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지의학회를 아십니까?
대한극지의학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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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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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성형외과학교실 부교수 | 대한극지의학회 홍종원 학술이사
홍종원 대한극지의학회 학술이사 | 연세대학교 성형외과학교실 교수
연세대 성형외과 홍종원 교수

200412월부터 20061월까지 1여 년 동안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에서 의료를 담당하였다. 사실 남극에서 기지를 운영하고 쇄빙선을 보유하는 것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국가에서만 운영할 수 있다. 1988년 처음 1차 월동대를 파견하여 현재는 33차 월동대가 상주하고 있다. 그동안 2010년 쇄빙선 아라온호가 건조되었고, 2013년 제2기지인 장보고 기지가 완성되어 현재 7차 월동대가 임무 수행 중이다. 한국은 쇄빙선과 남극기지 2개를 운영하는 상당히 인지도 높은 국가반열에 올라있다. 이 모든 것은 극지연구소(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에서 총괄하고 있다.

 

남극조약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 간의 규정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과학을 다뤄야 하는 영역이고, 일단 이동 자체가 어렵고, 이것을 지원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단순히 사람이 가서 연구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단순화하기에는 복잡다단한 분야이다. 따라서 이 정도 규모의 인원과 물자가 장기간 투입이 되는 것이면, 환자가 발생하는 때도 빈번하고 환자가 아닌 정상인들도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일들이 생긴다. 연구는 하계대와 월동대로 크게 나뉘지만, 월동대가 1년을 기지에 상주하면서 연구 및 기지 유지를 담당하게 된다. 각 월동대는 약 17명 내외로 구성되고, 연구원 외에 각 분야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대개는 1)으로 구성된다. 그중에 한 분야가 의료분야이다.

 

2005년 세종기지 18차 월동대. 아래 좌측에서 3번째가 홍종원 교수
2005년 세종기지 18차 월동대. 아래 좌측에서 3번째가 홍종원 교수

월동대에서 의료라는 분야가 다른 분야와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이 있다면, 일단 의사면허 소지자여야 한다. 당연하지만, 이 당연한 것 때문에 극지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극지연구소에서도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다. 더불어 의사로서는 극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의료는 기본이지만, 내가 판단한 것이 극지의 상황과 맞는 것인지 곤란할 때가 간혹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후송까지 필요한 환자인지 판단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후송에 필요한 항공편은 있는지, 이 대원이 후송되었을 때 그 공백은 어떻게 되는지, 혹은 극지에서 치료가 가능할 것인지, 가능하다면 후유증은 남지 않을 것인지 등등 의료 외적인 것을 월동대장, 그리고 대장은 본국과 상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이때 정확한 현재의 상태를 파악하고 제공하여야 하는데, 이것이 만만하지가 않다. 월동 이후 이러한 것을 보고서로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당시 고민했던 부분은 그 전 선배들의 보고서에서도 충분히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월동대원 대부분이 월동 후에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귀국 후 월동 의료에 대해서 꾸준히 조언하고 관여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월동대원들이 남극으로 파견 가기 전에 극지적응훈련이란 것을 한다. 남극환경보호, 법률 및 기지 생활에 대한 것부터 극지생존, 극지항법 및 안전에 관한 것을 다룬다. 필자는 귀국 후 대원들에 대한 극지의학에 대한 중요성을 알렸고, 이를 인정받아 2008년부터 극지적응훈련 과정에서 극지의학에 대한 부분을 월동의사회와 맡고 있었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을 똑같이 고민하는 기초생물 관련 연구 그룹에서도 하고 있었다. 주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님들을 주축으로 극지의학연구회를 결성하여 이러한 고민을 하였고, 2007~2014년까지 남극기지에 파견하는 의사의 위탁교육과 의학자문, 의료자료구축 및 표준화 작업을 하였다. 극지의학연구회 이전에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월동 의사들과 합쳐 2014년 대한극지의학회를 창립하고, 극지에 참여하는 모든 대원의 건강과 정책에 대하여 2015년부터 매년 2회씩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매년 학술대회는 주제를 조금씩 다르게 진행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월동대원들의 건강과 극지연구소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주제를 다룬다. 첫 세션은 각 남극기지를 실시간으로 연결하여 월동 후의 의료 경과와 환자 발생 현황, 향후 개선점 등에 대해서 발표하고 논의한다. 최근에서야 COVID-19로 인하여 화상회의나 학회가 막 자리 잡고 익숙해지고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화상 연결이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따라서 대한극지의학회 때 지구의 반대편, 그리고 남극대륙 내에서도 각기 반대편에 자리 잡은 세종기지와 장보고 기지를 동시에 연결하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남극의 풍경을 실시간으로 전송하여 학술대회를 하는 것은 많은 참여자에게 신선한 느낌을 선사하였다.

 

2017년 극지연구소에서 개최된 극지의학회. 뒤에 모니터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화상연결한 모습
2017년 극지연구소에서 개최된 극지의학회. 뒤에 모니터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화상연결한 모습

 

이후 세션은 의료상의 부분과 정책적인 부분으로 나눠진다. 다소 민감한 부분까지도 의학적 입장에서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극지 환자 치료를 위한 국내외 인프라, 남극에서의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문제, 의사선발, 파견 의사 교육, 월동대원의 정신의학 및 심리분석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지난 6월에 개최된 대한극지의학학술대회는 COVID-19 상황의 남극연구 활동 대책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를 하였다. 남극으로 들어가고 나오기 위해서는 다양한 국가와 다양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세종기지의 경우 미국과 칠레를 거쳐 입남극하게 된다. 장보고 기지의 경우 뉴질랜드를 경유하여 들어간다. 쇄빙선은 한국에서 출항하여 장보고기지, 세종기지를 거쳐 돌아오는 장기간의 항해를 한다. 대원들은 항공기를 이용하여 남극에 들어가기도 하고, 중간에 쇄빙선에 합류하기도 하여서 들어가기도 한다. 또한, 다른 나라의 연구팀도 각 기지나 쇄빙선에 공동연구를 위해 합류한다. 우리나라 연구팀도 유사하게 타국 기지나 타국 쇄빙선에 승선하는 때도 종종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상황이 COVID-19에 안전한 환경이 아니다. 또한, 어느 접점에서 COVID-19가 발생한다면 방역, 치료, 후송 등의 문제가 만만치가 않다. 지난 2월 한국에서 상당히 문제가 되었을 때, 극지의학회에서는 해당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여 미리 극지연구소에 알려드리고, 이에 발맞춰 6월 학술대회를 준비하였다. COVID-19를 초창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국립의료원 전문가, 극지연구소, 일본극지의학회 등을 초청하여 활발한 토론을 하였다. 극지연구소도 마침 해당 부분에 대한 매뉴얼을 선제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특히 일본극지의학회 회장을 초청 연자로 섭외하였고, 현재 일본과의 관계와 관계없이, 그들의 준비과정과 메뉴얼을 정말 솔직하게 공유해 줌으로써 서로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타국도 이제는 COVID-19에 대한 준비를 마쳤지만, 한국의 극지연구소, 그리고 극지의학회가 발 빠르게 선제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여 년에 걸친 협력과 교류, 그리고 극지의학회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라고 본다.

 

2017년 연세의료원에서 개최된 극지의학회.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극지의학회도 참여했다. 

 

사실 이러한 극지의학연구는 선진국 그룹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은 지 오래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남극 탐험의 역사도 길고 극지의학 워크샵도 상당한 역사가 있다. 귀국 후 현 일본극지의학회 회장이신 Dr. Giichiro Ohno 선생님의 초청으로 세종기지 월동에 대해서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일본극지의학회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한국에서 자주 초청받아 발표할 기회가 주어졌고, 이후 대한극지의학회에서도 일본 연자분들을 초청하여 좋은 상호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남극관련 가장 큰 국제학회는 2년마다 개최되는 남극연구과학위원회(The Scientific Committee on Antarctic Research, https://www.scar.org)이다. 이 학회는 남극과 관련된 모든 과학 분야를 다루는 상당히 큰 학회이다. 이 안에 인간생물학과 의학 공동 전문가 그룹(JEGHBM: Joint Expert Group on Human Biology and Medicine)이 있다. 2004년도에 참가했을 때 주로 선진국 위주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때도 Dr. Ohno 선생님의 배려로 observer로 참여할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도 참여 요청이 있었고 한국극지연구위원회, 극지연구소 추천으로 극지의학회에서 올해 대표를 내게 되었다.

 

대한극지의학회는 월동 경험을 한 월동의사들, 극지의학을 연구하는 의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있다. 극지라는 곳이 아무래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분야도 상당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래서 참여할 수 있는 인원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있는 곳에는 누구든 의료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극지의학회 회원들께서 자기 일처럼 나서주고 있다. 극지의학이 기존의 의학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수도 없으나, 특수지에서의 의료라는 점에서 일반사회에서 간과되는 부분들이 중요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의료, 정신의학, 후송, 원격의료 등 다양한 분야가 중요할 수 있다. 이제 첫걸음을 넘어선 극지의학이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응원 속에서 남극, 북극을 방문하는 모든 대원,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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