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투각 기술에 담긴 장인정신으로 대한민국명장이 되다
이중투각 기술에 담긴 장인정신으로 대한민국명장이 되다
  • 박금현 기자
  • 승인 2018.10.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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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요 장영안 명장
수안요 장영안 명장
수안요 장영안 명장

손으로 치댄 흙이 여러 작업을 거쳐 모양을 갖추고 가마에 들어간다. 뜨거운 고열을 견디며 흙은 인내하고 기다린다. 도공의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불길과의 싸움이 거의 끝나갈 무렵, 흙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드디어 수안요 장영안 대표의 손 위에 하나의 예술이 주어진다. 도예가들 조차 매우 어렵다는 '이중투각'으로 만든 상감청자가 아리따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 작품 하나가 탄생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은 사그라지고 예술을 즐길 기쁨만 남았다.

노력으로 얻은 이중투각 기술, 아무나 따라올 수 없어

매해 정부는 대한민국명장 리스트를 발표한다. 국내에서 최고의 기술을 숙련한 전문가에게 허락하는 이름 ‘대한민국명장’. 올해는 도예부문으로 이천시 수안도예명품관의 도자명인 장영안 대표가 선정됐다. 지난 8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그를 숙련기술인의 최고 영예인 대한민국명장으로 선정했다. 지난 1973년 패기 넘치던 청년은 부친에게 도자기를 전수받았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중투각의 최고 달인이 됐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는 “아버지에게 도자기를 배운 후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았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나이가 들어도 작업을 손수 다 하니까 할 일이 많습니다. 5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5~6개월을 작업에 매달리면 저절로 살이 빠져요. 인내심과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라서 건강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도공은 저의 천직이니까 평소 꾸준히 운동해서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12세기 중엽 고려인들이 독특한 무늬를 새겨 완성된 상감청자. 세월이 흘러 고려인들의 총기가 담긴 상감청자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고 이를 이어받을 임무가 주어졌다. 한땐 상감청자의 가치에 의존해 획일화된 도자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는 혼자 외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귀한 문화의 훼손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상감청자의 세련미를 더하는 이중투각을 공부했다. 오랫동안 이중투각으로 문양을 새기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그의 눈은 총기로 빛난다. 그의 손에서 시작된 정교한 기술은 밋밋한 도자를 상감청자로 탈바꿈시킨다. 45년의 내공이 도자기에 고스란히 쌓여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이중투각은 어렵고 까다로운 데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걸리지만 그게 대수일까.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한 그의 손은 이중투각과 하나가 됐다. 지금의 후손들이 만든 흔한 무늬의 상감청자가 갈 곳을 잃으며 사라진 자리에 그가 만든 상감청자가 들어섰다. 그가 보유한 이중투각의 기술은 한 치의 오차가 없으며 성공률이 90%가 넘는다. 그가 만든 상감청자처럼 찬란한 도예가의 삶을 살고 있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후배들의 든든한 지원군

장영안 명장의 부친은 불과 씨름하며 옹기를 만드셨다. 옆에서 보다가 흙을 만졌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와 같은 운명에 순응했다. 장 명장에겐 한국의 도자기를 세계에 알릴 숙명이 주어졌다. 잠시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도공이 평생 직업임을 기쁘게 순응하며 그는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는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만의 요장을 만들어 밤낮없이 도자기에 매달렸다. 그는 인고의 시간을 버틴 도자기들이 사랑받으며 자태를 뽐낼 수 있는 곳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서울 시내 유명 백화점을 판매 채널로 확보했다. 고급스러운 그의 작품, 그것 하나로 백화점 입점 자격은 충분했다. 이중투각 기술이 정점에 다다르면서 지금까지 그의 도자기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국 도자기 문화를 대표하는 그의 투각 기술은 매우 섬세해 오래된 도공이라 해도 함부로 따라 하지 못했고 지금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

“마르기 전에 문양을 새기는 작업을 다 끝내야 합니다. 마르기 전 상태에서 조각하고 상감을 넣고 그림을 그리죠. 저에게 상감청자의 매력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작품을 만들 수 있죠. 도자기를 굽는 것은 절대 단순한 과정이 아닙니다. 디자인 개발이 돌파구가 됩니다. 작품의 디자인을 다양하게 창조한다는 철학이 중요해요.”

그의 작품 세계는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줄곧 사랑을 받아왔다. 예술을 감상하고 투자하는 고객이 그를 지지했다. IMF 외환위기 때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한국적 미를 세계에 알리고자 여행사를 통해 일본과 유럽 등 외국인 고객을 꾸준히 확보한 전략도 효과를 거뒀다. 예술은 사회적 부침에 더 심하게 요동치지만 그는 슬기로웠다. 작은 실패를 끌어안고 비전을 새로 세웠다. 그는 도자기 양각문양 및 문자 성형방법과 L.N.G를 이용한 도자기 가마 특허를 획득하는 등 고난도의 이중투각 기술을 재현할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넘어져도 바로 일어났다. 도공으로 그는 최고의 영광만 누려왔다. 1999년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동문전을 시작으로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 참여, 2005년 ‘도자기색과 기술의 만남’ 전시회부터 2013년 ‘제7회 명지도자기 쓰임전’ 등 수많은 전시회에 참여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후배들에게는 도공이 가야 할 길이 비친다. 대선배인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후배들이 자신만의 작품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영국식 도자기 본차이나가 세계 식탁을 점령했다. 이제 세계 최고의 기술로 빚은 우리의 도자기가 반격에 나설 차례다. 장영안 명장과 그를 이을 후배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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