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재료연구소 책임연구원·UST 신소재공학과 교수 - 공학자의 장인정신은 과학기술의 정점을 예고한다”
김종국 재료연구소 책임연구원·UST 신소재공학과 교수 - 공학자의 장인정신은 과학기술의 정점을 예고한다”
  • 안수정
  • 승인 2018.02.0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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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국 재료연구소 책임연구원·UST 신소재공학과 교수

‘굽은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킨다’는 말이 떠올랐다. 쓸 만한 나무는 재목이 되어 베어나가거나 팔려나가지만 굽은 나무는 아무도 베지 않아 거기 그대로 남아 있다는 데서 온 이 말은 최근 그 뜻이 재해석되고 있다. 누구도 오르지 않은 험한 야산에서 세월의 무게를 오롯이 간직한 굽은 나무는 온전한 모습으로 자신의 가치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나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 뒤, 이어서 김종국 책임연구원을 떠올린다. “우리는 항상 첨단과 최고만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작은 기술이라도 여러 대를 거치면서 갈고 닦아 나가면 기술의 정점과 산업화에 활용이 됩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도 장인정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카본 코팅막에 대한 장인정신으로 실용화 및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굽은 나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7년 국가연구개발 성과평가 ‘과학기술훈장 웅비장 영예’

지난 12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7년 국가연구개발 성과평가 유공 포상‘을 정부과천청사에서 개최했다. 정부는 국가연구개발 성과평가 결과 우수성과를 창출한 개인 및 기관을 포상해 과학기술인의 사기와 명예를 높이고 도전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이 행사를 매년 열고 있다. 이날 재료연구소 김종국 책임연구원은 마찰/마모 특성이 우수한 무수소 다이아몬드라이크 카본(Hydrogen Free Diamond like Carbon : HF-DLC) 후막 코팅 공정 및 양산 장비 기술을 개발, 기술료 14억 달성 등 연구 성과의 민간 확산 및 기관평가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에 선정되었다. 그는 개인적인 수상의 영광이 아니라 같이 고생한 동료들과 부모님, 가족들과 수상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며 소회를 전했다.

“제가 좋아하고, 잘하던 분야에서 꾸준함을 보였을 뿐인데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해당 분야가 국가 R&D 분야에서 소위 핫한 분야는 아니지만, 국가 제조 산업분야의 뿌리 기술로 트라이볼로지(tribology)분야에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기술을 높이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쁘고, 저희 동료들이 긍지를 가지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 마련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김 책임연구원은 20여 년간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한 자장여과아크플라즈마 증착원을 활용한 무수소 DLC 후막 코팅 공정 개발 및 기술국산화에 앞장섰다. 이를 통해 재료연구소 창립 이래 최고 기술료를 달성하면서 우수성을 인정받은 그다. 또한 대형 표면처리용 선형이온빔 인출장치 개발 및 기술 실용화에도 몸담았다. 소재의 표면 기능성 향상을 위한 이온원의 성능 개선에 역량을 강화한 결과, 해외 선진사와 동등이상의 수준으로 달성했으며 참여기업은 해당 기술을 적용한 양산장비의 해외 수출에 성공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2000년부터 정부 연구개발 사업 수행 및 기술 실용화를 위한 연구책임자로 총 15개 과제, 130억 원 규모의 과제를 수행해왔다. 삼성테크윈, POSCO 등 대기업에서도 15억 원 규모의 기업 수탁과제에서 연구책임자로 활동했으며, ‘자장여과아크소스 및HF-DLC 코팅 공정 기술’ 등을 12개 업체에 기술 이전해 16억 원의 기술료를 확보한 바 있다. 또한 Tech-Biz Korea, Tech Fair 외 다수의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기술이전에 힘을 실었고, 카본 코팅 기술과 관련해서 자체 국제 트라이볼로지 기술 교류회 개최를 통한 국내 기업의 기술력 향상 및 국제 네트워크 형성에 기여하면서 공학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트라이볼로지 코팅 그룹. (왼쪽부터 강용진 선임, 김도현 박사, 장영준 박사, 김종국 박사, 정병덕 연구생, 김동식 선임, 류호준 연구생/ 홈페이지 www.dlc-kims.com)

4차 산업혁명을 이끌 HF-DLC 코팅

김종국 책임연구원은 표면처리 분야 중 마찰로 인한 마모를 줄이고 내구성을 높이는 ‘트라이볼로지(tribology) 코팅’ 분야에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트라이볼로지는 상대적으로 운동하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는 두 면 및 그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다루면서 마찰, 마모, 윤활 등을 다루는 종합적인 과학기술로 기계장치의 핵심 요소일 뿐만 아니라 전기장치, 반도체 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계의 신뢰성, 내구성과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서는 마찰, 마모 현상을 최대한 방지하고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하기에 트라이볼로지는 다양한 문제해석 및 해결법을 도출하는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김 책임연구원이 국가 R&D 성과 확산에 기여한 기술 역시 트라이볼로지 응용분야에서 물질의 표면에 저마찰·고경도의 카본물질을 코팅해 마찰을 감소시키고 마모를 줄이는 기술이다. 이 때 증착한 카본 코팅막을 일반적으로 DLC(Diamond like carbon)막 이라고 하며, 그가 개발한 DLC 코팅 공정은 자장여과아크방식(Filtered Cathodic Vacuum Arc)이다. 이 방식으로 증착된 DLC막을 ta-C(tetrahedral amorphous Carbon) 또는 HF-DLC(Hydrogen Free DLC)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카본의 원료를 CxHx라는 하이드로 카본 가스를 이용하지만 그는 고체상의 카본을 이용한다.

재료연구소의 주요사업인 ‘경도 30GPa 이상 무수소 DLC(HF-DLC) 후막 코팅 공정 기술 개발’을 통해 그가 개발한 DLC 코팅 공정은 다이아몬드에 버금가는 경도를 낼 수 있는 막을 코팅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고경도(50GPa 이상), 후막(3um이상), 대면적(폭 200mm 이상), 고속(시간당 1.0um/h @증착 면적0.5m2)의 기술을 가진 곳은 한손에 꼽을 정도다. DLC 코팅은 경도가 매우 높고 코팅 표면이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화학적으로 안정돼 최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실용화에 대한 요구가 높다. 코팅 방법에 따라 비교적 쉽게 여러 가지 재료에 코팅이 가능하며, 구조와 물성제어를 넓게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저마찰 특성을 지닌 해당 기술은 자동차와 같은 수송기기의 엔진부품의 마찰을 저감시켰고, 산업기기의 마모를 줄이고 절삭공구의 사용수명을 연장한다. 이는 결국 CO2의 저감, 미세먼지의 감소, 연료효율 향상 등 환경 및 에너지 절약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또한 외국 선진사 주도형의 자동차 엔진부품 코팅 장비 시장에서 국내 최초로 자동차 엔진부품업체에 그의 기술이 이전되어 장비 및 코팅 공정의 기술 국산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로 대두되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새로운 시장과 기술의 창출이 요구되면서 센서와 로봇, 인공지능에 많은 인력과 연구비가 지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 제조업과 신뢰성을 지닌 로봇 및 산업기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 신뢰성을 가진 부품과 가공공구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바로 고경도의 저마찰 특성을 가지는 트라이볼로지 표면 코팅 기술이 필수적이며 HF-DLC 코팅이 핵심 역할을 담당할 것입니다. 더불어 새로운 에너지 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기존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DLC 코팅 기술을 사용한다면 에너지 저감 뿐 아니라 미세먼지 및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에 그 역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 책임연구원은 HF-DLC 코팅 공정과 장비기술에 대한 실용화 기술 플랫폼을 마련해 기능성과 내구성, 신뢰성 있는 트라이볼로지 코팅 기술을 제공할 것임을 다짐했다. 올해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 성과 사업화 지원 기술컨설팅(유망기술) 과제로 선정돼 본격적인 상용화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그는 양산화 기술을 완성해 국내 자동차 산업에 우선 적용을 하고, 2~3년 안에 공정 및 장치 기술을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기술의 완성도만 보았을 때 일본보다 우수한 수준이지만, 양산화 기술이 완성되지 않아 수출이 불가능했기에 현재 양산을 위한 연구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중이다.

또한 지금 하나의 기술/공정 플랫폼이 완성된 상태에서 그 적용분야를 확대할 방침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무수소 DLC(HF-DLC) 코팅막 기술을 반도체 소자 검사를 위한 프로브(Contact pin probe)에 적용한 결과, 기존보다 수명이 약 10배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센서, 광학, 바이오 분야의 미개척 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산업으로의 확산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웃음 지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지만, 꿈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산다’는 말을 증명하듯 말이다.

 

DLC 연구, ‘폐광에서 기적을 캐다’

한국의 경우, 카본 코팅(합성)과 관련된 연구는 1990년대에 주를 이뤘다. 당시 정부는 수백억 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다이아몬드 합성 및 DLC 코팅 연구자를 육성했지만, 실용화로 연구가 이어지기 전에 새로운 카본물질인 CNT(Cabon Nano tube)가 등장하면서 투자는 10년을 채우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카본 코팅을 연구테마로 다루어본 연구자들은 꿈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소재로 핫 하게 급부상한 CNT 전문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CNT에 대한 연구도 잠시, 2010년 그래핀(Graphen)이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꿈의 소재로 각광을 받자 연구비와 연구자들의 이동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던 김종국 책임연구원의 말에 힘이 실렸다.

“CNT도 Graphen도 당시에는 꿈의 소재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 꿈이 포함된 제품은 아직 양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 천 명의 연구자와 수 조 원의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되었지만, CNT와 Graphen의 우수한 특성이 우리의 생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아직도 요원한 일입니다. 결국 수많은 인력과 비용으로 완성된 논문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현재 카본 코팅막인 DLC의 경우, 국내에서 해당 분야의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연구자는 그를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다. 혹자는 ‘30년 전에 주목받은 분야에서 무슨 새로운 것이 있겠느냐’라고 말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김 책임연구원은 자동차를 예를 들었다. 자동차의 본연의 기능은 사람이나 물건을 싣고 굴러서 이동하면 그 기능을 다한 것이지만, 아직도 자동차 분야에서는 개발될 것이 많다는 것이다. 즉, 끊임없이 가다듬고 성장시킨다면 그 기능이 정교해지고 빨라지고, 전기자동차와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DLC(Diamond like carbon)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이아몬드와 카본의 두 가지 성질을 가질 수 있는 환상적인 물질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DLC는 일본과 독일등 선진국에서는 실용화에 들어간 좋은 물질이고, 진공에서 플라즈마를 만들 수 있는 공정이면 DLC를 증착(합성)할 수 있다. 그는 플라즈마의 종류에 따라 증착된 DLC의 특성(고경도, 내열성)이 상당한 차이를 내고 있는 바, 아직도 개발할 것이 많은 기술임을 강조했다. 또한 자동차와 같이 대량 생산품에 들어가는 부품이 수 만개이고 사용 연한도 10년이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내구성과 생산성을 맞추기 위한 HF-DLC 코팅 기술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했다고 밝혔다.

DLC 코딩 기술이 밝은 미래를 제공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김 책임연구원은 연구계의 환경변화에 따른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국가 R&D 체계를 규정해온 PBS 제도의 한계가 드러나는 현 시점에서 “과제를 위한 과제 만들기에 열중한 결과,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과제 앵벌이로 전락했다”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연구책임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에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산업에 사용될 수 있는 뿌리 깊은 연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이에 그는 하루빨리 PBS의 잔재를 없애고 국가 연구소 설립 50년에 출연연이 연구소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통해 뿌리 깊은 조직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거침없는 말은 이어졌다. 김 책임연구원은 재료연구소에서 상용화 가능한 기술의 개발과 최고의 기술 이전료를 달성해 웅비장을 수상했지만, 최근의 기술료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특허기술료에 대해 비과세에서 근로소득으로 부과된 것은 공학자들의 사기를 꺾은 부분이라며, 해당 부분에서의 제도개선을 거듭 주문했다.

 

공학자의 삶은 여전히 가슴 뛰는 일

김종국 책임연구원에게 연구는 ‘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고, 재가설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그에게 박사학위는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두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인정하지만, 그는 주어진 과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은 passport로서 기초적인 자격증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더 노력해서 전문가로 도약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때,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문제 자체로 정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문제는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정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의문을 가지고 직접 실험실에서 찾을 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목표는 실천해 나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김 책임연구원은 ‘현재’에 집중하는 공학자다. 현재의 소중함을 가슴에 간직하고,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는 “지금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학자는 지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면서 2016년 타계하는 날까지 연구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던 핵융합 연구 권위자 故 정기형 교수의 실천적 삶을 걸으며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 스스로를 과학자가 아닌 공학자로 칭하는 데에서 나아가 끊임없는 연구로 후학들과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자 노력할 것임을 밝힌 그는 논문을 위한 연구가 아닌 기술 실용화 및 산업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몸담고 있는 트라이볼로지 코팅 분야의 연구를 완성의 길로 이끈 후에는 장인정신으로 갈고 닦으면서 부족한 기초 연구들을 보완할 계획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인터뷰 마지막까지 후학들과 출연연의 젊은 세대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고, 확신을 가지고 공학자의 길을 걷는 그의 눈은 어김없이 빛나고 있었다.

“공학자로서 최고의 가치는 비용의 절감, 실생활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지, 논문이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모두 engineer가 되기를 거부하고 scientist가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 산업의 혁신과 변화는 결코 이뤄질 수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해당 기술을 꾸준히 개발해나가는 끈기도 필요하지만 시장이 요구할 때,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인프라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 길에 의미 있는 한걸음을 내딛어 보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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