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겹의 커튼 속에 마침내 찾아낸 삶의 보석
아홉 겹의 커튼 속에 마침내 찾아낸 삶의 보석
  • 오현지 기자
  • 승인 2018.07.31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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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나 그림을 나무, , , 구리, 기와, 대나무 등 기타 재료에 새기는 서각은 문자나 회화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려고 한 행위가 목재나 돌 또는 다른 재질에 기록하여 표현하는 욕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세계최고의 목판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대장경 그리고 고궁이나 사찰, 정자나 루의 현판(懸板) 및 주련 등이 훌륭한 서각 작품으로 남아있다. 특히 시(), (), ()에 병칭될 만큼의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 목우서각연구소 목우 정기호 작가는 오랜 기간 손실 없이 훌륭한 자태를 뽐내는 팔만대장경과 같은 작품을 만드는데 기여함과 동시에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목우 정기호 작가 · 목우서각연구소
목우 정기호 작가 · 목우서각연구소

 

기다림의 미덕을 가진 서각의 전통과 현대의 조화

30여 년간 서각을 해온 정 선생은 전통방식의 과정을 거친다. 과정만 보더라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서각을 하면서 정작 정 선생은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나무의 결을 어루만지며 그 위에 글을 새기다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강한 매력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느림이 배어있는 서각은 건조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나무 원목을 사서 갯벌에 3년간 묻은 후 이를 꺼내 건조시키고, 또다시 묻고 건조시키는 기간이 15, 20년 정도 소요될 정도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를 추구하는 현대는 이러한 기다림의 미학이 사라지면서 쉽게 나무가 갈라지는 서각을 찾아볼 수 있다.

팔만대장경의 경우 약 1,000년이라는 시간동안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서각이 많지 않은 이유가 나무를 건조시키는 기다림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옛날방식처럼 갯벌에 나무를 묻고 건조시키는 방법은 장소와 여건을 모두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옛 조상들이 서각을 주로 했던 해남과 강화에 고향을 둔만큼 팔만대장경처럼 앞으로 후세에도 길이보존 될 서각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서각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전통만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채색의 경우 옛날에는 밤색이나 검정색이 주를 이루었으나 현대사회의 서각은 자연스럽게 채색이 변화하고 있다. 시대에 맞게 역동성 있는 채색이 또 따른 멋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통서각과 현대서각 각각의 매력이 있다며, 전통을 이어가되 현대의 멋 또한 수용하는 진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정 작가는 서각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너무 전통만을 고집하거나 너무 현대만을 고집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 중간이 어디인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하고 있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오랜 기간 서각을 해온 사람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자 한다.

서각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글을 새기는 것이라는 그 본질을 잘 지켜야 합니다. 간간이 현대 작품을 보면 단순히 글자 색과 배면 색에 치우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현대의 변화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서각의 본질은 지키되 현대의 미가 조화를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기존의 서각과 현대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지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함께 활동도 하면서 정중하면서도 무게감이 있고 단아한 멋을 가진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이 작품을 접했을 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서각 전통 계승을 이어나갈 후학양성

뚜렷한 소신아래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정 작가는 후학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목우서각연구소를 비롯하여 8곳에 강의를 하며 그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화요일에는 강화에 가서 총 4군데의 강의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빠듯하게 진행하고 있지만 그저 보람되는 일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 그중에 여성들이 서각을 배우는 비율이 높았는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들이 여유와 기다림을 즐길 여건이 되지 않아서 인지 중년에 남성들이 서각을 배우는 추세라고 한다. 또한 2014년에는 미국, 중국, 우리나라 3개국 국제초대전을 진행하였는데 당시 외국에 고국의 전통미를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외국에서 정 작가의 서각 매력에 빠져 미국, 중국에서 배우러 올 정도이다.

회화, 서양화, 서예 등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서각은 6개월에서 1년 정도면 기존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어서 좀 더 손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를 다루고 글을 새기는 기술을 익힌 후 계속 작업을 하다보면 작품의 질이 높아진다. 작품을 만들다보면 궤도 변경이나 수정을 해야 할 경우가 많지만 이 또한 몰두하다보면 금방 시간이 갈 정도여서 한 번시작하면 그 매력에 금방 빠지게 된다.

서각은 열정과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서 열정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이에 배우려는 학생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학생들이 많아야 공모전에 나갈 수도 있고 활동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력 있는 학생들을 발굴해서 키워나가는 것 역시 보람이 큽니다. 그래서 후학양성은 봉사 아닌 봉사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후학양성처럼 서각의 발전이 있어나도록 노력하고 있는 정 작가는 80년대 초부터 활동해오면서 한국서각협회를 좀 더 내실 있고 건실한 사단법인체로 만들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2000년에 문화관광부 사단법인체로 승인을 받게 되면서, ()한국서각협회의 위상을 한 층 더 부각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명분으로 2007년에는 대한민국 서각대전 초대작가 대상으로 문화관광부장관 표창을 받은 바 있다.

2010년에는 세계평화미술대상으로 국회의장상을 받았고 또한 2007년부터 현재까지 7회에 걸쳐 인천대학교 시민대학에서 서각 강의를 하면서 10회에 걸쳐 인천대학교 총장상 우수지도 및 발전유공 표창을 받았으며 현재도 열심히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요 현판 60개를 제작 하였고, 초대 및 추천작가 15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감사장 및 감사패 25TV방송출연 3회와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국제각자공모대전 운영 및 심사위원등, 중요단체 운영 및 심사 위원을 75회에 걸쳐 위촉 받아 활동하였다.

또한 다수의 국내외 초대전 65회와 개인전 8, 국제전 47, 단체전 650회를 통해 한국 전통서각 예술을 알리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서각분야에서는 드물게 개인전을 8번이나 열었다. 사찰, 경찰청의 지원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고, 중국 북경의 초대전시도 한 바 있다. 한국서각협회의 사단법인 승인을 받은 것과 개인전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었던 까닭에 대해 정 작가는 이전에 공직에 머물면서 행정적인 능력을 익힌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주요작품으로는 연세대박물관, 성균관대박물관, 해청박물관, 청원미술관, 중국 만박성박물관, 하문 서각박물관 등 수십 여 곳에 소장되어 있으며, 강화 고려궁지 내의 외규장각 현판, 강도동문, 망한루, 심화제 등의 현판과 인천문화재단 남동문화원, 연수문화원 한중문화관 등 다수의 현대적 현판 주련 등을 작업한 바 있다.

 

기교가 아닌 글의 지닌 속뜻이 마음을 두드려

정 작가는 초등학생 때부터 청년 때까지 운동선수로 활동하던 중 혼자 할 수 있는 정적인 면을 개발하고 혼자만의 취미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서예를 시작하였다. 관호 최원복 선생을 스승으로 삼고 서예를 배우면서 석계라는 아호을 하사 받았고, 목우라는 호(는 청사 안광석 선생님으로부터 하사 받았으며, 취미가 업이 되어 전통 서각 예술계승에 힘쓰게 되었다.

그래서 정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나뭇결과 서예가 오묘하게 조화되어 있어 세상의 이치를 새겨내고 때로는 어머니 같은 온화함을 때로는 아버지 같은 듬직함을 때로는 사람들에게 충고의 말을 하는 듯한 개성적인 그의 작품을 보며 작가의 생각과 인생을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단순히 서체와 표현 기교만이 아니라 글이 가진 속뜻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다.

“2000년에 조선일보 신문에서 강화도 백년사에서 혜성스님이 다도강의를 하신다 하여 진행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백년사를 찾아서 다도강의를 들었는데,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명상에 잠기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서예, 다도, 서각 모두 예전에 선비들이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작가가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하며 이처럼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던 까닭에는 기술적 기교보다는 서각이 갖는 글을 새기는 본질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의 멋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으로 서각의 발전과 계승에 힘쓰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다.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는 작품과 이러한 작품을 만드는 후학을 양성하며 우리나라의 멋을 담은 서각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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