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정복,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희망’
암 정복,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희망’
  • 박성래 기자
  • 승인 2017.10.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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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기 건국대학교병원 혈액암센터장·종양혈액내과 교수
이홍기 건국대학교병원 혈액암센터장·종양혈액내과 교수

“Doctors treat but God heals.” 이 말은 ‘병이나 상처를 고치는 의술은 의사가 시행하지만, 결국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 사의 갈림길 앞에 선 환자를 마주하는 이홍기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의술의 숙련도나 노하우가 아니다. 오로지 생명에 대한 겸허함에 닿아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의학적 노력을 다하는데서 나아가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의사였다. 환자의 마음에 절절히 공감하며 중증질환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고 치료법을 찾는 그는 자신의 도전이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 그 과정이야말로 인류의 오랜 꿈인 ‘암 정복’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조혈모세포이식 및 혈액학 분야의 권위자

이홍기 교수는 최근 조혈모세포 이식 및 혈액학 분야에서 쌓아온 성과들을 인정받아 제 20회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학술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최근 ‘비혈연간 조혈모세포 기증시 기증자의 전신불편감과 일상생활활동의 제한에 영향을 미치는 예측변수’에 대한 논문을 국제 저널 ‘Bone Marrow Transplantation’에 게재하는 등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쳐온 이 교수는 그간 조혈모세포이식의 발전에 기여한 동료 및 환우들과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는 소회를 전했다.

현재 이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품의약품안전청,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한국혈액암협회 등에서 심사위원 및 자문위원, 이사 등을 역임하며 해당 분야 발전을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 조혈모세포이식의 발전과 궤를 함께해온 인물인 셈이다. 그는 지난 1996년 창립된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한데 이어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등 20여 년간 학회 발전을 견인해왔다. 학회는 국내를 넘어 중국, 일본과 교류하며 국제학회 성격을 띤 학술대회로 거듭났고, 이를 매년 개최하는 것 역시 그가 이끌어낸 성과다.

그가 학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한 시점은 국내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이 막 태동되던 시기였다. 일부 선진국에서 이식술이 시행되고 있을 뿐, 국내에서는 쉽사리 엄두를 내지 못하던 조혈모세포이식은 1992년부터 건강보험 급여로 지정된 이후 국내 9개 의료기관이 이식시술기관으로 승인되면서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모아졌다. 미국에서의 연수를 마치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 교수는 국내 조혈모세포 이식의 저변 확대라는 사명감으로 의사이자 연구자로서의 활동에 전념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혈연간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하는 이식만이 시행되고 있어 많은 악성혈액질환 환자들이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국내에 가톨릭골수정보은행과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가 설립되었지만 여전히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하는 형제자매로부터 골수를 기증받는 동종골수이식만이 유일한 대안이던 때였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쌓은 비혈연간 조혈모세포이식 임상경험을 토대로 조혈모세포이식센터를 설립, 국내에도 비혈연간 조혈모세포이식이 정착되는데 두 팔을 걷어붙였다. 조혈모세포이식술이 시행되던 초기였던 만큼 이에 대한 오해도 컸다. 기증 의사를 밝힌 공여자 중 실제 기증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50%에 불과했다. 이 교수는 현재 기증률이 70%까지 높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기증자를 찾아가 설득하는 것이 자문의사의 역할 중 하나였다고 회고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의 이식조정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비혈연간 조혈모세포 기증에 필요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데 힘을 보태왔다.

 

비혈연간 골수이식 초점 맞춘 연구 이어와

국내에 조혈모세포이식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데서 나아가 그 발전과 확장에도 이홍기 교수의 역할이 컸다. 그는 미국 연수시절에도 비혈연간 골수이식은 상당히 난해한 수술로 여겨졌다고 언급했다.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이나 혈연간 동종이식에 비해 합병증이 많이 발생하는 데다 성공률도 저조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 분야의 해법을 제시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겠다는 그의 의지는 비혈연간 골수이식을 더욱 깊이 파고들게 만들었다.

이 교수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환자의 자료를 살펴보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의미 있는 씨앗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보다 깊은 의료적 사유로 그의 가슴과 집도하는 손에 뿌리를 내렸다. 그 결과 1997년에는 혈액질환 중 유난히 낮은 성공률을 보이던 중증 재생불량성빈혈 환자에게 비혈연간 골수이식을 성공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후 그는 조혈모세포이식과 관련한 임상연구 중에서도 이식에 따르는 합병증의 치료 및 예방에 관심을 두고 간정맥폐색성질환, 폐질환, 기회감염 등에 관한 논문을 국제전문학술지에 발표하며 활발한 연구를 이어왔다.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동종조혈모세포이식보다 비교적 합병증이 적은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한 후, 인위적으로 이식편대백혈병효과를 유발시켰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치료성적을 보인 중개임상연구 역시 그가 이룬 업적 중 하나다. 이와 함께 2012년부터 4년 간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 기증자보호위원회를 이끌면서 비혈연 기증자가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사전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급성백혈병과 악성림프종의 치료에 관한 임상연구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는 중이다.

이 교수를 비롯한 조혈모세포이식 및 혈액학 분야의 의료진들의 노력이 켜켜이 쌓여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시행된 약 2,500건의 조혈모세포이식 중 1,400건은 동종조혈모세포이식으로 집계되었다. 그 가운데 혈연간 조직적합항원이 일치하는 기증자 이식이 500건, 비혈연간 일치 기증자 이식이 500건, 혈연간 반일치 기증자 이식이 350건, 제대혈 이식이 50건으로 파악되었다. 2009년 이후 비혈연간 이식이 혈연간 일치 이식을 앞서며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현상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분석되는데, 핵가족 사회로 변모하면서 가족 간 완전일치를 찾을 수 있는 확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다 비혈연간이식과 혈연간반일치이식에 필요한 여러 의술과 관리법이 큰 폭으로 개선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꾸준한 연구를 통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한편 환우들과의 소통에도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비영리 혈액암 환우 단체인 ‘새빛누리회(現 한국혈액암협회)’의 의료자문의사이자 협회이사, 부회장직을 수행하며 환자들의 고충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밖에도 환우 및 가족들과 함께하는 자조모임인 ‘희망산악회’ 활동을 통해 의료 상담과 함께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그다.

 

끈끈한 협진 위에 실현되는 ‘완치’의 꿈

“혈액암은 질병의 특성상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없이 항암화학요법만을 적용하게 됩니다. 필요에 따라 고용량의 항암치료가 병행되는 만큼 대다수의 혈액암환자들은 면역저하상태에 놓여 있는 상태입니다. 감염관리, 영양관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죠.”

현재 이홍기 교수가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는 건국대학교병원 혈액암센터에서는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골수종 등 혈액암 환자별 맞춤형 치료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진료과 및 관련부서의 긴밀한 협진을 통해 신속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을 센터의 강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혈액내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감염내과 및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영상의학과 전문의들과 임상약사, 항암전문간호사, 영양사, 사회사업가 등이 전담팀을 구성해 치료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혈액암 진단검사 결과 분석과 진단, 혈액암 치료 선택과정 등에 환자 및 보호자가 직접 참여하고 있어 환자의 만족도와 순응도가 높다.

“암환자를 완치시키는 것은 현대의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사 한 명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죠. 다양한 분야의 협진과 앞서가는 신약 및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할 일일 것입니다.”

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가조혈모세포이식과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은 환자들에게 완치의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혈액암이 ‘감염과의 싸움’인 만큼 환자에게 무균환경을 제공하는 것 역시 치료의 관건으로 손꼽히는 가운데, 센터는 감염내과와의 긴밀한 협진을 통해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중증질환 진단 뒤 질환과 함께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환자들을 배려한 다인실 위주의 병원 운영과 사회사업팀과의 연계 하에 운영되는 심리적,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은 이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식에 따르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감, 우울증을 예방 및 치료하기 위해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협진도 수시로 진행되고 있다며, 혈액암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병인만큼 완치에 대한 확신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더불어 완치까지 단 번에 뛰어넘을 수 없기에 지난한 길의 동반자가 될 것임을 약속했다.

 

완치를 위한 첫걸음은 ‘희망’

“제가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때만 해도 암환자 대부분이 수술과 방사전조사만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효과적인 항암화학제제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운명하는 날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당시 이홍기 교수가 느낀 의사로서의 무력감은 혈액암 극복에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시각각 환자의 상태가 변하는 혈액암은 의료진이 환자 치료에 전념을 다하지 않으면 자칫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점이 혈액암 치료 분야의 매력이라 칭했다.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양혈액내과 전문의로 살아가는 그이기에 현재까지도 수련의 시절에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순(耳順)에 들어선 현재까지 단 한 번의 후회 없이 자부심을 느껴왔다고 말하는 그다.

‘명의(名醫)’로 칭송받는 이들은 입을 모아 ‘환자는 나의 스승이자 교과서’라 말한다. 이 교수 역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서 깊은 교훈과 힘을 얻으며 분야 발전에 정진해왔다. 그 중 20대 여성 두 명은 희망을 잃지 않고 동종조혈모세포이식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뒤, 한국혈액암협회에서 근무하며 자신들의 투병경험을 바탕으로 환우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이들의 열정은 현재까지도 이 교수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밖에도 견디기 어려운 중증질환을 가족들과 의지하며 이겨내는 모습을 통해 의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큰 감명을 받고 있다. 이 교수는 환자들의 가슴 뭉클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음에 헤아릴 수 없이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고 전했다.

20대에 의학을 공부하면서부터 60대에 접어들기까지 그는 늘 고민하고 노력하는 의사였다. 제대로 된 의학지식을 갖춘 의사가 되고자 노력했던 2, 30대부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의사로서의 홀로서기를 위해 전력 질주했던 4, 50대를 지나온 현재, 이 교수는 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다보면 분명히 내 것처럼 보이지만, 아닌 것들이 있다. 힘겹게 쌓아올린 명예, 꼭 움켜쥔 재물, 생명 등 평생 움켜쥘 수 없는 것들을 마주할 때면 우리는 ‘나답게 사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교수는 의문의 해답을 나무에서 찾은 듯하다. 그는 봄이 되면 앙상한 가지에 생명이 있음을 알리려는 듯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와 산천을 푸르게 하고, 더운 여름날엔 풍성한 잎사귀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더니 가을에는 자기의 몸을 형형색색으로 가꿔 온 산야를 곱게 물들이는 나무. 아쉬움 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썩어서는 꽃눈과 잎눈을 싹 틔워 올리는 이 나무가 되고자 한다. 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자신의 부족함과 깨달음을 전해줌으로써 이들이 더욱 견고한 의사의 길을 걷도록 도움을 줄 예정이다. 자신이 아는 바에 대해 과신하지 않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보듬는 자세와 환자를 통해 배운 자신다운 삶의 자세를 아낌없이 전해 희망의 싹을 틔우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의 삶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물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답변이 돌아왔다. 마치 가슴 한켠을 이 단어로 채우고 매 순간을 달려온 것처럼 말이다. 평생을 조혈모세포이식의 발전을 위해 바쳐온 이 교수의 노고 위에 움틀 새로운 희망을 기다려본다.

“투병생활 가운데 결코 희망을 버려선 안 됩니다. 수개월 전까지 누구도 예기치 못하던 신약이 나오며 불치의 병이 손쉽게 낫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학 발전에 가속도가 붙은 현재, 희망을 버리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가능성들이 탄생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측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의료진을 믿고 힘을 낸다면 기적과도 같은 완치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저 또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치료법을 찾는 도전을 이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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