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의료의 리더에게 K-바이오헬스의 미래를 묻다
융합의료의 리더에게 K-바이오헬스의 미래를 묻다
  • 김윤혜 기자
  • 승인 2020.09.17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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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이선희 교수

지난 6월에 열린 43회 의·약사평론가시상식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이선희 교수가 2020년도 의사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의료계의 전문가로서 뛰어난 역량으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있으며, 전문가적 식견과 비평 역량을 통해 언론 기고 등으로 의료 정책을 논평하고 제언함으로서 국민건강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의사의 역할을 넘어 국민건강과 의료 정책개선을 위한 실증연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인증평가원 정책개발실장 등 관련된 역할을 맡아 정책 실무를 겸비하였으며 의료경영 분야에서도 여성 최초로 한국병원경영학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를 직접 만나 그간의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이선희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이선희 교수

 

경계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역할을 찾다

다소 생소한 예방의학에 이선희 교수가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개개인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 의사와 달리 예방의학은 집단의 건강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있었다. 특히, 이 교수가 사회현안에 주목했던 의대생 시절에 올바른 의료제도를 만드는 일은 국민 전체의 건강을 향상할 수 있는 대의(大醫)의 길이라는 한 교수님의 말씀이 그의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상했다.

저는 임상현장과 사회와의 경계를 잇는 사회의학분야에서 주로 활동했고, 의료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예방의학은 의학적 방법론을 배우지만 인문·사회과학 방법론을 함께 적용하는 융합학문이고, 이러한 특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와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지요.”

이 교수는 의료정책과 병원경영에 관한 연구 및 교육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건강보험 제도 연구와 복지부 자문, 의료의 질 평가와 관련한 심사평가원의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건강보험 적정성 평가제도 개선에 참여한 일이 대표적이다. 의료기관의 질개선을 관장하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는 초대 정책개발실장으로서 조직을 만드는 준비단 작업부터 실제 기관이 만들어지고 기관의 틀을 잡으며 기관설립의 기초를 닦았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는 새로운 의료기술을 승인하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에 지원해 공기관의 장으로 의료기술정책의 근거를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을 맡은바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기관이 설립된 지 오래되지 않은 탓에 기관을 정비하는 일이 유독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부임했을 당시 기관의 행정책임자들에게 문제가 생겨 기관운영이 극히 어려웠던 상황이었어요. 내부 현안을 추스르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기관을 정비했고, 결과적으로 경영평가 1등의 쾌거를 얻었습니다. 핵심사업인 기술평가사업 인력도 전원 정규직으로 확보하고 사옥도 이전하는 등, 기관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워낙 고된 일이었기에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현재 국내 의료기술평가의 전문기관으로서 높은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되어 보람을 느낍니다.”

이렇듯 연구하는 교수로만 남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은 공기관 운영, 복지부 정책과 업무를 평가하는 자체 평가위원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져 왔다. 정책은 무엇보다 연구와 함께 현장의 이야기가 반영되어야 하는 분야다. 정책연구와 제언만으로는 제대로 정책이 구현되지 않는 상황들을 자주 마주한 이 교수는 정책 효과를 거두기 위해 스스로 직접 일에 뛰어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책적 규제가 강한 의료기관 현장에서 정책과 의료경영을 병행한 과정들은 그에게 조직의 발전 및 성공 요인과 리더십을 공부하고 안목을 키우는 경험으로 작용했다.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임상 진료 외에 저만이 기여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의료와 사회의 경계선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이 분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의료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제도화되는 과정이 왜곡된다면, 기술이 발휘되는 일에 한계가 생깁니다. 실제로 의료정책과 병원경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기에 이 분야에 대한 미래 의사들의 관심 또한 더욱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수는 누구보다 경계에 주목한 사람이다. 그래서 의료와 사회를 넘나들고 있는 자신의 다양한 활동 이력을 경계라는 키워드로 정리한다. 전형적인 선택에서 벗어나 경계학문에서 활동한 덕분에 급격한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으며, 대체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자리와 역할도 찾을 수 있었다. 경계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잠재력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경계의 미덕을 개방성과 융합으로 설명한다. 경계에 있을수록 개방에 유연하게 되고, 경계선에서는 여러 학문과 주제가 뒤섞이기 때문에 각 학문의 장점을 모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고 또 불확실하더라도 이미 구획이 지어진 영역보다는 새로운 영역을 찾고, 열고, 새로운 역할을 만드는 일에 미래 세대들이 도전하기를 희망합니다.”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여는 역할이 될 것

이선희 교수의 다양한 경험들은 행정관리 능력이나 갈등조정능력은 물론 인내와 포용력까지 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에는 힘든 시련들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미소 짓는 그다.

목표를 열정적으로 달성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주변에서 듣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리더십의 스타일은 서번트 리더십 유형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일꾼 리더십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하고 권위적 관계보다는 소탈한 관계를 선호합니다. 저 역시 현장실무로 성장한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함께 일합니다. 기관을 운영하며 얻은 중요한 깨달음은 리더가 정성과 사랑으로 모두를 두루 챙기다 보면 기관은 발전하고, 자연스럽게 성과도 얻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였어요. 정성과 관심이 리더십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최초로 한국병원경영학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교수는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으로 자신의 역할을 자처한다. 병원은 24시간 운영되어야 하고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많은 규제가 불가피하다. 또한, 많은 전문가가 독립적으로 동시에 협력하며 일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려가지 접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사고로 연결되는, 그렇기에 위험관리가 경영관리의 최우선인 곳이다. 이를 두고 피터 드러커는 전문직종이 많은 병원경영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으며 조직 경영 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양한 병원을 대상으로 경영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병원경영에 참여해왔습니다. 학회장을 맡은 후 학회지 학진 등재 작업을 마무리하여 위상을 높이고, 학회재정을 건실하게 만들어, 미래세대 경영인 양성을 위한 영 리더스 발표포럼을 정착시키는 등 학회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은 의료분야에 여의사들이 많이 늘었지만 제가 활동하던 때만해도 여의사 수가 많지 않았고, 경영에 참여하는 여의사는 더욱 드물었어요. 여성 최초로 학회장이 될 만큼 학계는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문화였지요. 최초 여성 학회장으로서 역량을 보여야, 이후 여성 리더의 진출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소명이 학회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동기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 교수는 병원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경영인들의 전문성이 더욱 요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불어 병원경영은 여의사가 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라고도 덧붙였다. 처음 학회장을 맡았을 때의 마음처럼 여전히 자신과 같은 여성 의료경영인이 나타나기를, 또 도전하고 성장하기를 먼저 길을 지나온 사람으로서 바란다고 말하는 이 교수. 탁월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명하고도 미래지향적인 리더로서 그의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K-바이오의 발전을 만드는 사람들

코로나19의 확산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 의료의 숨겨진 저력이 드러나면서 K-방역, K-바이오 헬스가 신조어로 등장할 만큼 최근 바이오 헬스에 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바이오 헬스 산업이 곧 미래 산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이선희 교수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지금이야말로 바이오 헬스가 꽃을 피울 시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바야흐로 기회를 맞이한 지금 다양한 혁신 기술이 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과 함께 대학, 연구기관, 산업 간의 유기적인 연계 등 분야를 재정비하는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한 때이다.

바이오 헬스는 산업 경쟁력이 높은 분야입니다. 다만, 생명과 직결된 분야이다 보니 규제 강도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의료기술평가를 담당하는 기관을 이끌며 느낀 현장 상황으로 판단하건대 절차적인 규제개선이 필요합니다. 물론 안전과 관련하여 필요한 규제도 있지만, 기술을 구현해가면서 부작용이나 문제점을 보완해나가는 것이 시도조차 못 하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득이 클 것입니다. 특히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건강과 의료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어서 웰니스-건강-보건의료를 엮는 다양한 혁신 기술이 나오도록 권장하는 풍토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산학연의 유기적 연계가 바탕이 된 생태계를 만들어 건실한 투자가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교수평의회 의장으로서 이화의 저력을 확인하다

이선희 교수에게 이화여자대학교는 성인으로서 정체성을 세울 수 있었던 소중한 둥지였고, 역사성과 주체성을 내재화할 수 있었던 배움터였다. 젊은 시절을 치열한 외부 활동으로 보내고 돌아온 학교에서 사회가 바라보는 이화 그리고 이화의 사회적 존재가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2016, 공식적인 교수조직인 교수평의회가 설립되고 이 교수가 초대의장으로 선출되는 것을 계기로 평교수의 입장을 넘어서 이화의 미래를 생각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과거의 총장선출 방식을 바꾸고 대학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선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직원, 학생, 동창 등 구성단위들과 4자 협의체 등을 운영하면서 치른 선거과정은 힘들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교수에게는 이화 구성원들의 입장을 낮은 자세로 경청하고 배우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고, 무엇보다 이화에 대한 구성원들의 애정과 긍지가 오늘의 이화를 발전시킨 초석이었음을 확인하는 감동적인 역사의 현장을 경험한 것이다.

임기 동안 16대 총장 후보 선출을 위한 권고안을 만들어 재단에 제안하였고 본교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선거를 주관했습니다. 조직의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초로 전체 교수총회를 개최하게 되었지만, 교수님들께서 지혜와 헌신을 나눠주신 덕분에 선거절차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이화에 머무른 시간만큼 많은 후배와 제자를 이끄는 선봉의 자리에 선 이 교수.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의료가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르며 의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와 더불어 대학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변화하는 지금, 대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변화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앞으로 닥쳐온 여러 변화를 기회이자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임상 영역 외에 새로운 시장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영역은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이미 레드 오션이다. 불확실하더라도 새로운 영역에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기를 그는 다시 한 번 당부하고 응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은 지금까지 그랬듯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출구를 찾아내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며 자신의 뒤에 선 이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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