 소설이 우리말로 번역되었을 때 딸들의 제국으로 명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작품은 의인화된 장수말벌의 이야기이자, 제국건설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마리아라는 주인공 전사말벌의 내면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햐쿠타는 영원의 제로(永遠)해적이라 불린 사나이(海賊とよばれた)와 같은 작품에서 일본의 전쟁책임을 미화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는데, 그는 이 두 작품과 동일한 선상에서 딸들의 제국에서 나타나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평화주의를 정당화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어느 날, 자신의 여동생 중 하나인 엘자가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데, 마리아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은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태어났다고 답을 한다. 마리아는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알지 못한 채 언니들이 가르쳐줬던 삶의 방식인 제국을 건설하는 목표를 위해 태어났다고 믿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제국의 소유물이라고 말하면서 제국 밖에서의 삶의 가능성을 전혀 열어두지 않는다. 마리아는 자신이 제국의 소모품 정도의 존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일본여성에게 제국의 딸이 된다는 것은 제국을 위한 미래의 병사들을 출산하고, 국가적 영역이 된 가정을 관리하는것이라고 헬렌 리는 제국의 딸로서 죽는다는 것에서 밝히고 있는데, 마리아를 비롯한 아스트리드 제국의 일벌들은 아스트리드의 딸들을 제국의 병사로 키우는 것을 그들의 사명으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햐쿠타가 아스트리드 제국의 일벌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일본이 추구하는 제국주의와 선제공격을 통한 평화주의인 것이다. 이는 아베가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햐쿠타는 자신의 처녀작인 영원의 제로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국민이란 전쟁에 필요한 도구나 자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무작정 죽음으로 내몰린 특공대원들을 나라를 위해 싸운 영령으로 통합해 버리면서 어중간한 선에서 타협한 바 있다. 영원의 제로와 마찬가지로 햐쿠타는 딸들의 제국에서도 말벌 제국 건설의 핵심에 있는 일벌을 제국의 소유물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햐쿠타는 마리아를 비롯한 일벌들이 자신이 속한 제국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국의 건설을 위해 마리아와 같은 일벌들이 다른 곤충들을 선제공격하는 장면은 일본이 추구하는 제국주의와 선제공격을 통한 평화를 통한 평화주의라는 이름으로 유포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과연 이러한 평화는 누구를 위한 평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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